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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Oct 27. 2024

12화 새로운 시작

꿈이 이루어지는 길

미래를 만드는 것은

당신이 포기하지 않은 오늘의 꿈이다.


– 존 맥스웰 -


서른을 앞둔 나는 원하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안성의 산골짜기에서. 첫 출근길, 마치 군대에 입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라던 일은 아니었지만, 좌절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현실과 마주해야 할 나이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노량진에서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청와대에서 근무할 거라고 기대했을 텐데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현실에 자존심이 상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안성의 사업장에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여자 선배가 있었다. 큰 눈에 환한 미소를 가진 선배는 유쾌하고 시원스러웠다. 내가 일을 할 때면, 그 선배의 시선이 느껴졌다. 복사기나 팩스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면, 필요한 순간마다 재치 있게 도와주었고, 숙소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알뜰히 챙겨주었다. 그 따뜻한 배려에 새로운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하게 되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5년은 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그 후에도 행복하다면 계속 근무하고, 그렇지 않다면 떠나자.’

이 다짐을 가슴에 새기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첫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가진 초심을 절대 잃지 말자고 자주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매일 아침 7시 전에 출근하려고 노력했다. 한 달에 5,000 km 이상 장거리 운전하며 현장을 누볐고, 내가 맡은 거래처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 다른 경쟁사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처음 마음먹은 대로,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내일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서울 본사, 광화문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커져갔다.


어느 날 본사에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나 본사 재무팀장인데, 당신 전공이 어떻게 되지?"


"네~ 저는 사회체육 전공하고 영어과 복수전공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재무팀 직원들이 당신이 함께 부서에서 근무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을 했어. 전공은 전혀 다르지만 근무하면 동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가슴이 벅찼다. 전공도 다르고 부족한 게 많은데 나를 믿고 본사 재무팀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그동안 노력한 걸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재무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소장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셨고, 크게 화를 내셨다. 내가 소장님이 없는 사이  다른 부서로 가려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소장님 위에 있는 임원분이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재무팀장 출신인 그분은 내가 있는 영업부서 임원으로 승진해 오셨기에, 그분의 영향력은 강했다.


전공도 다르고 재무팀에는 적성도 안 맞아 보인다며 지금 하는 업무나 제대로 하라고 재무팀에 가는 걸 힘으로 막아 버리셨다.


실망감이 컸다. 같은 일이 반복되며 답답함이 커질 무렵, 다시 본사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 의전담당이자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분이었는데 임원분이 본인의 후임으로 나를 추천했다며 본사에 회장님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3년 만에 처음 회장님을 뵙고, 광화문 본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본사의 위치는 광화문 끝자락에 있는 빌딩이었고 회장님 집무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무실에 노크한 후 들어가니, 하얀 백발에 풍채가 좋은 회장님이 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분의 뒤편 창문 너머로는 는 청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당시에 청와대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자리가 회장님 집무실이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물어보시는 질문에 답을 드리고 회장님 집무실을 나오는데 '내가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들어가길 원했던 청와대를 내려다보면서 근무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면접을 마치고 지방 사업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연락이 왔다. 회장님께서 나를 후임으로 뽑아서 근무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노량진에서 청와대에 입성을 꿈꾸며 3년을 보냈던 나는, 이제 광화문에서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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