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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un 01. 2021

내가 좋아하는 시


인간이 하루 동안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일까.

보통 나는 한두 가지 정도다. 물론 아주 잘 제대로 해 내는 경우가 한두 가지 정도라는 뜻이다. 이럴 경우엔 하루가 만족스럽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하지만 하루에 대여섯 가지 복잡하게 엉킨 일을 해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너무 버겁다. 하루 중 쉴 시간이 전혀 없어 몸이 하나인 게 아쉽다. 하루를 바쁘게 보낼 땐 기계가 된 기분이다.

무얼 위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걸까.

왜 기어이 다 해낸 걸까.

잠시 여유도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은 밤늦게 침대에 눕는다. 지친 내 몸이, 피곤한 내 얼굴이 안쓰럽다. (발바닥에선 열이 나고 손목이 저릴 정도로) 쉴 틈 없이 움직인 날이다. 따끔따끔 열이 나는 발바닥, 아린 듯 저리는 손목, 내 힘든 하루와 함께 한 손과 발을 달래 주려고 폈다 오므렸다를 반복한다. 그런 후 힘내어 엎드린다. 팔을 뻗쳐 침대 머리 쪽을 더듬는다. 시집이다. 시집이 손에 잡힌다.

 ‘오, 시가 있었구나! 나를 위로해 줄 시, 시를 읽어보자.’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펼쳐 시를 읽는다.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궂은 날과 잃어버린 가방과 엉킨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이 세 가지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당신과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하든

그들이 당신 삶에서 떠나갔을 때

그들을 그리워하게 되리란 걸.


나는 배웠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삶은 때로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양쪽 손에 포수 글러브를 끼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다시 던져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열린 마음을 갖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대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 고통이 있을 때에도

내가 그 고통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날마다 손을 뻗어 누군가와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따뜻한 포옹,

혹은 그저 다정히 등을 두드려 주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 당신이 한 행동은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마야 안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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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다.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나는 울었고 그는 주저앉았다. 헤어져야만(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 것 같았다. 내 이별 통보를 나도, 그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절대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기로 마음먹었기에, 헤어지자고 말했기에 심장이 터져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헤어져야 했다.

그에게서 받던 모든 사랑을 내려놓은  하루 이틀 되면서 허전했다. 그래도 만나고 싶진 않았다. 친구들이 나를 챙겼다. 친구 JH 백합을 들고 와서 나를 위로했다. 따뜻했다. 열애 중이던 SJ “ 괜찮니?”하고 물어주고는 그녀 사랑을 만나러 뛰어 갔다. 실연당한 MS “ 그러면  .” 라고 힘없이 말하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쨌든  편들이 나를 챙겨 주고 있던 무렵, 그의 가장 친한 친구도 나를 찾아왔다. 내게 “나쁜 00”라고 말했다. 그렇게 많이 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지자고 했냐며 눈물을 비쳤다. 그래도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렇게 그날로 끝난  알았다.

그때는 헤어지자고 한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헤어져야만 했다. 그는 휴학계를 냈고 나는 계속 학교를 다녔다. 강의가 끝난 후 캠퍼스를 걸을 때, 다른 강의실로 옮겨 갈 때, 버스 안에서, 도서관에서, 혼자일 때 쓸쓸했다. 이어폰을 꽂았다. 그때부터 시낭송을 듣기 시작했다. 공허함을 시로 달랬고 그래야 안정되었다. 이별의 슬픔을 시와 함께 했다. 상실의 쓰라림엔 시가 최고였다. 그래서 이 시는 내게 특별하다.

(대학생  들었던 김미숙의 시낭송을 옮겨 적는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 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이생진


 https://youtube.com/watch?v=3hY2V-s7xMk&feature


(알 수 없는 마음의 요동이 일고) 세월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내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를.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없었다. 이유는 그 뿐이었다. 그저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게 힘들었다. 미안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힘들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는 연인들처럼 헤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그건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다.



유빙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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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운동하고 오는 길이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한 날보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다이어트 댄스를 한 날은 발걸음이 더 통통 튄다. 노폐물이 모두 빠져 나간 듯 몸이 가볍다. 땀의 결실이다. 땀을 흠뻑 흘리고 돌아가는 길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운동 후에는 세상이 달라진다.

‘이리 즐거울 수 있으랴.’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

모든 시인들의 계절, 오월

모든 연인들의 계절, 오월에 나는 운동이 좋다. 댄스가 좋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오월을 노래한다.


(/ 시원하다. 울 강아지와 함께 산책할 때 들어도 좋은 시로구나.)



오월의 노래



산뜻한

자연의 빛

태양의 반짝임

들에 미소 짓고


가지마다에

꽃은 피어나

온갖 새들

숲속에 지저귀네.


가슴마다에

기쁨은 넘쳐

대지여 아아 해여

행복이여 그리고 동경이여


아아, 연인

황금빛 이룬

그대는 아름다워라

언덕 위 아침 구름마냥


휘황토록 축복하는

초록빛 신선한 들을

꽃 안개 자욱이

가득 찬 세상을


아아, 소녀여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빛나는 그대 눈동자여

그대 나를 사랑한다.


나의 사랑처럼

종다리는 사랑하네. 노래와 하늘을

아침 꽃은

하늘의 향기를


나는 그대를 사랑하네.

뜨거운 피로

그대는 주시네.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그리고 또 새로운 노래와

춤을

영원히 행복 있으라.

사랑과 같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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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늘 딸은 늦잠을 잔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딸은 더하다. 예쁜 내 딸은 잠꾸러기다. 자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새근새근 아기 같다. 딸과 쇼핑하기로, 가족 모두 드라이브 가기로, 산책가기로, 외식하기로 약속한 일요일 아침엔 기다린다, 딸이 일어나기를.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을 땐 마냥 기다린다. 깨울 수가 없다. 그저 잠의 요정이 떠나길 바라며 기다린다.

잠자는 딸을 기다리며 읽으면 좋은 시다. 자고 있는 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 취하고 싶은 행동이 바로 이러하리라.



마리의 사랑



일어나라, 요 귀여운 게으름뱅이,

종달새 노래 벌써 하늘에 높고,

찔레꽃 위에 앉은 꾀꼴새도,

지절대고 있지 않니 정다운 노래를.


자! 일어나 진주 맺힌 풀을 보러 가자.

봉오리 관을 인 장미나무랑

엊저녁에 정성스런 손으로 물 준

예쁜 네 패랭이꽃들을 보러 가자.


어젯밤 잠잘 땐 오늘 아침에,

나보다 먼저 깬다고 맹세했었지.

허나 예쁜 소녀에겐 곤한 새벽잠


게슴츠레한 눈엔 아직도 단잠.

자아, 자! 네가 어서 일어나도록

눈이란 고운 입술에 뽀뽀해 주마.


피에르 드 롱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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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새로움이 주는 행복감을 만끽하는 데 여행만큼 좋은 게 있으랴.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신기한 음식을 먹을 땐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다. 여행지에서 예상치 않은 일들로 긴장하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예기치 못한 만남 속에서 발견하는 세상의 의미를 공존한다.

미지의 세계, 타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무얼 알게 될까.

피렌체에선 보티첼리를

밀라노에선 다빈치를

로마에선 단테와 미켈란젤로를 만났을 때

나는 무얼 느꼈을까.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각 사람의 운명은 행성의 역사와 같다.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 행성은 없으며

어떤 두 개의 행성도 같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눈에 띄지 않게 살면서

그 눈에 띄지 않음과 벗하며 지낸다면

그 눈에 띄지 않음 때문에

그는 사람들 가운데 매우 흥미롭다.


각각의 사람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그 세계 안에는 각자 최고의 순간이 있다.

그 세계 안에는 각자 고뇌의 시간이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 두 시간 모두 알 수 없다.


누구든 죽을 때 홀로 죽지 않는다.

그가 맞은 첫눈도 그와 함께 죽는다.

그의 첫 입맞춤, 그의 첫 싸움 …….

모든 것을 그는 데리고 간다, 모두 함께.


그가 읽은 책들, 건너다닌 다리들은 남는다.

그림을 그린 캔버스와 자동차들도.

그렇다, 많은 것이 남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것은 정말로 우리를 떠난다.


그것이 이 가차 없는 유희의 규칙이다.

사람들이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들이 죽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 많고 세속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았는가.


형제와 친구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엇을 아는가.

우리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들을 되돌아오게 할 길은 없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세계는 되살릴 수 없다.

그리고 매번 나는 이 되불러 올 수 없음 때문에

외치고 싶어진다, 어떻게 너마저 잃을 수 있겠느냐고.


예브게니 옙투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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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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