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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Apr 06. 2022

설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논리만큼이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뭔지 아는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와 반대되는 답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의 태도였고, 내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호흡을 짧게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짧게 내뱉었다.


    “불경이요!”


    그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순간 멈칫했다. 수많은 학생을 접해봤지만 이런 대답은 처음인 듯 당황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불경은 아시아에서 베스트셀러일지는 몰라도,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는 성경이라네.”





    나의 대학 전공은 ‘방사선학’이다. 보통 졸업을 하면 병원에 취업을 하게 된다. 물론 보건소나 연구소 등 시험과 스펙을 더 쌓아서 도전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병원으로 향한다. 3학년 여름방학이면 학생신분으로 실습을 나간다. 부산에서 규모가 큰 병원들 중 거주지 관련 희망하는 병원으로 선택한다. 그 해 여름 나는 집과 가까운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을 선택했다. 지역에선 고신의료원 또는 고신대병원으로 불린다. 정식명칭에 ‘복음’이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듯이 철저한 종교적 색상이 강한 곳이다. 잘 모르긴 하나 이곳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된다던지, 기독교 관련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난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난 실습생일 뿐이니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5명 정도의 실습생은 다양한 부서로 배치되었다. 지금은 영상의학과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지만, 그 당시는 방사선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이었다. 일반방사선촬영실, CT실, MRI실, 혈관조영실, 핵의학실 등 다양한 부서에서 며칠간 배우고 다음 부서로 이동하는 순환식 실습제도였다. 어느 부서에 옮기든 종교에 관한 얘기와 교회 참석에 관한 권유는 존재했었던 거 같다. 우린 실습생이니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어떤 선생님은 실습생인 우리들에게 특정 교회에 올 것을 권유했고, 마침 종교가 기독교인 실습생 친구들은 주말에 그 교회에 가기도 했다. 종교가 일치하는 상황에서는 종종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내겐 익숙지 않는 풍경이었고, 2998, 2999, 3000! 철퍼덕, 내 머릿속은 까까머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서클이라는 특별 모임과 활동이 존재한다. 다양한 운동종목을 취미로 하는 서클에서부터 문학적 취미가 비슷한 모임 그리고 종교적 모임 등이 있었다. 나는 그 중 불교부였다. ○○불교학생회라는 명목으로 주말이면 타 여고학생들과 절에서 학생회 모임을 가졌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석가탄신일날 연등행사 준비에서부터 여름이면 하계수련회 등을 진행하였고 그렇게 3년 내내 공부와 관련이 없는 활동으로 시간들을 채워나갔다. 108배는 기본이고, 1080배와 그 어렵다는 3000배도 경험했었다. 팔뚝 어딘가에 향 3개를 순간적으로 붙이는 행동(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하고나서야 정식으로 수계도 받았다. 수계명도 있다. 지나고 보면 적극적인 종교학생회 활동이었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종교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지금은 그냥 종교가 있냐는 질문과 서류상에 기재하는 곳 정도만 불교를 이용한다.


서로 다른 생각들의 ‘부딪힘’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위한 ‘마주침’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간의 다름이 지금보다 나은 가치를 향하기 위해선
더 많이 부딪치고 마주쳐야 합니다.
_강민호《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턴어라운드)


    정신을 차리니 다시 실습실 공간이었다. 이번 실습장소의 선생님(그 당시 실장님)은 종교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집요하다고 했다. 한 날 실습생인 내게 기독교에 대한 역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하나님, 기독교, 교회, 구원, 전도 등 낯선 용어들이 나열된다. 어김없이 기독교를 믿을 것을 권했고, 교회에 나올 것을 권했다. 내 반발심은 어느새 실습생과 실장님간의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1시간가량 공격과 방어가 오갔다.


    “실장님,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오라고 권하는 건가요? 저는 불교이지만 절에 오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그건 말이지, 내가 죽고 난 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구원활동을 펼쳤는지에 따라 천당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되는 거라서 그렇다네.”




    이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기독교에 대한 편견도 없었다. 그저 자꾸 교회오라는 것이 싫었던 실습생이었을 뿐이다. 그 해 여름 나는 결국 어느 교회에도 한 번 가지 않았지만, 무려 9학점이나 되는 실습과목을 당당히 A+로 마쳤다. 여전히 그곳과 그곳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의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자중심의 치료를 시행하고, 전도와 교육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설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논리’라고 대답했다. 물론 논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논리만큼이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대가 있어야만 그 사람들은 나에게 끌리게 되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_박용후《관점을 디자인 하라》(프롬북스)


    창조주인 하나님, 즉 위로부터의 초월 계시를 믿는 기독교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추구하며 깨달음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불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천국을 가고 불교를 믿는 사람은 극락을 간다는 보편적 믿음이지만, 난 여전히 종교적 색상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실습생 시절, 여전히 지식이 부족한 지금도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가 낮긴 여전하다. 다만 지금생각해보니, 그 당시 실장님의 설득에는 논리보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논리를 앞세워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에게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종교에는 공감대가 어려운걸까?



    대화는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 것이다. 일치의 쾌감과 다름의 묘미가 공존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마주침과 부딪힘이어야 더 좋은 관계맺음을 유지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의 ‘부딪힘’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위한 ‘마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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