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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16. 2022

40대 중반에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는?

내 안에 쌓인 결핍,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 같은 것들을 찾아서

    ‘당근~’ ‘당근~’     


    휴대폰에서 알람이 수시로 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당근마켓에 #피아노 #전자건반 #디지털피아노 키워드 알림키워드를 설정한 탓이다. 지역근처의 판매자가 피아노 관련 중고물품을 올리고, 나는 알림소리에 맞춰 실시간으로 확인을 한다. 가 가성비 좋은 피아노 건반을 낚아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만에 가장 마음에 드는 적정가의 중고 디지털피아노건반을 내 품에 넣게 되었다.
 

< 이번에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디지털피아노 >



    사실 집에는 아내가 어릴 적 사용했다던 클래식 피아노(업라이트)가 작은방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결혼과 함께 우리식구가 된 이 피아노는 울림이 너무 커서 장식용으로 10년이 넘게 잠들고 있다. 물론 아주 가끔 아이들에 인사를 건넨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에 시간을 입을 다문 채 많은 짐들을 쌓아올려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적어도 사십대 중반 내가 피아노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생에서 벽을 만났다면
  피하지 말고, 노크해보세요.
  예의를 갖춰서 노크해보는 걸로요.
  어떤 벽은 정말로 다리가 됩니다.
  _유병욱 《세상을 바꾸는 시간,15분》(1255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유병욱을 처음 알게 된 건 약 1년 전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 짧은 강연을 통해 느낀 게 많았다. 자기가 평소, 아니면 살면서 꼭 해보고 싶었지만 못해본 것을 시도하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내용의 강의였다. 가슴에 와 닿으면 반드시 메모를 통해 기록을 해놓고 있던 터라, 메모장 어딘가에 적어놓았다. 그 것이 다시 열리기까지는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올해 초 읽은 《기획자의 독서_김도영》 책 말미에 유병욱의 책 소개가 언급되었고, 나는 365일 동안 잠들어있던 내 머릿속 유병욱 강연을 떠올린다. 발걸음은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 《생각의 기쁨》을 만나게 된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것,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당겨온 것들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살면서 내 안에 쌓인 결핍이라든지,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땅 파기’의 무서운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남의 의견보다는 ‘내 생각’이 중요합니다.

  _유병욱 《생각의 기쁨_유병욱》(북하우스)
 


    이 글귀를 읽는 순간 12달 전의 유병욱이 했던 강연이 생각났었다. 그리고 내 안에 쌓인 결핍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취향이 뭘까?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취향? 취미는 뭐가 있을까? 하고 싶은데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어느새 35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4~5학년인 내가 엄마에게 조르고 있다.

    ‘엄마! 나 피아노학원 보내줘~’

    ‘피아노 학원은 무슨!’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아마 그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이 사내 녀석이 무슨 피아노학원이냐는 핀잔의 소리였을 것이다. 몇 번을 조르고 졸랐지만 결국 내 발걸음은 태권도학원을 향하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다. 내 안에 쌓인 결핍이 피아노라는 것을 직감했다. 항상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렇게 나와 함께 35년을 더 지낸 것이다. 피아노 배운다고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나이인데, 너무 늦은 것일까? 이런 고민을 안 해봤다면 거. 짓. 말.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느낌도 달랐다. 실행력도 달랐다. 피아노에 대한 결핍을 깨닫고는 바로 도서관에서 피아노 독학과 관련된 책들을 빌렸고, 아는 지인을 통해 오래되었지만 디지털피아노건반을 무료로 얻었다. 이건 직장에서 연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집에서 오며가며 심심할 때 연습할 목적으로 알아본 것이 바로 초반에 언급한 ‘당근’에서 구입한 디지털피아노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둔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습득력이 빠른 것일까? 양손으로 피아노를 연습하는데 머리 따로, 눈 따로, 손 따로 이다. 반면 초등5학년 큰아들은 나보다 빨리 잘 배운다. 물론 아빠나 아들이나 독학이다. 가끔 아내가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 역할을 한다. 우린 무조건 따라야 하는 초보자다. 그리고 우리 둘은 선의의 경쟁자다. 지금은 ‘어머님 은혜’라는 곡을 누가 빨리 안 틀리고 연주하는가를 놓고 따로 똑같이 연습중이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여기까지 현재로서는 아들이 앞서고 있다. 독하다. 내가 느린 건지 아들이 빠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부럽다. 안 틀리고 두 마디 하는 큰아들이.
 
    피아노를 배운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내 안에 쌓인 결핍을 진진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피아노였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멈칫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인 까닭에 어느덧 어머님 은혜를 두 손으로 배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적어도 피아노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것으로 흐뭇하다. 언젠간 파헬벨의 캐논/캐논변주곡을 멋지게 연주할 상상을 해본다.


 


    오늘도 왼손은 도미솔 도미솔 도파라 도미솔, 오른손은 미파솔도 도시라솔을 틀리지 않고 연습해야 한다. ‘어머님 은혜’      



    어머님 은혜,
    오늘 퇴근길에 일흔이 넘은 어머님께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
    왜 그때 피아노학원 안보내줬냐고 웃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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