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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Apr 29. 2022

당신의 ‘푸른 꽃’은 무엇인가?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하지만, 꽃은 반드시 다시 핀다.

당신의 ‘푸른 꽃’은 무엇인가? 세상 속에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지라도, 마음속에서 당신이 찾는 푸른 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것을 환영이라고 부르든 신비주의라고 하든, 당신이 추구하는 수뭄 보눔(summum bonum-‘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라틴어)은 무엇인가?
_류시화《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더숲)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푸른 꽃을 찾아다닌다. 세상 속에서는 현실에 적응하며 지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젠가'라는 희망 하나쯤 품고 다닌다. 당신이 찾는 푸른 꽃은 무엇인가? 당신의 푸른 꽃은 무엇인가?




    나팔꽃이 하루 피고 이내 입을 다물기까진 녀석에 대해 전혀 몰랐다. 사실 아는 것이 없었다고 봐야한다. 이 녀석이 덩굴식물인지도 몰랐고, 꽃은 7~8월에 핀다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보니 봉선화 무리 속에서 한 줄기에 의지해 위로만 올라가는 녀석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놈은 다른 놈이구나.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거 나팔꽃인거 같은데?’


< 너무 많은 봉선화 새싹들 분갈이 한 후 >


    약 두 달 전 내 사무실 창가에 작은 화분을 들였다. 흔히 말하는 다이소 2천 냥 화분이다. 화분에 흙을 주고, 씨앗을 심었다. 해바라기, 봉선화, 나팔꽃이다. 봉선화는 씨앗이 너무 많아서 따로 화분을 하나 더 마련해서 심었다. 해바라기는 씨앗2개, 나팔꽃은 대여섯 개였다. 시간이 흐르고 해바라기와 봉선화에는 새싹이 돋았고, 나팔꽃은 결국 새싹을 틔우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봉선화 새싹에 분갈이를 해서 넓은 화분으로 옮겼고, 이때 틔우지 못한 나팔꽃의 흙도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섞어서 옮겼다. 그리고 화분에는 봉선화만 이름을 적었다. 나팔꽃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잊혀져갔고, 봉선화랑 해바라기는 사이좋게 광합성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어느 날 숲이 우거진 봉선화 줄기사이로 잎사귀가 다른 모양의 새싹이 돋아난다. 약간은 삐죽삐죽한 봉선화 잎과는 달리 하트모양을 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굵은 봉선화 줄기 옆에서 수줍게 하트를 날리며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는 빨랐고, 키가 가장 큰 봉선화 줄기를 결국 재치고 나서야 존재감을 드러내며 창문에 달라붙었다. 너무 가느다란 줄기가 창문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무게중심이 자꾸 치우쳐 그 끝이 땅을 향해 꼬꾸라졌다. 나는 이 아이를 지탱해줄 막대를 찾아 나섰다. 사무실을 뒤적였다. 60cm가 넘는 지지대 하나를 화분 깊숙이 박아주고, 덩굴의 줄기를 지지대에 살포시 감아주었다. 이놈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자세로 어느새 지지대와 한 몸이 되었고, 이 후 옆 화분의 해바라기의 키를 따라잡을 모양새로 쭉쭉 뻗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어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화분을 들여다보는데, 나팔꽃이 한 송이 피었다. 딱 한 송이었다. 예쁘기도 했지만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드디어 내가 사무실에서 꽃을 피우다니! 폰을 들고 사진에 담았다. 파스텔 보라색에 가까운 나팔꽃은 존재감만으로도 당당했고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을 알리든 소리없이 나팔을 불고 있었다. 그것이 이 나팔의 마지막 외침이었다는 것을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팔꽃은 일명 바람둥이 꽃이라고 불린다. 꽃이 햇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한낮에는 활짝 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지는 저녁이나 밤새 그 자태를 드러내고, 아침이 되면 오므라든다고 한다. 나는 그 날이 이후로 나팔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 꽃이 정말 딱 하루만 꽃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밤에는 다시 피고 해가 뜨면 움츠려 드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 확인을 위해 내가 사무실에 밤샐 수 없는 것이다.


    매미는 성충이 되어 맴맴~ 소리를 내기 위해 약 6년의 시간동안 애벌레기를 거쳐야 한다. 대나무는 성장하기 위해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움직임 없이 버틴다. 나팔꽃은 정말 하루 반짝이기 위해서 남의 어깨를 빌려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것일까? 아님 아직 나의 식물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서 나팔꽃이 폈다졌다를 밤새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비록 씨앗심기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지금 이들에게는 꾸준히 물을 줘야하는 반복되는 행동과 새싹이 돋고 커가는 과정을 관찰해야하는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이 초록이들의 성장하는 과정 속에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잠시나마 고민해본다. 화무십일홍,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하지만, 꽃은 반드시 다시 핀다.


다시,

당신의 푸른 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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