욕쟁이 사장님의 진심
- 일방적 호의는 갑질이 될 수 있다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예전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뺑소니 사고를 치고 난 후 언론에서 했던 인터뷰 내용이다. 사실 법적으로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술은 마셨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충분히 깬 이후에 운전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법적으로 처벌받는 정도로 마시지는 않고 운전을 했을 수도 있다. 다만 해당 연예인은 본인이 직접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인터뷰를 하여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고, 수많은 패러디들이 양상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상식적으로 저런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 사건도 그랬다. 사건 기록을 보던 나는 도저히 피고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죄명은 강제추행죄. 사건 내용은 자신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고생의 엉덩이를 두 차례 손바닥으로 친 것이었다. 그런데 피고인은 피해자의 엉덩이를 두 차례 두드린 것은 인정하지만, 강제추행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주장인가. 여고생의 엉덩이를 두드렸는데 강제추행이 아니라니.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주장보다 더 황당하게 느껴졌다.
종석을 사무실에서 만났다. 종석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억울하다는 말부터 했다. 피고인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답변도 곱게 나가지 못했다.
"억울합니다. 변호사님!"
"아니, 도대체 뭐가 억울하신 거죠? 여고생 엉덩이를 손으로 쳤는데 추행이 아닐 수가 있나요?"
"저랑 미진이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제가 미진이를 추행하다니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럼 엉덩이는 왜 손으로 치신 거예요?"
"격려하는 의미로 허리 부위를 툭툭 친 겁니다. 진짭니다."
"격려를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아니 진짜 그런 사이가 아니라니까요!!"
종석은 정말 억울해했다. 특히 미진의 고소장 내용이 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든 것 같았다. 고소장에는 종석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상습적으로 반말과 욕설을 하고, 수시로 CCTV로 업무태도를 지켜보는 '갑질 사장'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종석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아르바이트생들과 나눈 문자메시지 내역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종석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놈', '년', '개XX' 등등 욕설을 섞어 가며 반말로 문자를 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갑질 사장이라는 고소장 내용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곧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재밌게도 문자의 내용은 아르바이트생들을 챙기는 따뜻한 내용이 아닌가? 예를 들어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년아~ 오늘 끝나고 집에서 처먹을 음식 챙겨가라~ 되지도 않는 다이어트 한다고 저녁 굶지 말고.'
'야 이 개XX야~ 내가 공부하라고 했지~ CCTV로 보니 손님 없을 때 핸드폰만 보네. 핸드폰 그만 보고 영어공부라도 해 XX야~'
'내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지! 나이 들면 나중에 고생한다. 한 번만 더 피는 거 CCTV에 보이면 내 손에 죽는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처럼 표현 방식은 욕이었지만 그 내용은 아르바이트생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종석은 월급도 다른 편의점보다 많이 주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편의점 음식을 마음껏 먹으라고 하는 등 근로 조건도 좋았다. 미진은 강제추행 사건이 있은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일을 그만두었는데, 몇 달 후 종석의 편의점에 스스로 찾아와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종석의 주장은 만약 자신이 미진을 추행한 것이면 미진이 자발적으로 다시 가게로 돌아왔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르바이트생들을 아끼고 격의 없이 대하는 자신이 성적인 목적으로 미진의 엉덩이를 쳤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펄쩍 뛰었다.
종석의 주장을 법률적으로 정리하면 강제추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 된다. 엉덩이를 친 것은 맞지만 추행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강제추행과 관련해서는 서로 반대쪽에 있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
가해자 쪽에서는 보통 성적 목적이 없으면 강제추행이 되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성적인 의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거나, 허리를 만지거나, 다른 사람의 신체에 접촉을 했다면 강제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가해자에게 성적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손이 우연히 또는 실수로 닿은 것이 아닌 이상, 즉 내가 의도적으로 손을 움직여 다른 사람의 신체에 접촉을 한 이상 고의는 인정된다고 본다. 이는 격려의 의미였다거나 교육적 목적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터치한 부분이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라면 그 행위 자체가 강제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다음 오해와 관련이 있다.
피해자는 강제추행인지 여부는 피해자 기준으로 판단하므로,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면 무조건 추행이라고 오해한다. 즉 피해자인 내가 강제추행으로 느꼈으면 강제추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강제추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강제추행 여부를 가해자 기준이 아니라 피해자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맞다. 이는 첫 번째 오해에서 말한 가해자에게 성적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다만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일반적으로 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일인데,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여 추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제추행인지 여부는 일반 사람들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맞지만 특정 피해자 기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이 기준인 것이다.
종석은 첫 번째 오해를 근거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설명을 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까지 보이는 종석 앞에서, 나도 더 이상 내 주장을 계속할 수 없었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나는 평소 형사 재판은 피고인에게 한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는 절차라고 생각해 왔다. 종석에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강제추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주장을 하기로 했다.
종석은 다음 접견 때 그동안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의 탄원서를 가져왔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종석에 대하여 표현은 거칠지만 자신들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이며, 미진에게 한 행동도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나는 종석이 평소 아르바이트생들과 나눈 문자메시지 내용과 탄원서를 묶어 법원에 제출하였다.
재판 결과에 반전이 있었을까? 반전은 없었다. 유죄였다. 다만 재판부도 피고인의 진심을 조금은 이해하였는지 집행유예가 아닌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종석은 재판이 끝난 후 사무실로 찾아왔다. 유죄가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비록 무죄는 아니지만 변호사님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많이 찔리긴 했지만, 앞으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실 필요가 있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사건을 담당하며 '호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호의는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호의는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이다. 그렇기에 호의를 베푸는 방식은 주는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럼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는 너를 위해 호의를 베푼 것인데 도대체 왜 그러느냐?"며 펄쩍 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주는 사람으로서의 권력이 무시당한 데서 오는 분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지나친 생각일까?
호의도 일종의 관계 맺음이라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내용뿐만 아니라 그 방식도 쌍방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종석의 의도는 분명히 선했지만 그 방식은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그렇기에 종석의 애정 어린 욕설과 지켜봄이 누군가에는 '친근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갑질'이 된 것이다. 사실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가게도 호불호가 있지 않은가?
종석은 자신을 '호의를 베푸는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강제추행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욕설과 참견, 더 나아가 엉덩이를 두드린 것도 호의에서 한 행동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 고정불변은 없다. 종석과 미진이 사장과 종업원 관계에서 순식간에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종석이 만약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면, 적어도 성범죄 전과자가 되는 결과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