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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Nov 10. 2024

14화 징검다리

꿈이 이루어지는 길

삶은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 알렉산더 맥퀸 -


입사 3년 차에 경기도 화성에서 근무하며, 노량진의 작은 전세 빌라에서 출퇴근 중이었다. 길이 많이 밀려 서둘러 출근했지만, 왕복 3시간의 운전과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는 일이 점점 고단해져 갔다. 그러던 중, 나를 많이 아껴주시던 거래처 사장님이 이러한 힘든 출퇴근 사정을 아시고, 회사 부근에 위치가 좋고 분양 중이던 아파트를 추천해 주셨다.


경기도 화성시 발안주공아파트로, 새로 지어진 15층짜리 아파트 단지였다. 총 882세대가 14개 동에 나뉘어 있었고, 내가 입주한 집은 14층의 남향으로, 멀리 산과 도로가 펼쳐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록 장기 임대주택이었지만 새 집이었고, 거주 5년 후 분양을 원하면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매력적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20분으로 줄어들었고, 넓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안락한 공간이 생긴 덕에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대학 4학년 때, 예기치 못한 이유로 제적된 후 방황하던 시기에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따뜻한 선후배들을 만나 가까워졌고, 자연스레 성가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가는 내게 음악으로 드리는 기도와 같아, 노래의 실력보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된 성가대원들은 완벽한 음과 박자를 중시하는 분위기였고, 악보도 제대로 모르고 음악적 지식이 무지한 나는 점점 성가대 활동이 힘들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년연합회 회장을 맡게 되어 바빠지면서, 성가대 활동은 자연스럽게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가대에는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 인연은 지금도 소중하게 이어지고 있다. 매년 성가대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정기 공연을 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후원금 마련 행사였지만 사실은 우리들만의 축제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날도 친한 선후배들을 돕고 술 한잔하고 싶어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화성에서 올라와 행사를 도왔다.


부족한 행사 준비를 돕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발표회가 끝나고 난 뒤 가까운 형들과 후배들과 술 한잔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단장을 뽑기 위한 회의가 먼저 열렸다. 그해는 특히 발표회 준비 중에 단장과 부단장 간의 의견 충돌이 많아 서로 상처를 입었고, 아무도 단장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추천받은 단원들 역시 개인 사정으로 포기하면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성가대원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 누구도 소중한 성가대를 위해 단장을 자청하지 않는 상황에 상처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나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무심결에 손을 들었다.

“다들 상황이 어려워 아무도 안 하신다면,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방 근무로 자주 참석하기는 어렵지만, 미사 전 성가 연습과 미사는 가능하면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매년 열던 발표회는 제가 준비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발표회를 생략해도 괜찮다면 1년간 맡아보겠습니다.”


누군가 징검다리가 되어 어려운 시기를 넘겨준다면 그 뒤에는 다시 분위기가 좋아질 거라 생각하며 역할을 맡아보려고 자원을 한 거다.


활동을 중단한 지 오래되어 일부 단원들은 내가 단장 자격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찬반 투표가 진행되어 우여곡절 끝에 2005년도 성가대 단장이 되었다. 

새로운 단장이 선출되어 뒤풀이가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올라와 굳이 내 성향과 맞지도 않는 성가대 단장을 왜 맡겠다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도 나에게 단장을 하라고 권유하거나 추천한 사람은 없었다. 주변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뒤풀이가 끝난 후 일주일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다 일요일에 성당에 다시 갔다. 원래 성가대 자리는 3층이었는데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2층에서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때 미사 끝 무렵에 피정 홍보가 들려왔다. 서울대교구에서 진행하는 피정 주제가 ‘선택’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며 달려오며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온 내게 이번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과거의 선택들에 대한 생각도 되돌아보고 싶어 피정을 바로 신청하고 성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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