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이 동하다 Mar 29. 2022

직장인은 아무거나 배우면 안 되나요?

과정을 즐기십시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즐거움을.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서로 직장의 거리도 다르고 출근시간도 달랐지만 우린 매일 아침 만나야 했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십여 년도 넘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열정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졸린 눈을 비비고 연신 하품을 할 뿐이다. 그저 새벽반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근로자수강환급제도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나, 디자인 일을 했던 아내, 우리가 다닌 학원은 어이없게도 중국어 회화반 이었다.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중국어학원. 그럼에도 우리는 1년 가까운 시간을 다니고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각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배운 것을 다시 파괴하는 용기야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각도인 것이다.
_이랑주《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샘터)


    인생에서 자신만의 각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또한 배운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용기마저 필요하다. 배운 것이 무용지물이라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 보면 이 중국어학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꽤나 쓸모없이 여겨지는 것들을 배우며 지냈던 거 같다. 단순히 직장-집-직장-집으로 끝나기엔 아쉬웠다. 게다가 매년 12월 한해를 돌아볼 때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꼭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어야 잘 보낸 것 같아 보였다. 그땐 그랬다. 그것이 주위의 모든 만류와 웃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라도 배워야했던 이유였다. 어쩜 내안에 또 다른 배움에 대한 결핍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클로드 베르나르-



중국어 학원 (새벽반/주3회/약1년)
부동산 경·공매 과정 (저녁반/2개월)
인사·노무 실무 과정 (저녁반/2개월)
부동산 공인중개사 과정 (저녁반/2개월)
POP 아트 전문가 과정 (저녁반/2개월)
보험청구심사과정 (저녁반/2개월)
포토샵·일러스트 기초과정 (저녁반/2개월)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 3학년 편입/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제학과 3학년 편입 후 졸업
부경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수료 (야간)
블로그마케팅(주말반 1회)
유튜브마케팅·인스타그램마케팅 (저녁반/2회)
병원브랜딩교육 (저녁/8주과정/서울)
편집장과 함께 책쓰기 (저녁/1회)


    중국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정말 서로가 연관이 없는 다양한 분야를 배웠던 거 같다. 업무와 연관성이 깊은 분야도 있지만 중국어, 경매, 공인중개사, 국문학과, 경제학과 등 이런 분야는 정말 그야말로 호기심에 의해서 다녔다. 1년에 1개씩이라면 직장인 20년차니 20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마 한 5년 전부터는 독서로 대신하고 있다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야간에 다니는 경영대학원이다. 그 당시 나는 경제가 좋았고, 배움이 좋았던 거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3살, 1살 된 두 아들이 있었고, 아내도 점점 독박육아에 지쳐갔다. 아버지도 중증으로 위중하셨다. 그렇다고 내가 가정과 병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벽출근길 병문안을 갔었고, 학교가지 않는 날엔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는 모두를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했다. 덕분에 나는 이듬해 따뜻한 여름에 계절학기로 졸업할 수 있었고, 그 졸업기간에 경제학과에서 제일 좋은 성적으로 학위장을 대표로 수료 받았다. 두 아들 녀석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인 듯 연신 흐뭇해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많은 것들에 대한 배움과 시간이 때론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라 얘기할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들에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배운 것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수 있다. 내 주위, 내 업무에 만족시킬만한 엄청난 변화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매순간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은 결코 타인과 하는 경주가 아니다. 순간의 합이며 점들의 연속이고, 선과 면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독립적인 점들을 먼저 찍어야, 그 점들 사이를 이어주는 선이 생기고 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펙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다 보니
스펙이 하나둘씩 쌓이도록 하세요.
과정의 즐거움이 빠지고 결과만 얻으려 하면
그게 바로 고통입니다.
과정을 즐기십시오.
_혜민《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


    어쩔 수 없는 스펙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 즐거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즐거움으로 인해 내가 나에게 감동하는 삶을 살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