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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Jan 02. 2023

[100-2] 기억과 기대사이

(feat. Antony Gormley, SoundⅡ)

기억과 기대사이

Antony Gormley, [SoundⅡ]



내일,

그러니까 다가오는 미래의 어느 날 속 나의 모습을 늘 기대한다. 어떤 상황은 지금과는 다르게 펼쳐져 있기를, 또 어떤 상황은 지금과 같이 지속되기를.


2023년 이후는 또 새롭게 달라지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2022년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5~6년간의 노트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웠던 날들이었다. 어느 해에는 정신적으로 버틸 힘조차 없어 약에 의존했던 날들도 있었고, 어느 해에는 발버둥 치느라 해보지도 않던 일들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도해봤던 날들도 있었다. 매 해를 열면서 내년에는 부디 이 상황에서 탈출해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대로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써 내려가 보기도 했고, 비전보드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내 힘으로 할 수 일이 아니구나 싶어 기적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를 해보기도 했던 날들이다.  


그렇게 나의 지난 5~6년간은 어떤 역학자의 표현처럼 폐허 속에서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옥죄어 오는 올무에 걸린 줄도 모르고 버둥대던 날들이었다. 상황이 그러니 나는 늘 기대했다. 내일은 여기서 탈출할 수 있기를, 내일은 제발 나의 모든 상황들이 마법처럼 달라져 있기를…   


시간과 공간 사이, 과거의 사건들은 그렇게 점처럼 하나 둘 놓여왔다. 나의 지난날들은 다시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그 당시 나의 생각과 감정과 몸의 경험들은 어느 순간 의식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체가 없는 기억들뿐이다. 어떤 기억들은 뇌 속에서 제멋대로 연결되고 조작되며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들은 생각으로, 생각은 다시 말과 글로 혹은 이미지로 재생산된다. 나의 현재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의 순간들이 교차되고 이어지며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글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 되돌아보았을 때 꿈꾸던 미래의 어느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존재하고 있을 나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qhttps://orthodoxartsjournal.org/on-the-gift-of-art-part-v-the-threshold/

거칠게 요동치며 연결되고 조작되는 생각과 감정들 속에서 잠시 고요함을 찾고 싶을 때 보게 되는 작품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SoundⅡ]이다. 이 작품은 중세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영국의 윈체스터 성당의 지하 한 구석에 놓여 있다. 마치 사람들의 눈길이 많이 닿지 않는 책장 끝의 책 한 권처럼 고요히, 묵묵히 서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 https://andrewpickettphoto.com/winchester-cathedral-flooded-crypt-antony-gormley-art

안토니 곰리는 자신의 실제 몸을 사용하여 조각물을 만드는데, 그 과정도 꽤 흥미롭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석고틀을 뜬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고치처럼 몸에 촘촘히 감싸진 석고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작가에게는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와 똑같은 형체의 몸 하나가 만들어지는데, 그 몸들 은실제의 어느 공간 속에 실제 사람의 사이즈가 되어 놓인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과거에 지어진 한 고딕 건축물 안에 현대 미술이 함께 공존하며 시각적으로 공명을 일으킨다. 중세의 성당 지하에 서 있는, 현대에 사는 그의 몸 안에는 튜브가 연결되어 있다. 장마철이 되면 물은 그의 무릎 높이까지 차오르면서 몸 내부의 튜브를 통해 모아진 그의 두 손 사이로 고인다.


그는 늘 때가 되면 자신의 손에 차오르는 물을 묵묵히 바라본다.


사진출처 https://andrewpickettphoto.com/winchester-cathedral-flooded-crypt-antony-gormley-art


작가는 묻는다.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억과 기대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당신은 기억의 과정을 환기시기는 물리적인 혹은 가시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것을 항상 그런 형태였던 것처럼 생생하게, 마치 이슬이 맺히거나 얼음이 어는 것 같은 그런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How do you make a memory?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memory and anticipation? Can you make something that is physical which at the same time evokes the process of remembering? Is it possible to do this and make something fresh, like dew or frost- something that is, as if its form had always been like this.’

– Anthony Gormley, Thoughts on Domain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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