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길
삶의 목적은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춤추듯 살아가는 것이다.
– 마야 안젤루 -
새벽에 출근해 흰색 코란도밴 차량을 타고 덜컹 거리는 현장 길을 따라 올라갔다. 생산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내려와 전산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나가는 물량을 확인하며 클릭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량진에서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원하지 않았던 일반 회사에
스물아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모든 게 불안하고 낯설었다. 준비된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 쫓기듯 지내며 불안감에 시달렸다.
보통 아침 7시 전에 출근해서 저녁 7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부족했던 자신을 증명하기 해야겠다는 마음에 성실히 2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기계처럼 일만 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당시 여자 친구도 없었고, 특별한 취미도 없어 삶이 즐겁지 않았다.
계속 앞만 보고 달려가는 끝이 정해진 폭주기관차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본능적으로 밀려왔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과 그 행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재밌게 봤던 일본 영화 '쉘 위 댄스'가 떠올랐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해진 한 중년 남성이 우연히 스포츠 댄스를 배우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 이야기였다.
'나도 댄스를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음악도 운동도 좋아하던 내게 맞을 것 갔았다.
입사 후 경기도 안성에서 근무하다가, 1년도 안 돼 화성 사업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숙소가 아닌 노량진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매일 지나치던 사당역 사거리에서 그날따라 퇴근길에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XN댄스 학원 간판을 보고 본능적으로 차를 몰아 들어갔다.
축구 선수들이 골이 잘 들어갈 때는 골대가 크게 보인다고 한 것처럼 매일 지나가던 그 길에서
안 보이던 댄스 학원 간판이 눈에 크게 다가왔다.
주차를 하며 어떤 댄스를 배울까 막연히 생각을 했을 때, 처음엔 방송 댄스를 고려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수업 시간표를
보니 현실적으로 참여가 가능한 수업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저녁 재즈댄스반이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수업에 참여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재즈 댄스복과 댄스화를 구입해 수업에 들어갔다.
재즈댄스는 현대무용과 비슷한 동작이 많고 혼자 추는 춤이었다.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놀랐고, 다른 수강생들도 당황을 했을 것이다.
25명 정도의 수강생이 모두 여성이었고 나만 혼자 남자였다.
그렇게 출입문 바로 앞 좌측 끝에서 댄스 수업은 시작이 되었다.
어렵게 시작한 댄스 수업인 만큼 열정을 갖고 참여했다.
수업을 시작하면 40분 정도는 스트레칭과 기본 턴, 점프 연습을 주로 하고 나머지 20~30분 정도작품을 익히는 시간이라 힘들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일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꼈다.
땀 흘리며 춤추는 내 모습이 잘하지는 못하지만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 재즈댄스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 아침에 더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마쳤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회식이 있다고 하면 수업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고 용기 있게 말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상사분들도 내가 댄스를 배우면서 더 밝고 좋아 보인다며 수업이 있는 날이면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그날도 맨 뒤 좌측 끝에서 앞에 계신 선생님이 뒷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중간에 선생님께서 "여러분 저를 보지 말고 앞에 거울을 보고 따라 하세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습관적으로 선생님 뒷모습을 보고 연습을 해와서 그대로 지속을 했다.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여러분 "제 엉덩이를 보지 말고 거울을 보고 따라 하세요."라고 말한 후에야 수강생들이 내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웃음을 터뜨렸고, 모두 웃음이 터져 수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한 동안 내 시선을 의식하는 수강생들의 묘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1년 동안 재즈댄스를 배우면서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댄서가 되어 있었다. 작품 몇 개를 연습해 발표회에 서고 싶었으나, 시기가 맞지 않아 무대에 서질 못했다. 그래도 댄스를 배우며 더 즐겁게 지내니 일에도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처음 생긴 우수사원 제도에서 추천을 받아 상도 받았고, 사보에 '댄스를 사랑하는 신입사원'이란 주제로 인터뷰도 실리게 되었다.
그렇게 댄스를 배우다 아쉽게도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지만, 언젠가는 무대에 서서 발표회를 해보겠다는 마음에 댄스복과 댄스화를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