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건
사람들은 서로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인간관계는 서로 모른 척하거나 무관심하면 더 나아질 게 없는, 행복할 수 없는 관계다.
“같은 값이면 껌정소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어쨌든 노력해야 하는 관계라면 좋은 쪽을 선택하도록 하자.
부모와 자식 관계를 들여다본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애인인 양 애틋하면서도 멘토인 양 믿고 따르는 이상적인 관계가 있는가 하면, 서로 불만과 불쾌감만 호소하는 어리석은 관계도 있다.
“물론 이상적인 관계보다 어리석은 관계가 흔하다.”
이런저런 이유나 핑계를 내세우는 어리석은 관계를 생각해 본다.
어리석은 관계들은 자신을 불편하게 한 사항들이 적당한 시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시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는 해결이고 반복하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력과 인내에는 뼈아픈 고통도 뒤따르기에 그런 괴로움 역시 감수하기 싫어서다. 그저 잠시 그때만을 모면하기 위해 부모든 자식이든 그 어느 쪽이든 잘 해결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무심히 저버리고 회피책을 따른다.
가령, 서로 멀리 떨어져 살거나 가끔 만나면 불편한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는 그릇된 판단과 방법을 대책이라 여긴다. 성급히 생각하여 발생한 갈등과 무심히 쿵 충돌해 버린다. 이러한 양상은 어리석은 관계들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탐구하여 자신을 격려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 위주로 왜곡해 판단한다. 주변을 보지 못한다. 자신만 생각하면 타인이나 사물, 자연 등 세상을 제대로 관찰하지(관심 가지지) 못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다.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과 더불어 모든 걸 같이 볼 줄 알아야 한다. “공존을 알아야 자기 자신도 보이고 자신도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는 전후 관계를 더욱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관계 자체를 그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서로 챙겨 주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지나친 고집만 부린다며 화내거나 슬퍼하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부모든 자식이든 그들 자신만의 벽을 세워두고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의사도 감정도 그 무엇도 서로 전달할 수 없다. 화내거나 슬퍼하면서 상대에게 퍼부은 말이나 행동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다.
이쯤에서 부모 탓, 자식 탓만 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떠오르리라. 어떤 관계일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부모 자식 간은 서로 ‘아군’이 확실한데 몰라보다니… 오히려 적이라 여겨 공격하거나 숨어 버리거나 피해 버리다니… 그러다 아군에게(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총을 겨눈다. 겨누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기도 한다.
화내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감정 상태의 일부분으로, 사람의 감정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인다. 내 인생에 존재하는 어떤 자원도 소중하며, 다른 사람들의 것 역시 소중하다._셰퍼드
“문제의 해결은 자신이 하는 거다. 결코 타인이 하는 게 아니다.”
마음의 평화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_셰퍼드
주체는 자신이기에 타인은 그저 도와줄 뿐이다. 만약 도움이 효과가 있으려면, 형식적으로는(겉으로는) 티 나지 않으면서 질적으로는(내적으로는) ‘힘이 나는구나!’와 같은 위로가 느껴지고, 양적으로는 ‘내 실력이 향상했구나.’와 같은 실질적으로 만족할만한 결과도 뒤따라야 한다. 즉 힘든 세상을 살며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어 그 존재만으로 힘이 나는구나, 행복하구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서로 숨은 노력이 깃들여진 존재로서 말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 핵심은 부모는 자식에게 advocate, 자식은 부모를 respect 하는 모습이 이상적인 관계다. 이는 모두가 하는 말이고 버젓이 모두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렵다. 뭐든 행동하기, 실천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태만함, 포기, 유혹 등을 거부하고 꾸준히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고통을 수반하는 반복적 순환이기 때문이다.
바늘의 떨림 없이 나침판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마디가 생기지 않으면 대나무가 자라날 수 없듯이,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깨짐-깨우침’을 겪으며 성장한다. 바로 이 ‘깨짐-깨우침’의 선순환적 반복 과정에 앎이 개입하면서 우리 삶은 성장한다. 미끈한 대나무 줄기에 마디가 생기는 과정과 나침판 바늘이 흔들리는 시간은 혹독한 시련이고 고통이다. 우리는 어떤 힘으로 이 ‘순간’을 버틸 수 있을까?_고병헌
우리는 과연 ‘시련과 고통의 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마음속 멘토(스승, 정신적 지주)를 간직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삶이란, 흔들리는 순간에 멘토가 곁에 있고 그 멘토와 소통한다. 소통으로 느끼고 깨닫지만 다시 흔들리고 또다시 깨닫는 삶 속에 늘 함께 있고 함께 있어주는 존재, 바로 멘토와 함께하는 삶이다.
“소중한 건 언제나, 늘 가까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
어떤 일이 있었을지라도 자신을 사랑해 주며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 그런 사람 관계는 바로 부모 자식 간이다.
부모와 자식은 세상의 그 어떤 현실과 고통, 시련이 닥칠지라도 함께 버티고 이겨내 줄, 서로에게 가장 위대한 멘토이자 스승이고 정신적 지주이다.
(20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