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원 지인을 만났다.
얼마만인가, 흐음 2년 반인가.
우리는 만날 장소를 모색하다가 서로가 사는 곳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코로나가 있으니 이왕이면 외곽 지역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최종 결정 하에 시흥에서 만났다.
나는 현재 쉬고 있고, 그녀는 삼성의 경쟁 회사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무척 반가웠지만 같이 대학원을 다닐 때와는 달랐다. 이런, 내가 아닌 듯한 순간이 요즘은 반복된다.
내가 생소하다.
체력을 핑계로, 또는 가족 성향을 핑계로 쉬던 차에 코로나가 발생했고 이제는 코로나 19까지 더해 그 핑계로 계속 더 쉬고 있다.
쉬는 중에 나는 글을 썼고, 그녀는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메모리 연구 개발을 했다. 그녀가 승진을 고민하며 회사 상황과 상사 얘기를 의논할 때, 나는 한동안 멍했다.
우린 둘 다 능력주의를 지향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나는 슬며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려놓고 있기에.
현재를 과도기라고 해야 하나.
아직 완전히 내려놓진 못했겠지.
‘능력, 실력’이라는 단어가 친숙했기에 집중해서 임했었고, 그 결과로 이루어내는 ‘성취’라는 단어가 익숙했다. 지금은 현재는 아니라 할 수도 없고 기다고(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그녀와 시흥 외곽의 자연 카페에서 공감 가는 대화를 나누며 갑자기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훅 올라왔다.
‘근래 답답했잖아.’
‘그래도 하던 게 있잖아.’
‘그럼, 책은, 책은 어쩔 거야.’
오 마이, 사회적 욕망과 자기만족 사이에서 나는 시험받고 있었다.
‘흔들리면 안 돼.’
‘이대로 좋았잖아.’
‘내 체력에서 할 수 있는 이 세계를 즐겼잖아.’
내 속이 마구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나를 잡아주었다. 일하면서 공부하던 시절, 그 시절에 우리가 아팠던 (우리가 함께 했던) 과거를 떠올려 줬다.
그래, 현재 내 체력과 상황에 만족하기로 하고선, 어떤 일이든 내가 가치 있어하고 내가 만족하면 된다고 여기던 세월을 유지하자고 되새겼다. 그렇게 나를 붙잡았다.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평정심이 자리 잡자 잔잔한 틈새로 나를 슬며시 바라봤다.
‘나는 물 속도 물 위도 아닌, 물 밖에 서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형체, 그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언가 바라보고 있구나.’
‘물속에서 헤엄치는 걸 즐기던 내가 물속은커녕,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도 아니고 물 밖에 서 있다니 난 도대체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갑자기 카페 안 냉기가 확 올라왔다. 몸이 심하게 차가웠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카페 건너편 음식점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내 몸과 내 기분을 데웠다. 밥을 먹은 후 우리는 또다시 커피를 준비해 야외 테이블에서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우린 서로 비슷했다.
뭐든 열심이고
뭐든 골똘히 생각하고
뭐든 성실히 전념했었다.
그래, 우린 완벽한 자신을 꿈꿨었다.
내 맘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두 번째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입만 댔을 뿐 그저 탁자에 올려놓은 채 그녀 얘기를 계속 들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고민이 있어 보였지만 둘러서 조금만, 아주 조금씩만 말하려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솔직한 듯 비밀스러운 우리는 항상 그 정도로 얘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얘기는 계속 이어졌고, 주차장엔 어느새 우리 두 사람 차와 누구 차인지 모르는 차 한 대까지 포함하여 모두 세 대만 남아 있었다. 어두워지자 무서웠고 더 추워졌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듯 ‘난 괜찮아, 난 잘 지내고 있어’와 같은 모습만 보여 준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지만, 기어코 말하지 못할 거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차 앞을 서성이며 날아가버린 뭔가를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놓쳐 버린 풍선 같은 말을 계속 잇는 그녀 얼굴이 창백했다. 그래서 추웠지만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추워서 차 안으로 들어가 계속 얘기했다. 차 안에서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틀어놓고 싶던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상사에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겠는가.
모두 다 똑같다. 감정이다. 찌릿한 그 느낌, 느낌.
“소중한 느낌, 행복한 설렘이다.”
야속하게도 간신히 용기 낸 그녀 입은 터졌지만, 겨우 스토리 전반부인데 카페와 음식점 불빛이 모두 꺼져 버렸다. 깜깜했다. 더 이상은 무서움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그제야 “우리 통화해요.”라고 여운을 남기고 헤어져 돌아왔다.
그녀는 답답했던 심정을 살짝 비추고 돌아갔고, 나는 잠시 흔들렸다. 그녀가 근무하는 이야기에서 욕구가 올라왔고 그녀 개인 스토리에서는 인간, 사람들의 순환이 보여서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우리는 다시 통화할 것이다.
그때 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진실과 허상, 진심과 가심, 그 실체를 난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2021. 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