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죽음에서야 삶을 생각했다.

by 잏나

나의 이모는 2주인가 3주 전 가량 사경을 헤매었다. 급성 패혈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


엄마는 우선 지방으로 내려갔고, 나는 소식을 기다렸다. 걱정되는 와중에 급히 나의 일정을 살펴보았다. 주말인데도 회사 인사 담당 직원에게 연락드려 공가 여부를 확인했다. 만약에 이모가 돌아가신다면, 신청해 놓은 연차를 장례식장에서 쓰게 되려나. 여행으로 잡아놓은 연차인데, 어떡하지. 이모의 건강에 다 던지고 슬퍼만 하지 않는 나의 이기심이 참 우스웠다.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어차피 개인연차를 써야 했으니. 어떻게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지. 그것도 반대되는 생각을.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러다 삶을 생각해 버렸다. 하루라도 살아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미리 계획하지 말고 그때마다 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여행을 원래는 그제, 어제 다녀오려 했었는데 그때 갔다 왔으면 여행을 편하게 다녀왔을 텐데. 앞으로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길게 잡지 말고 빨리 여행을 다녀와야지 하는 조급함도 올라왔다. 흔히들 말하는 욜로의 생각으로, 내가 비난해 마지않던 생각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삶을 근시안적으로만 볼까 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면 이건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이제는 계획을 하는 이들을 우습게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다고 나에게 닥쳐오는 일들을 막을 수 있고, 피할 수 있나? 아니다. 결국 나는 내가 어떻게 계획하든 상관없다. 내가 일정을 일찍 잡든, 늦게 잡든 둘 다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결국 나는 오늘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거구나. 결국 나는 해야 하고, 하기로 한 모든 것들을 하면서 지냈다. 연락으로만 이모의 안부를 확인한 채.



그다음 주. 평일의 일들을 마무리하고 주말 일찍 이모에게로 부랴부랴 향했다. 일찍 나섰지만, 내가 사는 곳의 버스터미널은 시간표가 변동되었다. 내가 계획했던 시간에 타지 못했다. 급히 KTX를 알아보았지만 전부 매진. 다시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1시간 넘게 전철을 탔다. 간식 하나를 들고 고속버스 자리에 앉았다. 실은 KTX보다 버스를 좋아한다. 여행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여행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너무 피곤해서 가는 내내 잤다. 도착해서 이모부가 마중 나와 주셨다. 가는 길에 어떻게 아프시게 되었는지, 이모부는 괜찮으셨는지 이야기를 하며 갔다. 이모부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이모가 "하나 왔어?"라고 한다. 눈물이 핑 돈다. 말도 하지 못한다던 이모가 아무렇지 않게, 내 기억 속의 이모 그대로 반응을 한다. 이모의 얼굴을 볼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모랑 같이 테레비를 보고, 별 거 없이 앉아 있다가 나왔다. 사촌동생은 간병인 자리가 너무 힘들다며 집에 가겠다고 투덜댄다. 이모가 살아난다면 다 할 수 있다고 기도했다고 들었는데. 우리끼리 '똥 다 쌌냐'라고 놀렸다. 애달픈 마음보다는 작은 행동으로 그날 저녁에 막차보다 일찍 타고 올라왔다. 사실 막차를 예매했었는데 다음 날 일정이 있으니 피곤할까 봐 더 당겼다. 나는 또 나의 삶을 살아야 하니.



나는 이제 다시 이모의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엄마한테도 종종 말했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뱃속에 품게 되면 이모의 김치찌개가 생각날 것 같다고. 내 인생의 최고의 김치찌개는 늘 이모의 것이었다고. 이모에게는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혼자 속으로 기뻐했다. 얄팍한 마음으로 시간을 지난 나는 다녀와서 일기장에 이렇게 남겨놨다. 이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