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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Apr 23. 2022

“사실, 오늘 아버지에게 제일 미안해요.”

 어른이 되면서 감정의 민낯을 드러낼 일이 드물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오늘 아버지에게 제일 미안해요.”


    12살 아들이 말을 건넨다. 나는 말이 없었다. 그저 괜찮은 듯 아빠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다. 아들과 함께 보폭을 맞추지만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아들의 등교시간과 나의 출근시간이 지나면서 목적지가 같아졌다. 엘리베이터를 마다하고 계단을 이용해 3층에 올라갔다. 아직 문을 열기전이라 자동문은 수동으로 되어있었다. 오른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나는 접수대로 향했고 아들은 대기실 소파에 몸을 맡긴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이 코로나 검사하러 왔습니다.”

    “아직 진료전이라 9시까지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벽에 걸린 시계는 8시 50분을 지나고 있었고, 아들과 나는 그렇게 앉아서 600초를 기다렸다. 굵고 짧은 바늘이 숫자 9에 머물고서야 아들의 이름이 불려졌다. 녀석은 뒤뚱거리며 어느 방으로 들어갔고, 기침소리가 나고서야 마스크위에 코를 감싸며 나왔다.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또 15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어제 저녁 집에서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고, 한 줄이 나와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들은 증상조차 경미했기 때문이다. 빨리 음성이라는 결과를 듣고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15분 뒤 아들의 이름이 불렸다. 보호자인 나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양성입니다.”

    “네.. 네?!?! 양성이라구요?”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고,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녀석은 양성이라는 단어보다 아빠의 격양된 목소리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의사는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고, 의사와 간호사가 지시해주는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자동문을 나온 우리 둘은 계단을 이용해 약국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약을 타고나서야 ‘나도 검사를 해야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올라가 동거인으로 검사를 했고, 음성판정을 받았다. 병원 문을 나서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다행이 아들의 컨디션은 좋아보였다.


    “아들, 괜찮아. 아들도 처음 겪고, 아빠도 처음 겪는 일이잖아. 너무 걱정안해도 되니깐. 엄마한테 전화해서 학교에 못 간다고 연락하자.”


    “아버지, 미안해요. 저 때문에 출근이 늦어져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100퍼센트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늘 어떤 가면을 쓰고 있죠. 예의를 차려야 하고, 멋져 보이고 싶고, 약점은 숨겨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감정의 민낯을 드러낼 일도 드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의 민낯을 볼 수 없어 오해를 하고,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합니다.
_유병욱《평소의 발견》(북하우스)


    이날 아들의 코로나 양성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의 감정표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작은 아들과는 달리 큰 녀석은 초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감정표현을 잘한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아이가 가끔은 부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아이가 곧 어른이다. 어느 순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백퍼센트의 자기를 들어내지 않으며 생활한다. 나라는 얼굴에 나다움이란 가면을 쓰고, 감정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러니 어린 아들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피어내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 일인가?




    조금 늦은 출근길이다. 봄 햇살은 더욱 강렬했고 나는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9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뜬금없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의 감정표현에 문득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9년 전 여름, 의식이 없던 나의 아버지. 임종을 눈앞에 두고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모였다. 몸에는 온갖 선들이 붙여져 있었고, 호흡은 산소마스크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제 곧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선생님 말이 이어졌다. 산소마스크가 뿌예지다 투명해졌다를 반복했다. 모니터의 숫자가 낮아지고 그래프가 일직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감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떨어지고 나서야 모든 게 멈췄다. 나는 끝내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귀를 닫으신 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죽음 앞에서도 그 흔한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로 대신했던 것이다.



10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문득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 본다.


“사실, 그날 아버지에게 제일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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