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글쓰기’와 관련된 온/오프 모임에서 최근 ‘필사 21일 챌린지’를 시작했다. 습관이 되는 최소의 기간이라고 하는 21일 동안 운영자가 제시하는 책 속 문장을 그대로 필사해도 되고, 본인이 평소 좋아하는 문장을 따라 적어도 되는 방식이다. 내 노트에 빼곡히 잠들어 있던 수많은 문장들을 하나씩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선뜻 신청하고 참여했다.
약 8년 전부터 책을 읽고 난 뒤 문장을 수집한 나의 노트엔 어느새 280여 권의 책 속에서 건져낸 문장들이 자기를 불러내 주길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천천히 한 문장씩 살펴보며 녀석들을 끄집어낼 모양으로 마우스를 아래로 내리길 반복했다.
그러다 한 문장에 눈이 멈칫한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의 권유로 올해 읽었던 김영하 저자의 《단 한 번의 삶》 이라는 책이다. 저자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표현이 너무 인상 깊어서 언젠가는 나도 써먹을 요량으로 저장해 놓았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이 책을 소개해준 동료에게 이 표현이 너무 와닿았다며 꼭 인용하겠다고 얘기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저 젊은이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곧 두 아들을 갖게 되고, 군 생활은 성공적이지 않으며, 잠깐 은행에 몸을 담게 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결혼생활은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처럼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꿈꾸던 일은 끝내 하지 못할 것이고, 가족을 위해 은퇴 없이 일하다가 육십 대 초반의 어느 아침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다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_김영하 《단 한 번의 삶》(복복서가)
이 문장을 오늘의 필사로 선택하고 노트에 따라 적기 시작했다. 다 적은 노트는 인증샷과 함께 온오프모임 글쓰기 카페에 사진을 업로드한 후 필사에 대한 내 느낌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저 아이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을 위해 유리공장에 취업하게 되고, 그게 본인이 생을 다할 때까지의 일이라는 걸. 잠깐 직장을 그만둘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용직으로 이어갈 것이다. 결혼생활은 전통혼례식에서 약속한 것처럼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오십 대 후반에 우연히 간암을 선고받고서도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갓난아이 때 차던 기저귀를 늙으막에 다시 찬 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고, 모든 가족·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떨구고서야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필사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기억을 복귀시키며, 나를 과거로 안내해준다.
아버지가 까막눈이라는 걸 알아챈 건 내가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50대 후반에 간암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를 석 달에 한 번 모시고 부산대병원에 갔었고, 재발과 색전술을 정기적으로 하던 어느 날, 담당 교수의 권유로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다. 임상시험센터가 있는 낡은 뒷건물로 가서 수많은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진료나 입원 시 필요한 서류는 보호자인 내가 서명을 했었다. 그런데 임상시험 참가는 본인 자필 서명이 필요하다며 담당 간호사는 환자 본인에게 볼펜을 건넸고, 망설이던 아버지는 끝내 본인의 이름조차 적어본 적이 없었다는 말을 나지막이 뱉고 말았다. 당신의 큰아들(형)은 명문대 박사과정까지 밟고 국립대학 교수로 키워 놓으셨으면서 정작 본인은 서명조차 못 한 삶을 사셨으니, 작은아들(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우셨을까? 담당 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는 아버지의 둔탁한 손을 내 손으로 덮으며 그렇게 수십 장의 서명을 마무리한 채 밖으로 나왔다.
우린 아무 일 없었던 마냥 병원 옆쪽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고, 김밥천국에서 말없이 콩국수를 먹은 기억이 이번 필사를 통해 스쳐 지나간다. 그 뒤로 아버지는 달력 뒷장의 하얀 여백을 본인의 이름으로 채우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고, 당신의 이름 석 자 정도는 거뜬히 채울 수 있는 ‘필사’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일단락되었다.
그 뒤로 몇 년간 부산대학교병원을 친정처럼 다녔으며,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태(척추에 암이 전이)에 이르렀을 때는 입원생활로 이어갔다. 약물치료로 섬망 증상을 보였을 땐 모든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그 힘듦이 더 이상 힘듦이 아닌 그리움으로 느껴질 땐 아버지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다.
_박웅현《책은 도끼다》(북하우스)
이제 아버지의 부재의 슬픔조차 시간 속에 풍화되어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 가끔은 슬프다가도, 평생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도 두 아들을 기꺼이 올바르게 키워낸 사실이 대단하다 여겨진다.
아버지의 달력위에 필사
어버지를 문장따라 필사
어느새 나도 비슷한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보다 더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이럴때면, 쇼미더머니에서 가수 송민호가 불렀던 ‘겁’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