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자
노인들은 못 느낄 정도로 사부작사부작 보슬비가 내린다.
놀러 나간 딸이 올 때도 비가 계속 오려나, 더 심히 내리려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성인이 된 딸이어서 알아서 우산 잘 챙겨 다니려니 하고 우산 있냐, 묻지도 않고 우산 들고나가지도 않았더니 딸은 서운했나 보다. 반복된 비 속에 요즘 뭐 그래, 하는 말에 우리에게 무심함이 쌓인 걸까, 괜한 걱정을 한다.
딸에게 슬며시 문자를 남긴다.
"보슬비 오네."
"너 올 때도 비 (더) 오면 연락해."
'더'를 넣었다, 뺐다 망설이다가 지워 버리고 문자를 남겼다.
"ㅋㅋㅋㅋ 아라짜용 ㅎㅎ"
애교를 듬뿍 넣어 이모티콘까지 남겨 주며 기뻐하는 딸 문자에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다. 유년 시절과 아동기에 딸을 귀히 챙기던 나를 떠올린다.
필름이 주르륵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
딸의 유치원 등하굣길,
초등학교 등하굣길,
방과 후 산책로 등
마구마구 찍힌 필름 박스가 돌아간다.
휴가 오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번에도 출타백 없이 그냥 오려나. 그럼 우산은?
"눈, 비 예보 있네. 우산 챙겼니?"
높은 베란다 창 너머로는 비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내려다보는 것도 무서워 베란다 창 밖으론 손도 못 내민다. 엘리베이터를 눌러 놓고 초록색 롱 패딩을 얼른 손에 움켜쥔다. 따라오려는 울강아지에게 금방, 금방 올 거야, 달래고 내려오니 흐린 공기가 촉촉하다.
'또르르' 폰 알람 소리가 난다.
"안 챙겼는데 맞을만하던데요?"
아들은 평서문에도 간혹 물음표를 넣어 문자에 답한다. 문학적인 고대 표현이다. 가끔 느낌표를 쓰기도 한다.
"ㅋㅋ 나와 보니 보슬비 내리네."
"ㅋㅋㅋㅋㅋㅋㅋ 괜찮아요."
차을 갖고 동서울 터미널로 데리러 가고 싶다. 이럴 때는 큰 사자 눈치를 본다. 곧 두 사자가 함께 며칠을 보내야 한다. 작은 사자가 할큄을 당하지 않으려면 큰 사자를 적당히 조율해야 한다. 자중하자, 자중하자, 되뇌며 차 키를 내려놓는다.
그래, 음식 준비하며 그냥 기다리자. ㅎㅎ
두 사자를 온순하게 지내게 할 마음을 가다듬으며(전략을 세우며) 요리한다.
사자들을 누르는 방법 1, ㅋㅋ 둘 다 모르게 챙기고 예뻐한다. 누구든 챙겨 주는 게 보이면 다른 한쪽 사자가 으르렁거린다. 며칠 동안 밀림의 여왕이 되어야 한다. 삼국지 95부작을 최근 마무리하며 쌓은 내공을 펼쳐 보련다.
곧 두 사자가 대치할 시간이다. "충성"을 외치며 좀 더 세어진 작은 사자가 현관을 들어서겠지. 오늘은 큰 사자가 어찌 힘을 과시할까.
울 작은 사자, 힘내라, 힘! 큰 사자는 좀만 힘써라, 힘!
둘 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