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이러다 죽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1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의 책임은 무겁지만,
그 무게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 Paul Cluny -
재무상담사 일을 시작하고, 고정 급여 없이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우연히 대학교 연합서클 선배를 역삼역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연매출 100억 원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 되어 있었다. 선배와 차 한 잔을 하며 지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앞으로 많은 도움을 주겠다며 자주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에게 갑작스러운 전화가 걸려왔다.
"너 지금 현금으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되냐?"
확인해 보겠다고 하자, 그는 곧 알아보고 연락 달라고 했다. 퇴사 후 새 일을 시작하며 함께 일하던 형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줬지만 아직 받지 못했고, 남은 금액은 마이너스 통장에 남아 있는 2천만 원뿐이었다. 나는 솔직히 선배에게 상황을 말했다.
"금액이 얼마 안 되네... 회사에 입금될 돈이 지연돼 갑자기 자금이 필요해서 그런데, 다른 데 말하기는 창피하니 2천만 원이라도 1주일만 빌려줘라."
망설였지만, 믿을 만한 선배라고 생각했고 그의 약속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를 포함해 연합서클 선후배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10억 원 넘게 빌리고 갚지 않아 사기죄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어리석은 결정으로 우리 가족은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선배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의 결과였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취득한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제휴된 금융사들을 정리해 재무상담사 전단지를 만들었고 상단에는 나의 사명서를 적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올바른 재무설계를 통해
잊고 지내던 소중한 꿈과 웃음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종로 3가 귀금속 상가부터 청계천 공구 상가까지 매주 한 번씩 방문하며 상인들에게 재무상담사인 나의 소개가 담겨있는 전단지를 나눠드렸다. 하지만 상가 곳곳에는 이미 사탕을 매단 전단지가 널려 있었다.
어느 상인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뭔데 전단지에 사탕도 안 달고 오는 거야?"
그럼에도 처음 마음먹었던 다짐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 도움을 주는 재무상담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지키며 더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생명보험, 손해보험, 증권사, 저축은행 등 다양한 상품을 다뤘지만, 소속된 생명보험사의 상품 경쟁력이 점점 떨어졌다. 회사에 개선을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았고, 소비자에게 최선의 상품을 추천할 수 없다는 고민 끝에, 매니저님과 논의 후 다양한 회사의 상품을 비교·판매할 수 있는 재무설계 회사로 이직하기로 했다.
2013년 1월 새 회사로 옮겨 교육을 받아보니 소비자에게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무렵,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집 근처 사립초등학교에 운 좋게 합격했지만, 예상보다 학비 부담이 컸다. 새 회사에서는 소비자에게 좀 더 유리한 상품만 추천하다 보니 소득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결국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딸이 2학년 때 바로 집 앞의 공립초등학교로 옮기자고 했지만, 가족은 단호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것도, 선배들을 믿고 돈 빌려준 것도, 이직해서 소득이 줄어든 것도 당신 선택이니 책임져. 학교를 옮길 수는 없어."
틀린 말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힘들었다. 내 선택으로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딸의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심각한 출혈이었다. 담당 의사는 말했다.
"왜 이렇게 미련하게 참으셨어요? 이러다 정말 죽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응급실에서 두 팩의 수혈까지 받고 입원을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가 원인이었다.
결혼 9년 차, 바쁘게 일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었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하숙생 같은 사람이었다. 부담스러운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달리다 병원에 누워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끝이구나.'
가족은 바쁜 일상 속에 병원에 한 번 다녀갔을 뿐이었다. 4일간 입원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고 퇴원했지만, 가족과 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몸은 치료받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상처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