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노트
전시장에는 코가 없는 덩치 큰 흰 코끼리가 한 구석을 차지하며 서 있고, 자유로운 선의 분명하지 않은 초록빛 스케치들이 드문 드문. 한 방을 지나면 거대한 숲 빛 코끼리가 있다. 색에 빠져 든다. 아크릴과 오일스틱을 같이 썼다고 했다. 캔버스 세폭으로 코끼리의 거대함이 살아났다. 수많은 선들을 겹치고 겹쳐 내니 코끼리가 숲이 되었다. 한 녀석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표정이라고 나는 느꼈다. 뒤돌아서면 왠지 모를 슬픈 눈의 코끼리가 또 함께 있다. 코끼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면 흔들리는 맑은 물. 그리고 흔들리는 꽃과 바람의 풍경. 다시 안으로 들어서 볼까. 온통 흔들리는 풍경들이다.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꽃밭이니까. 밤의 풍경이니까. 흐릿한 풍경을 건너, 흰 여백과 들리지 않는 속삭임, 나는 듯한 선들이 바람처럼 흩어지는 마지막 방을 만난다.
전시도 메시지도 간결했다.
흔들림. 본다는 것에 대해 코끼리를 통해 전달한다. 낯선것들의 결핍, 소외, 흔들림.
이 코끼리의 이야기는 세종실록의 한 마디로 시작된다.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어 병들고 굶어 죽지 않게 하여라.” 1421년 3월 14일, 세종실록
600여년 전, 태종 11년 동물외교로 코끼리가 한반도에 들어 왔다. 그런데 덩치가 크니 먹는 양은 많고, 별 쓸모는 없다. 코끼리가 궁금했던 한 사람이 기대와는 다른 추한 몰골을 보고 비웃으며 침을 뱉어버린 순간 화가나서 발길질을 했는데... 졸지에 살인코끼리가 되어버렸으니 이를 어찌하나. 태종은 이 동물을 유배 보냈다. 그리고 세종도 과업을 이어 받아 실록에 이 말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600년 전의 꽃과 풀, 나무 지금의 꽃과 풀 나무, 그리고 미래의 꽃과 풀 나무, 하늘, 물, 달, 별의 풍경은 같을 것이다. 그 시간의 풍경들을 흔든다. 그 시선들을 흔든다.
작가는 흔들림에서 만큼은 한 획을 긋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코끼리도 흔들리게 하고, 풍경도, 들리지 않는 속삭임들도 온통 흔든다.
사람들에게 흔들림이 갖는 정도와 강도 규모는 다를 것이다. 살랑거리는 바람도 흔들림이고, 휘몰아치는 공황상태도 흔들림이다. 흔들림의 스펙트럼 역시 넓다. 장애미학을 연구하는 이토아사는 서로 다른 신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똑같은 몸은 없으며, 그 몸의 다른 경험들을 장애, 즉 결핍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메소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미학에서는 메소드라는 용어로, 이를 조금 더 이해가 쉽게 해보면, “다름을 다툼이 아닌 도움의 이유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내가 공부하는 퍼실리테이션에서의 표현이다. 같은 의미의 각기 다른 언어들에 대해서도 흔들면서 생각해본다.
글 Ayla J. 2024.03.11
참고:
본다는 것, 흔들림, 코끼리. 600년전 세종대왕의 한마디, 그리고...
시상 한달만에 폐지된 광주 비엔날레 박서보상의 첫번째 수상자, 엄정순 작가, 우리들의 눈,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프로젝트, 두손갤러리, 정동1928아트센터 건물
...
흔들리는 코끼리, 두손갤러리(~3월16일까지: 작가와의 대화 혹은 도슨트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