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세상, 몰입할 수 있는 나의 작은 방

3. 피터 일스테드, 바느질 하는 어린 소녀

by Ayla J
2048px-Peter_Ilsted,_En_lille_pige_der_syr,_ca_1900,_RKMm0084,_Ribe_Kunstmuseum.jpg Peter Vilhelm Ilsted, A Little Girl Sewing, 1898–1902, oil on canvas, 62.5 × 55 cm, Ribe Kunstmuseum


연한 복숭아빛 커튼 너머로 나무들인지 모를 초록 풍경이 드문드문 스쳐 보인다. 소녀는 잔잔한 햇빛을 받으며 자기 몸만큼 큰 의자 위에 앉아 조용히 꼬물거리고 있다. 달랑거리는 다리가 귀엽다. 무엇보다도 저렇게 시간을 잊고 한 가지에만 몰입해 있는 그 시간이 그립고,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시선을 옮겨 방 안을 살펴보면, 화면 왼쪽 책장 아래는 비워져 있다. 그 위에는 갈색 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지 궁금해진다. 탁자 위에는 꽃병 하나가 심심하게 놓여 있고, 그 위로 금빛 테두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은 부드럽고 은은하다. 그런데 탁자 쪽 벽에는 훨씬 강한 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빛은 어디에서 들어오는 어떤 빛일까. 햇빛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인공적인 빛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은 덴마크의 판화가이자 화가 피터 일스테드(Peter Ilsted)의 ‘바느질 하는 어린 소녀’다. 피터 빌헬름 일스테드(Peter Vilhelm Ilsted, 1861–1933)는 빛과 그림자에 집중해 고요하고 차분한 일상의 실내 장면을 즐겨 그렸다. 그는 덴마크에서 널리 알려진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의 매형이자 가까운 친구였다. 둘은 코펜하겐 인테리어 스쿨(Copenhagen Interior School)의 핵심 인물로도 꼽힌다.


초기에는 유화로 실내를 자주 그렸지만, 1906년 전후부터는 메조틴트(mezzotint) 판화 기법으로 유화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명암과 빛을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00년 전후, 집 안의 방 자체를 아틀리에이자 주제로 삼는 흐름에 깊이 관여했다. 산업화, 도시화로 바깥세상이 급격히 변할 때, 덴마크 작가들은 ‘집 안의 정돈된 방’에 안정·질서·조용함을 담아냈다는 해석이 있다.


산업화로 외부는 소란스럽고, 어쩌면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스테드가 그린 방 안은 화려하지 않고 고요하며, 물건도 많지 않다. 요즘 말하는 미니멀리즘을 한발 앞서 실천하고 있었던 셈인지도 모른다. 외부 세계가 통제되지 않고 시끄러울수록,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 안으로 숨는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농담처럼, 세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를 의도치 않게 공격할지 모른다. 그것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큰 목소리로만이 아니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도,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도 다가온다. 이를테면 30초마다 생각이 끊기는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말을 거는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제 우리의 방 안조차 더 이상 온전히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숨을 곳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 가만히 조용히 한 가지에 몰입해 있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까.


덴마크 화가들이 산업화의 소란 속에서 ‘정돈된 방’을 그려냈던 것처럼, 오늘의 리더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는 판단받지 않고 생각해볼 수 있다”는 조용한 방을 열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방이 있을 때, 팀원들은 비로소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렇게 이 소녀처럼, 각자의 바느질에 천천히 몰두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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