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Nov 15. 2019

비혼이 아니라 미혼입니다

- 비혼과 미혼의 차이점

가을이 되니 또다시 결혼 시즌이다. 이제 이 나이쯤 되니 웬만큼 축의금 기부를 끝마친 것 같았는데 동굴에서 물 떨어지듯 뜨문뜨문 이어진다. 스스로 기부천사를 자처하는 나에게 한 선생님이 "요즘 혼자 하는 결혼식도 있대."라고 농을 던진다.



혼자 하는 결혼식을 하면서까지 축의금을 걷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그들의 결혼식에 충분한 축하를 해주었고 그들의 부담을 느끼거나 서운하지 않을 선에서 예의를 표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내 결혼식에 와주면 땡큐고 와주지 않으면 그들의 밑천을 파악할 씁쓸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게 마음을 받았을 때 갚지 않는 사람을 굳이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곁에 둘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나는 더 이상 마음을 나눌 벗이 아닌 이용 가치가 끝난 지인에 불과할 테니까.  

어느 날부터인가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 연애를 하고 있지 않으며 결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비혼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나에게 비혼 주의자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 결혼 적령기도 지났고 연애도 하고 있지 않지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다. 다만 지금 결혼보다 좀 더 중요한 것들이 있기에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먼저 해결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1순위를 결혼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인연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당신의 모습이 바로 비혼이고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당신은 비혼 주의자입니다.


결혼에 관심이 없으면 비혼인 건가? 원치 않는 판정을 받고 억울한 마음에 사전을 찾았다.


비혼 주의자: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일컫는 말.  

 

그랬다. 결혼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난 비혼이고 비혼 주의자였다. 그런데 그 뒤에 있는 말이 내 신경에 거슬렸다.


비혼 주의자: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사람


다시 억울했다. 난 결혼 제도를 거부한 적이 없는데... 

비혼 주의자라는 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다른 의미의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결혼 제도에 거부하는 사람. 그 두 가지 뜻이 or이 아니라 and라는 점이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으면 결혼 제도에 거부하는 것인가?

3남매의 엄마로 한 평생을 헌신해 온 엄마를 보며 결혼은 여성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에는 공감해왔다. 하지만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일반적인 결혼의 형태와 다른 가족 제도를 추구하거나 지향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결혼 적령기를 훌쩍 지나서도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혼 제도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단 한 번도 결혼 제도를 거부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난 결과적으로 비혼이 아니라 미혼이다. 결혼 제도의 모순과 문제점에 항거하고 주체적 삶을 위해 그 제도를 선택하지 않은 멋진 비혼 주의자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꼬여버린 내 인생을 책임지느라 경제적인 여유도 못 만들고 인연도 놓쳐버린 평범한 미혼 여성이다. 평소 해준 것 없는 친척들의 과도한 관심에 상처 받고 비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 시대 신여성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