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빨간 띠 따던 그놈, 4품을 땄다

결과보다 오래 본 것은 그 과정이었다

by 마음이 동하다

녀석이 올해 중3이 되었다.

브런치에 「초딩 빨간 띠 따던 날」이라는 글로 한 번 등장했던 그놈, 우리 집 첫째 아들이다.

일곱 살 때 유치원 태권도 유아체능반에 다니며 1년 내내 데굴데굴 구르기만 하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정식으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구김 하나 없는 새하얀 도복을 입고, 얼룩 하나 없는 흰 띠를 배 위에 단단히 묶은 채 도장으로 향하던 작은 등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발차기도 제대로 안 되던 아이였다. 몸은 둔했고, 동작은 서툴렀고, 표정만 늘 비장했다. 그랬던 녀석이 빨간 띠를 따던 날, 괜히 벅차서 끄적였던 글이 있었다. 그 글이 문득 떠오른 건, 아마도 시간이 참 빠르다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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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이 되기 한 달 전, 올해 2월.

큰아들은 국기원에서 진행하는 태권도 4품 심사에 도전했다. 성인 기준으로 치면 4단에 해당한다고 했다. 품증은 일정 나이가 되면 단증으로 바꿀 수 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입대 전에 품증을 단증으로 바꿔 가면 군대 안에서 하는 태권도는 대체로 열외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까마득한 내 군대 시절엔 분명 그랬다. 고작 1품이었던 나도 그 덕을 봤으니 말이다.


그런데 4품이 단순히 태권도를 오래 했다는 증표만은 아니었다. 이날 처음 알았다. 일정 조건이 되면 도장을 운영할 수 있는 사범의 자격과도 연결되고, 심지어 일부 공무원 시험에서는 가산점까지 붙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3품까지만 따고 한동안 그만두었다가, 4품을 응시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다시 돌아와 특별심화반 같은 데서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데 묘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시간과 땀, 좋아하는 운동마저도 벌써부터 점수와 조건으로 환산되는 것 같아서. 중1, 중2 때는 공부 때문에 쉬었다가, 4품 앞두고 다시 학원에 와 바짝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우리 집 놈은 그런 계산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랐다.

그저 초1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태권도장에 갔다. 잘해서 간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빠르게 늘어서 간 것도 아니다. 그냥 꾸준히 갔다. 어떤 날은 가기 싫다고 투덜대면서도 갔고, 어떤 날은 도복을 입고 괜히 우쭐해하며 갔고, 어떤 날은 땀 냄새를 진동시키며 돌아왔다. 어쩌면 그 오랜 시간의 의미는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자기 자리를 지켰느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사 당일 아침, 녀석은 평소답지 않게 말수가 적었다. 계란프라이 하나에 밥 몇 숟갈만 겨우 뜨고는 상기된 얼굴로 도장으로 향했다. 함께 태권도를 다니는 동생과 아내, 그리고 나는 뒤이어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사직야구장 근처 부산시체육회 건물로 향했다.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는 그날 심사를 보는 사람이 녀석 한 명뿐이라, 사범님과 둘이 노란 봉고차 대신 개인 승용차를 타고 먼저 갔다고 했다. 그런 사소한 풍경까지도 괜히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는 별것 아닌 장면들까지 오래 붙들게 된다.


건물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1품부터 4품까지 심사를 보러 온 아이들과 성인들이 대기실과 복도를 빼곡히 메운 채 마지막 연습에 한창이었다. 작은 아이도 있었고, 다 큰 청년도 있었고, 이미 체격부터 범상치 않은 이들도 보였다. 그 사이를 지나 실내강당에 들어섰을 때, 우리 아들은 심사 준비를 한다며 어설픈 가부좌 비슷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엄마 아빠를 발견한 순간, 반가운 척은 하지 않고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리며 웃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안 웃는 것도 아닌, 사춘기 초입 남자애들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금세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표정 하나에 긴장, 민망함, 허세, 안도감이 다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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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는 여덟 명씩 진행됐다.

같은 조에 누구와 서느냐에 따라 더 나아 보이기도 하고, 덜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우리 아이 옆에는 발차기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여자아이 둘이 서 있었다. 품새는 자신 있어도 발차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녀석에게 그 장면은 꽤 치명적으로 보였다. 부모 눈에는 그렇다. 남의 아이 장점은 더 크게 보이고, 내 아이의 부족함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온다.

뒤에서 심사를 지켜보던 사범님은 괜찮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단순히 발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 동작이 얼마나 빠르냐만 보는 게 아니라 자세의 정확성과 기본기를 본다고. 무엇보다 4품을 앞두고 잠깐 돌아온 아이들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다닌 아이들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했다.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래 해온 아이.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성실하게 쌓인 시간.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평균 합격률이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는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큰아들은 평발에 발 아치 각도 문제까지 있어 몇 년째 고신대 재활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고, 교정 깔창도 신고 다닌다. 혹시라도 떨어질 경우 진단서를 첨부해 이의신청을 하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부모 마음이야 늘 흔들린다. 아이 앞에서만 태연한 척할 뿐이다. 그래도 끝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4품은 과정 끝에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우리가 아이들을 태권도에 보내는 이유는 어떤 자격이나 가산점 때문이 아니라, 하루 중 마음껏 뛰고 땀 흘릴 시간이 사실상 그 시간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우리 집은 국어, 수학 학원은 미뤄도 태권도는 쉽게 끊지 못했다. 이 아이에게 도장은 단순히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몸으로 버티고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넘어지고, 다시 서고, 숨차게 뛰고, 땀을 흘리는 일. 그건 책상 앞에서는 배울 수 없는 종류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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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가 끝난 뒤, 녀석은 아쉬운 얼굴로 연신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잘할 걸. 발차기를 더 올릴 걸. 품새를 더 또렷하게 할 걸. 그런 후회가 표정에 그대로 묻어났다. 아내와 나는 “잘했다”는 말을 했지만, 솔직히 그 말이 그 순간 아이 마음에 얼마나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늘 그렇듯 큰일 하나를 치르고 나면, 우리 가족은 먹을 것으로 위로를 대신한다. 잘했든, 못했든,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허기진 날들이 있다. 식탐의 끝판왕인 큰아들은 음식을 먹는 속도만큼 빠르게 그날의 긴장도 잊어버렸다. 역시, 녀석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 뒤.

합격 소식이 왔다.

우와, 싶었다.



대단하다, 정말.

운이 좋은 건지, 꾸준함이 끝내 점수를 받은 건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심사 보던 날에도 맛있는 걸 먹었는데, 합격 소식을 들은 날에도 또 맛있는 걸 먹자고 한다. 거의 먹기 위해 시험과 심사를 치르는 수준이다. 그런데 또 그런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아이는 아이답게 기뻐하고, 부모는 부모답게 뿌듯해한다. 별것 아닌 저녁 한 끼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중3이 되어도, 4품에 합격하고도 여전히 태권도를 계속 다니고 싶다는 큰아들이 대견하다. 그러면서도 한쪽 마음은 또 복잡하다.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 이제는 국어나 수학 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든 학원을 다 보낼 형편은 아니니, 아이도 그 사실을 눈치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늘 마음보다 앞서고, 부모의 선택에는 늘 계산이 따라붙는다.


몸매나 발차기를 보면 5품은 쉽지 않아 보이고, 고등학교에 가면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도장 갈 시간도 거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아마 올해가 이 아이가 가장 열심히 태권도장을 다닐 수 있는 마지막 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보내고 싶다. 적어도 저녁 한 시간쯤은 책상 대신 몸을 쓰고, 땀을 흘리고, 친구들과 부딪치며 크는 시간이 있었으면 싶다. 실제로 녀석도 말한다. 자기는 다른 친구들보다 체력이 좋은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안심이 된다. 공부 성적표에는 찍히지 않지만, 분명히 자라고 있는 힘이 있다는 뜻 같아서.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ꠗ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결과보다 과정을 오래 지켜보는 일이라고. 빨간 띠를 따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4품 심사를 보던 중학생이 된 지금도, 아이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조금은 부족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모 눈에는 그런 부족함까지 포함해서 자라는 게 보인다. 잘하는 모습보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더 오래 남고, 완벽한 동작보다 끝까지 해내는 얼굴이 더 크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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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더.

같은 태권도장에 다니는 두 살 터울 둘째놈도 어느새 3품이다. 형보다 몸도 좋고, 훨씬 날렵하고, 발차기도 잘한다. 형은 중3 올라가기 전에 4품 심사를 봤지만, 둘째는 올해 중1 가을에 4품 심사를 보게 될 정도다. 형의 심사 모습을 보고는 “내가 더 잘하겠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우리가 봐도 둘째는 운동신경이 탁월하다. 참 신기하다. 같은 집에서 크는 형제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그래도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자기 속도로 자란다. 누군가는 날렵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고, 누군가는 조금 느려도 오래 버틴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그 속도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빨간 띠를 따던 아이가 이제는 4품을 땄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자랐고, 우리도 같이 늙었다. 예전에는 띠 색깔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그 띠보다 그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아이 마음이 먼저 보인다.

그러니 이번 4품 합격은 단순히 하나를 더 땄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 다닌 시간, 쉬지 않고 버틴 시간, 그리고 아직도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보다도, 그 말을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중3이 되어도 태권도는 계속 다니고 싶어요.”


그 말이 괜히 좋았다.

아직은 이 아이에게,

땀 흘리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 같아서.



예전에 올린 빨간 띠 따던날,▼

https://brunch.co.kr/@smile05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