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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Apr 12. 2022

아이가 바라보는 낯선 편견이란?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라디오 채널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라디오 공익광고 같았다.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낄 때 잘 자란다고.’ 이 말은 어느새 내 육아일상에 지침서가 되었다. 칭찬, 격려 그리고 사랑!



- 어제 -


    24시간 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어제 저녁일이다. 늘 그렇듯 평범한 저녁식사 중이다. 두 아이들이 태권도 갔다 온 뒤의 시간이라 우리의 저녁식사는 7시30분쯤이 되어서야 시작된다. 어릴 적 아빠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던 녀석들은 없다. 아이들의 태권도학원을 마치기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빠가 있을 뿐이다.      

식사 도중 대뜸 초등 5학년 큰아들이 말을 꺼낸다.


    “아버지, 화장실에도 편견이 있어요!”

    “화장실에 무슨 편견이 있다는 말이냐?”

    “화장실에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도 편견 아닐까요? 빨간색을 좋아하는 남자도 많고, 파란색을 좋아하는 여자도 많으니깐, 저렇게 색상으로 남자, 여자를 표시하는 것은 편견 아닐까요?”

    “오~ 대단한 관찰력인데!”




    나는 라디오 메시지처럼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칭찬해주기를 곧잘 한다. 그렇게 칭찬을 먹은 아이는 이어서 의견을 한스푼 더 뜬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화장실 표시에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편견 아닐까요? 우리 친구들보면 여자아이들 치마보다 바지를 더 많이 입어요. 여자도 바지를 입는데, 여자가 치마를 좋아한다는 것은 편견 아닐까요?”

    “멋진 의견이야! 그래, 요즘은 남자도 치마를 입기도 하니 말이다. 반드시 화장실 표시가 파란색/빨간색, 바지/치마 로 구분하는 것은 어쩜 너의 의견대로 편견일 수 있겠다.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는 화장실 표시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네. 역시 큰아들은 의견을 잘 낸다니깐!”

    “헤헤헤~”



    “근데... 너 편견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나 역시 어쩜 초등학생인 이 녀석이 ‘편견’이라는 단어 뜻을 모를 거라는 '또 다른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이~ 아버지, 저 그 정도는 알아요! 한쪽으로만 생각하고 한쪽으로만 바라보는 거잖아요.”

    “역시~ 책을 많이 읽으니 똑똑해서 잘 알고 있네!”

    “하하하~”



- 오늘 -


    그로부터 24시간이 채 안된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 어제 아이와의 대화를 곱씹어 본다. 지극히 평범한 저녁식사 중 대화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다. 근데 ‘편견’이라는 단어는 어쩜 우리 일상에 너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지금도 수많은 다름과 편견 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생각을 한 후 의견을 낸다고 주장하지만, 어쩜 그 의견이 자기가 살아온 오랜 습관에서 나온 의견일 가능성이 높다. 즉, 그 의견조차 자기중심적 ‘편견’일 가능성이 높고, 자기 경험에서 나온 ‘선입견’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의견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편견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란, 내 말이 맞음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때는 일치의 쾌감을 얻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름의 묘미를 깨닫기도 하는, 말로 가능한 최고의 성찬이다. 서로를 신뢰하기에 의견이 달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바로 통하는 사이가 아닐까?
_이석원《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달 출판사)


    직장선임과의 대화, 거래처 담당자와의 통화, 부모님과의 이야기, 친구들과의 수다, 자식과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도 많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대화 속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란 내 말이 맞음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의견이 일치할 땐 쾌감을, 다를 때는 묘미를 깨닫는 것이다.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이가 통화는 사이이지 않을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애나 어른이나

피곤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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