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드라이버로 사는 법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께서 15년 된 차를 증여해 주셨다. 총 주행거리는 52,000km. 거의 안 타셨다고 봐도 무방한 주행거리다. 15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 외관은 이미 고물 축에 속하지만 성능만큼은 신차 못지않다. 얼떨에 오너드라이버로 승격한 김에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둔 면허증을 세상에 꺼내리라 크게 마음먹었다.
"나도 운전 잘할 수 있거든! 그런데 둘 중 어느 게 브레이크지? 가운데였나?"
운전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는 쳤으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 운전에 대한 상식과 기본기가 없었다. 생명을 지켜줄 엑셀과 브레이크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실 친절하고 단호한 선생님이 필요했다. 다행히 먼저 초보운전 딱지를 땐 고교 동창 덕분에 좋은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6개월간은 아는 길만 다녀야 한다며, 자유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속도가 있어서 사고가 나면 크게 날 수 있으니 되도록 국도를 이용해서 다니라고 당부하셨다. 수업이 끝날 때쯤엔 그 말씀을 명심 또 명심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사람일이 늘 생각처럼 진행되던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계속 가야 할 일들이 생겼다.
한 번은 동아리 촬영 때문에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의 꽃집을 다녀와야 했었다. 혼자서는 주차를 못하니 나름 운동신경이 좋고 잔꾀가 있는 말썽꾸러기 남학생을 데리고 갔다. 그 녀석은 어디로 핸들을 돌려야 할지 모르는 내 모습을 보고는 자기가 선생님보다 더 잘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야! 무면허 운전은 불법이지만 장롱면허 운전은 합법이거든!"
제자에게 당한 무시가 나름 부끄러워 결국 비루한 변명을 외쳐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내 차 문은 돌려서 열고 시동을 경운기처럼 줄을 댕겨서 건다며 놀려댔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꾸 그렇게 말을 안 듣고 놀리면 트렁크 안에 모시고 드라이브를 시켜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운전때문에 낑낑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뒷자리 임부장님은 말씀하셨다.
"장선생님 여태까지 잘살았잖아. 그냥 살아.
왜 갑자기 운전을 한다고 해서 난리야. 편하게 살아. 편하게"
그렇다. 난 운전면허없이 몇십년간 아주 잘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좀 더 기동성을 갖추게되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더 많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운전이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가 만날 내 아이를 태우고 다녀야할때처럼 운전이 꼭 필요한 순간이 오기 전에 미리 익숙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맞서면 운전대를 잡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출퇴근만큼은 자유로운 초보운전이 되었다. 출근은 국도로, 퇴근은 자유로를 이용하고 있다. 자유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속도가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신호가 없고 도로가 넓어서 운전하기가 편하다. 선생님의 당부는 마음이 쓰이기도 하지만 자유로에서 100킬로 안팎으로 신나게 밟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버릇을 하다 보니 자동차 전용도로의 시원함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머지않아 '결초보은', '초보', '병아리 그림'을 제거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오늘도 운전대를 잡게 만든다. 초보운전을 붙이기엔 민망한 나이지만 나름 회춘한 기분으로 도로를 씽씽 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