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책장을 펼쳤다가, 돌려보고 다시 뒤적여보는 그 과정 속에서 고대부터, 음식과 문명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사과와 배에 대한 상징들이라던가, 부서진 흉상들과 관련한 실내의 풍경, 문학 속 실내 정물들이라던가, 번역자의 말처럼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정물 전반이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현대, 미술사에서 자연사,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서 대중소설까지 느슨하면서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냥 눈으로 책을 따라가는 것은 충분치 않아 보였다. 나는 늘,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해 좌절이 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런데 이 책… 서평을 쓰라는 미션이 없었다면 진작에 책장 한 구석에 놓였다가 (보통 그렇듯)몇년 뒤쯤 문득 떠오른 생각 한 자락에 다시 뒤적였을 거였다.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마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감들. 그런데, 다시 앞으로 돌아와 보니 이 책은 그냥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었던 게 맞다. 조금의 위안을 받는다. 왜냐하면, 번역자 역시 번역을 통해 책을 읽고자 했다는 말로 시작했다는 것을 지나쳤다가는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나쳤다가 또다시 발견해 나가며 읽기 좋을 책. 전체를 파악해 보려는 무의미한 노력보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실마리를 붙잡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원하는 곳에서 시작해 원하는 곳에서 알아서 끝내면 될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체를 잠시 스캐닝해 보자면,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여름 과일 광주리
2. 운명의 두상
3. 사과와 배
4.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
1장에서는 정물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과일, 꽃, 생선 살아 있는 인간의 식탁에 올라와 있는 움직이지 않는 것. 정물화의 시작은 음식이었던가 보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 살아있던 닭이 음식이 되고 과수원에 열려있던 살아있던 과일이 식탁에 올라온다. 강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도… 부엌선반에 놓인다. Still life, 사람들이 포즈를 취할 때는 이따금씩 움직여야 하는데 음식들은 그렇지 않아 상대적으로 ‘스틸라이프’라는 단어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때는 살아있던 것들이 Stay Still… 가만히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 식사예절을 발전시키고 제사를 하면서 야생에서 문명으로…
2장에서는 두상으로 상징되는 인류와 예술, 문명의 순환에 대해... 정물이라는 장르에 내재된 상징들을 사용하는 설화와 우화, 즉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정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셜록홈스하면 떠오르는 것? 셜록홈스의 방에는 무엇이 있었나? 그의 집 실내 화학실험 기구들, 탁자, 바이올린, 범죄 관련 신문기사를 모아 놓은 스크랩 북, 벽난로, 담뱃잎…..
홈즈의 실내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의 로더릭 어셔, 그리고 홈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탐정 오귀스트 뒤팽의 실내에 그 기원을 둔다. 63p.
그리고, 이어지는 3장에서는 인류가 재배해 온 가장 오래된 과실 수 두 가지인 사과와 배, 이들은 5세기 그리스에서든 소로의 일기에서든 숙어처럼 붙어 다니고, 고전 시와 산문에서도 상호 보완적인 상징으로 사용된다. 정물화의 오랜 역사를 통해 사과와 배의 조합은 한 쌍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소로의 사과와 배, 그리고 세잔이 재발견한 사과.
개인적으로는 4장의 토리노의 니체와 조르조 데 키리코가 자못 궁금했었는데… 데 키리코의 수수께끼 같은 풍경과 정물의 묘한 그림에는 니체의 ‘되풀이되는 운명’에 영향이 있었고, 니체는 토리노에서 말과 관련한 일화가 있었다. 그리고 스틸라이프는, 마지막 엘리엇의 시로 전체를 마무리한다.
샤르댕의 조화로움에서 세잔으로, 세잔에서 브라크와 피카소로, 그리고 그들에서 데 키리코의 기하학적 에니그마로 이동하듯, 아모스의 비전은 여름 과일 광주리에서 신이 다림줄로 벽을 만드는 비전으로 이동한다. 정물화는 이런 비전들 중 둘 중 하나의 상징일 듯하다. 하나는 가을의 수확을 꿈꾸고, 우리가 거기까지 관리해 가는 과정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기반에 따른 건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조이스는 블룸의 방과 식사, 그의 음식과 그의 도시의 피난처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견고한 전통 속에, 문명의 고요한 중심에 정물을 배치했다. 건축과 정물과의 상호 관계는 더 탐구되어야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속엔 탁자 위에 음식은 없고 책과 악기만 있으며, 어셔의 집은 쪼개져 심연으로 떨어진다. 피카소의 정물의 이미지는 폭력과 가정의 평온이라는 극과 극에 놓여 있다. [번트 노던]에서 엘리엇은 탁자 위에 장미 꽃잎이 담긴 그릇을 언급하며 (그리스 꽃병을 바라보는 키츠와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자두를 보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골 부엌에 있는 사과와 배를 그린 세잔처럼) 다음과 같이 명상한다.
오직 형태, 패턴에 의해서만,
말이나 음악이 정적에 닿을 수 있는가
중국 항아리가 아직도
그 정적 속에서 영원히 움직이듯.
Page. 210-211
시간은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이라는 말.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선형의 개념을 둔 것은 어쩌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하나의 개념툴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에니그마
즉,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환영을 제거하면 그 세상은 하나의 에니그마, 수수께끼. 즉 현실의 본질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들을 모두 다시 하게 하는 상태가 된다. 168-9page
작가가 하는 말들을 아직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현재까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여전히 자연으로부터 온 음식을 먹으며, 제사를 지내고, 빵과 와인의 상징은 현대의 성당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사과와 배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며, 우리의 공간 속에는 음식 또는 책, 기타의 사물들이 있다. 고대부터 살아있던, 음식을 구해 만들고 먹고, 사물을 만들고 그리고, 책을 쓰고, 이런저런 삶의 과정들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문명과, 사회, 그리고 사물과 예술, 문학을 만들어놓고 사라졌고, 여전히 그대로. 사람들이 살아있던 그 시간과 공간을 다시 조용히 흡수하고 다시 또 다른 의미로, 다른 연결들로 풀어내는 스틸라이프들이 있다.
각주들이 친절하게 달려 있으나, 다시 그 실마리를 붙잡고 서핑을 해야 할 사람들과 내용들이다. 이런 단편적인 이해로 서평을 쓴다는 것이 괴로우나, 끝나지 않는 읽기. 게임하듯 뒤적이고 펼쳐보며 미로의 구석구석, 다시 한번 탐험에 나서 볼 의향이 있다는 변명으로 마무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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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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