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리즈
전업 작가가 아닌 데다 시간을 들여, 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자가 아니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늘 공개하지 못하던 작업들을 한 번 꺼내 볼까 싶다. 감추고 싶은 내 마음은 오간자로 슬그머니 덮었다. 아무튼 요약된 작품노트를 묻는 질문 앞에서 두서없이 주절대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자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리즈 – 껍질〉
거칠고 투박한 나무껍질은 흔히 사람들의 시선에서 외면당하곤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생명과 시간을 견디며 축적된, 복잡하고도 섬세한 패턴들이 숨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나무의 덩치와 모양, 나뭇잎의 푸르름을 보느라 무심히 지나치곤 하는 나무껍질의 표면에 주목하고, 드로잉과 설치등을 통해 그 안에 감춰진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꺼내 보려 애쓴다.
‘자이언트 세쿼이어’라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두꺼운 껍질과 독특한 구조 덕분에 저강도의 산불 속에서 살아남고 오히려 그로 인해 번식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열에 의해 굳게 닫힌 솔방울이 열리고, 빛과 공간이 확보되며, 경쟁 식생과 병균이 제거되는 일련의 과정은 오히려 생태계 갱신을 위한 촉진제가 되는 것이다. 나무에게 껍질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연약함을 지키는 방패이자, 생명을 퍼뜨리기 위해 스스로 비바람을 맞고, 갈라지고, 두터워지며 진화해 온 생존 장치다.
눈에 보이던 것들은 어느 순간 감춰지고, 보이지 않던 내면은 새로운 의미가 되어 드러난다.
내 작업은 나무와 껍질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안의 아픔과 슬픔, 보호와 성장처럼 얽히고설키며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본다.
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