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이의 오리 친구
다시 쓰는 <미운 오리새끼>
옛날옛날, 깊고 어둡고 무서운 산속에 새까맣게 죽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햇빛도 들지않고 바람도 불지않아, 물이라고는 바닥에서 뽀끔뽀끔 솟아나는게 전부였죠. 너무 외지고 비참해, 길잃은 밀렵꾼 말고는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 호수를 떠날 수 없어. 여기가 내 집이니까. 꾸아악 꽉 꽉~~”
더킹 (Ducking) 이 소리쳤습니다. 줄줄이 새끼들을 달고 다니는 아버지 오리 더킹은 비록 다 죽은 호수라도 버릴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첫째 오리가가 하소연합니다.
“아버지, 우리 살기도 힘든데 저쪽에 큰 백조들까지 있어서 너무 좁아요.”
오리나도 거듭니다.
“아버지, 백조들이 우리 물을 다 마셔요. 쟤들은 마셨다하면 바닥을 내요.”
오리다가 칭얼거립니다.
“아버지, 백조들 좀 쫒아주세요. 무식하게 덩치만 커서, 얼굴도 보기 싫어요.”
더킹은 날개에 바짝 힘을 주고 아이들을 달랬습니다.
“자, 이렇게 아버지처럼 해봐. 재네들한테는 정말 쎄게 나가야해. 우리가 좀 작다고 얕보거든. 다같이 무섭게 소리지르자, 하나, 둘, 꾸악 꾸악 꾸아악~~”
오리라, 오리마가 함께 악을 씁니다. 오리바는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습니다. 오리사는 아예 머리를 처박고 숨어버렸습니다. 오리아는 무서워서 이미 눈물이 글썽글썽합니다. 오리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도데체 우리는 왜 맨날 싸우는거야?”
한편, 호수의 나머지 반쪽에는 백조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역시 영역을 자꾸 침범하는 오리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 저 째끄만 녀석들이 자꾸 시끄럽게 해요. 우릴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것 같아요.”
쌍둥이의 형 까망이가 점잖게 말했습니다. 묵묵히 호수를 지켜온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 저녀석들이 자꾸 시비를 걸지만, 그래도 우리는 백조다. 백조는 백조의 가훈을 따른다. 다들 잘 알고 있지?”
“교화의 힘! 교육의 승! 교양의 덕!”
둘째 하양이가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는, 아직 솜털이 뽀송한 하양이를 꼭 안아줍니다.
“너는 아직 감기가 낫지 않았으니 집에 있거라. 우리가 저녁 거리를 찾아 올테니, 호수를 잘 지키렴. 저 가운데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안돼. 알지?”
아버지는 까망이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훨훨 날아갔습니다. 혼자 남은 하양이는 조금 심심해졌습니다. 호수 반대편에서 왁자지껄하게 놀고있는 오리들이 부러웠습니다.
“같이 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쟤들이 나랑 놀아줄까?”
안보는 척… 옆눈으로 슬쩍슬쩍 훔쳐보며 접근하던 하양이에게 누군가 진흙을 던졌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오리차였습니다.
“야! 못난이 백조! 너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거야? 저리 꺼져!”
“백치! 하얀 바보다! 덩치는 돼지만한게 왜 새처럼 굴어? 돼지 새! 꿀꿀 새! 쓸데없이 근육만 키워가지고.. 하나도 안 예뻐! 너랑은 안 놀아!”
옆에 있던 오리카도 놀려댑니다. 분위기 탓인지 백조의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근데 몸은 하얀데 왜 눈은 까매? 이제보니 너 팬다구나? 까르르르…”
오리타의 말에 모두가 하양이를 둘러싸고 놀렸습니다. 팬다! 팬다! 돼지팬다!!!
“이것봐, 모가지는 길고 엉덩이는 퍼지고… 그러니 하루종일 빈둥거리지. 살빼고 오면 놀아줄께. 너 그렇게 게으르면 둔탱이 눈사람된다! 이것봐, 둔해서 감각도 없지?”
오리파가 부리로 하양이를 쿡쿡 찌릅니다. 놀란 하양이가 도망가려했지만, 빙 둘러싼 그들을 뚫고 가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때....
“도와줘! 꽈아아악~~ 꽈아악~~~”
오리 가족의 막내 오리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가 하양이를 괴롭히느라 정신없던 사이에, 몰래 다가온 밀렵꾼이 오리하를 낚아챈겁니다. 커다란 망 속에 갇힌 오리하가 울부짖습니다.
“형아~ 누나아~~ 살려줘!! 꾸아악~ 꾸아아아악~~~”
“고 녀석 누가 오리 아니랄까봐 되게 시끄럽네. 여기 완전 오리밭이잖아? 어떤 놈을 잡을까? 산채로 가져가서 돈을 더 받아야지!”
신이 난 사냥꾼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오리들은 사방팔방 흩어지며 도망가려 애쓰지만, 짧은 다리로 뛰느라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넘어지고 요란만 떨 뿐, 힘없이 망 속으로 잡혀들어갑니다.
“살려줘요~ 꾸아악~~~”
“안돼! 오리들을 놔줘! 꼬오우욱~~ 꼬우욱~~”
하양이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칩니다. 최대한 날개를 크게 열고 펄럭거립니다. 두배는 되어보이는 모습에 흠칫 놀란 사냥꾼이 잠시 쳐다보고 웃습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허허, 고놈 참.. 아가야, 넌 걱정마, 백조는 안 잡아요. 너는 저쪽 가서 놀아.”
여섯마리, 일곱마리… 줄지어 잡혀가는 오리들을 보며, 용감한 하양이가 부리까지 크게 벌리고 사냥꾼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나쁜 아저씨야! 친구들 놔줘! 놔주라고!”
“아니, 이 녀석이 왜 이래? 저리가! 저리가!”
두 팔을 휘두르는 틈에 손에 들었던 망이 툭 떨어지고, 오리 몇마리가 탈출을 합니다. 화가 잔뜩 난 사냥꾼이 하양이에게 돌을 던집니다.
“이 백조가 미쳤나? 너 안잡아가니까 저리 가라고! 오리 잡는데 왜 니가 난리야???”
“꾸오오오욱~~~”
난데없이 커다란 괴성이 들리고 익룡처럼 커다란 그림자가 사냥꾼을 덮칩니다. 양 날개로 세차게 내려치며 사정없이 공격을 하는 아버지와 까망이! 어린 하양이를 도와 사냥꾼을 쫒아냅니다.
“하양아, 부리를 다쳤구나. 많이 아프니?”
아버지가 빨갛게 부어오른 하양이의 부리를 호호 불어주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오리들이 많이 놀랐어요.”
“오호, 내 동생 용감한데? 아까보니까 팔뚝에 근육도 장난아니고? 다 컸네?”
슬며시 뒤에 다가온 오리 더킹이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꼬마백조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했어.”
더킹 뒤로 줄줄이 숨은 오리들이 쭈삣거립니다. 헛기침 한두번에 한마리씩 용기를 내어 하양이에게 다가와 인사합니다.
“아까 놀려서 미안해. 넌 정말 정의롭고 용감하구나.”
“그래, 우리 때문에 많이 슬펐지? 그냥 너 혼자 있길래 건드려봤어. 미안해.”
“너도 위험했을텐데 우릴 도왔어. 네가 최고야. 정말 멋져!”
“비겁하게 숫자 많은것만 믿고 널 괴롭혔어. 넌 이렇게 좋은 새 인데.. 용서해줘.”
“우리 이제, 호수 반반 나누지 말고 다 같이 놀자. 이만큼 큰 호수에 사이좋게 사는거야.”
둥지로 돌아오는 호수에 노을이 퍼집니다. 뽀끔뽀끔 솟아오른 물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금새 마른 바닥을 채웁니다.
“어? 물이다! 물이 다시 솟아난다!”
찰랑찰랑 시원한 물을 잔뜩 들이마신 꽃과 나무들이 쑥쑥 자라납니다. 오리 가족과 백조 가족들이 기다랗게 물살을 가르며 수영합니다. 꽈악꽈악... 꼬오옥... 여름이 가기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물고기들도 몰려들겁니다. 까만 하늘에 달이 오르고 물내음 맡은 사슴이 돌아오면, 어쩌면 그때는, 행군에 지친 군인 아저씨도 잠시 쉬러 올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