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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28. 2022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하자.

    스마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어디를 가고 무엇을 했는지 공개한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여행하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일상의 다양한 장면들에서 가장 잘 나온 장면을 선택한다. 장면과 잘 어울리는 짧은 글로 그날을 기억한다. 그렇게 일상을 기록하고 메모한다.


    나 역시 그 옛날 싸이월드에서부터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그렇게 기억나지 않은 작은 일상들을 기록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특별한 기억은 항상 올렸었다. 머릿속 기억은 희미해져가도, 그날의 사진과 글은 또렷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흐릿해지는 기억만큼이나 열정도 흐려지니 세월에 장사가 없다. 요즘은 한 달에 1~2개 소식 전하면 나름 선방한 거다.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어 부지런히 메모하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하라.<다산 정약용>
 _신정철《메모습관의 힘》(토네이도)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메모하기 시작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뒤였다. 5년 전쯤 《메모습관의 힘》을 읽었고, 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읽은 책들 중 와 닿은 문장은 반드시 노트로 옮겨 적었고, 그런 다음 정리가 되면 컴퓨터로 정리해서 출력해서 그 위에 덧 붙였다. 적기도 하면서 타자도 치면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편리한 시대에 볼펜으로 직접 적는데도 한계가 왔다. 솔직히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나 자신과 타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1년전부터는 키보드로 메모하는 것으로 협상하였다.



    읽은 책에서 건진 문장을 정리하고, 그 중 명문장은 빨간색으로 색을 입힌다. 간단한 내 생각은 파란색으로 몇 줄 적고, 그 책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은 초록색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에 엑셀에 간단히 책 읽은 날짜와 책에 대한 정보, 간단한 키워드를 입력함으로써 책과 이별을 한다. 언뜻 보면 책 한권 읽고 이렇게나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이런 메모가 쌓이고 쌓이면서 소중한 내 자산이 됨을 요즘 더 실감하고 있다. 어떤 책은 단 한 줄도 못 건질 때도 있고, 어떤 책은 너무 많이 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책도 파악이 되고, 좋아하는 작가 유형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메모는 자연스런 글쓰기로 이어진다. 나는 직장인 병원에서 홍보기획팀에서 일한다. 업무 특성상 크고 작은 글쓰기를 반복한다. 벽면 게시판에 붙는 짧은 안내문에서부터 제법 긴 호흡을 해야 하는 직장블로그, 대외적으로 발송하는 편지 형식의 인사글 등 다양한 글들에 인용한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팀 내 여직원과 나는 그렇게 한 명은 글로써 병원을 그리고, 한 명은 경험의 물감으로 병원을 색칠하고 있다.



    이렇게 메모가 글쓰기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고,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메모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으로 유통되고 지식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작은 메모가 글로써 완성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고 했다.
언젠가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온다.
_이유미《문장 수집 생활》(21세기북스)


    사소한 메모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우리 기억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보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다. 이때 메모를 통해 그 순간의 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그 시간에 나머지 일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메모해놓자.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일상의 작은 메모가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다. 



메모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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