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공주와 두갑이 / 잔혹동화

그래도 이번 겨울은 피할 수 있어...

by 신소운

립스틱을 바른다. 약간의 새도우를 쳐주면, 거울 속 나는 어른이 된다. 열네살이 싫다. 스무살, 스물 두살이고 싶다. 돈을 벌어 원룸을 얻으면, 하얀 순면 이불을 얹은 원목 침대와 화장대 세트로 방을 꾸밀거다. 부엌은 필요없다. 어차피 냄새나고 살만 찔 거.. 먹을것 따위는 방에 들이지도 않을거다. 바짝 마른 몸으로 날씬하게.. 돈만 많이 벌거다.


엄마아빠가 싫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싫었다. 육십 다 되어가는 아빠는 염색도 못해 더 늙어보이고, 여기저기 아프다며 방구석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런 아빠를 먹여살린다고 맨날 나가 도는 서른 두살 엄마… 미친거다. 돈이 없으면 낳지를 말았어야지. 지네 나라에서 얼마나 못살았는지 모르지만, 제정신으로 저런 할배한테 시집오지는 않았을거다. 덕분에 나도, 나까지, 나는, 나만…


“얘는 뭐야, 진짜 동남아야? 꼬맹아, 돈벌어서 외할머니 갖다 줄라고 왔어?”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작은 키와 거무스름한 피부.. 다르게 생긴 얼굴.. 어쩌면 이제 관상으로 남아버린 가난이라는 이름표 때문에, 늘 남보다 몇배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노력해도, 난 그들에 비해 많이 부족한, 째끄만 동남아 계집애일 뿐이다.


“엄지야, 이리와봐. 아저씨랑 뽀뽀 한번 하자, 오천원 줄께.”


작은 식당일수록, 좁은 주방일수록… 아버지 나이의 주인 아저씨들은 더욱 추접해진다. 아줌마라고 도와주는 건 없다. 까르르 웃으며 부추긴다.


“그래, 아저씨 외롭다는데 한번 해 줘라. 뭐 어때, 많이 해봤잖아? 용돈 벌고 좋겠네?”

“어쭈? 주제에 튕겨? 너네 나라에서는 오천원도 큰 거야. 가서 네 엄마나 불러와, 한뼘도 안되는 것들, 오천원 주고 밤새 끼고 자야겠다.”


그만두고, 그만두고, 그만두고… 수없이 많은 알바를 그만두었다. 집 근처에서는 더이상 일할 곳이 없을만큼, 계속 그만 두었다. 빈손으로 집에 가는 게 제일 싫었지만 어쩔수 없다. 만원이라도 있어야 하루 굶지 않을텐데, 그 만원 한장이 잡힐듯 말듯.. 매번 나를 약올린다.


........


“한건 들어왔어. 잘해, 큰거야.”


매일 담배를 하루 두갑씩 피운다해서 별명이 ‘두갑이’인 친구다. 초딩때부터 따라다녀서 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친구가 없어서 같이 다녔단다. 괜찮다. 덕분에 나도 혼자이지 않았고, 두갑이랑 있으면 다른 애들이 날 괴롭히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비슷한 점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동남아, 두갑이는 새엄마가 동남아… 그리고 우린 둘 다, 지지리도 가난해 일분 일초도 집에 있기 싫은, 빈집과 기차역이 더 포근한, 반 가출상태의 불량 청소년이다.


수완이 좋은 두갑이는 내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항상 가까이에서 돌봐준다. 이번 일은 쉽다. 임신한 고딩 여친을 원하는 대학생 오빠다. 살림 차릴 보증금을 달라고 조르다가 마지막에 설득당하는 척 하면서, 수술비와 위자료 오백을 뜯어낸다… 무려 자기 친부모한테…!! 좋겠다, 돈이라도 뜯겨 줄 부모가 있어서... 더 좋겠다, 그렇게 살아도 대학생이라서.


“아싸, 쫌팽이들.. 오백 바로 주네. 받어, 약속한 거… 야, 근데, 너 이거 받고, 그만큼 더 줄께, 나랑 사귈래?”

“난 시간당으로 받아. 오빠 돈 많어? 오백 가지고는 얼마 못갈껄? ”


갑자기 똥씹은 얼굴이 되어 쌍욕을 퍼붓는다. 무슨년, 무슨년, 무슨년… 수년째 많이 들었다. 새로운 욕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나보다. 그가 후려치는대로 길바닥에 쓰러져 주었다. 우쭐할거다. 우월하다고, 너까짓거 한주먹이라고 신났을거다.


“야 이 창녀야, 쌀국수 맛이나 나는 기집애가 뭐? 시간당? 네 애미도 너 시간당으로 받고 낳았냐? 아 xx, xxx..xx..”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중 아주 정의로운 몇명은 그를 막아선다. 친절하고 고상하게, 모두에게 다 들리도록, 입을 열어준다… 마지막 고객 서비스다.


“야, ### 대 $$ 학과 3학년 %%%! 너 폭행, 폭언에 미성년자 성매수로 고소 당할래? 니 부모 경찰서 오면 디게 좋아하겠다, 자식한테 사기당해서 돈 뜯긴것까지 아주 잘 돌아가네. 아저씨, 이 자식 못 도망가게 꽉 붙잡으세요, 신고하게요! “


도와주는 척, 두갑이도 함께 달려든다. 재빨리 그의 지갑을 낚아채고, 뒷일은 몰려든 다른 사람들한테 맡긴다. 혼란한 틈에 그대로 도망이다. 돈 벌었다. 신고도 못할 오백이 거저 들어왔다.. 바보같은 놈…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는 삶의 진리를 아직도 못깨우쳤나..


“우와, 간만에 크다. 이거면 몇달은 살 수 있어. 어디다 숨겨놓지?”

“엄지야, 우리 진짜로 방하나 얻어서 같이 살자. 이렇게만 하면, 둘이 잘 살수 있어.”


두갑이가 같이 살자고 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방만 안 얻었을 뿐, 집에 안들어가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이걸로 될까? 보증금에 월세, 먹는거, 입는거… ”

“일단은 형네 집에 신세 좀 지자. 어차피 자주 가잖아. 잠깐 거기서 살다가, 더 벌어서 나가야지.”


벌레처럼 들쥐처럼… 집나온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사는 집이었다. 매번 들어오고 나가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주인 오빠들은 허허실실 소주 몇병이면 공짜로 재워주었다. 무슨 일거리가 그리 많은지 배달 오토바이는 하루 24시간 바빴고, 라면이 박스채 넘쳐났다. 어쩌다 한번씩은 돈 들어왔다며 짜장면도 시켜준다. 언제든 집 나오면 같이 살자고, 청소하고 빨래만 할 줄 알면 된다고 했다.


돈을 나누어 여기저기 숨겨놓고, 당장 쓸 돈 삼십만원을 챙겨들고 오빠들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며칠만에 돌변한 오빠들이 두갑이를 방에 가두고 때리기 시작했다. 방값, 물값, 라면값을 내라는 거였다. 주머니에 넣어 둔 돈은 이미 다 빼앗겼다. 아마 어디서 돈이 좀 들어온 것 같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너네가 먹은 라면만 얼마인데? 들어오는 건 공짜여도 나가는 건 돈을 내고 나가야지. 30선불 냈으니까 270더 내면 보내줄께. 딱 삼백에서 합의보자.”


다행히 두갑이는 숨겨 놓은 돈이 더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실컷 때린 후 물 한컵 갖다주라고 해서 방으로 들어가보니, 피 흘리며 쓰져있는 얼굴이 처참했다. 그래도 여기서 나가면 방 얻어야한다고, 돈 있는 건 절대 비밀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다 갚을께 같이 나가자.”


내가 나서서 오빠들과 합의했다. 두갑이가 고객을 찾고 내가 일을 하기로 했다. 가스값 내라고 할까봐, 라면값을 더 덮어쓸까봐,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손님은 쉽게 구해졌고, 바쁘게 몇 탕을 뛰었다. 그래도 270까지는 아직 멀었다… 세숫물값, 화장실값… 며칠간의 생활비 조로 십만원이 올랐다. 나쁜 새끼들… 더 오르기 전에 빨리빨리 벌어야한다. 운이 좋으면 모텔 방 하나에서 연달아 두건 세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방을 먼저 잡아두었다고 하고, 대실료를 화대에 얹어 받는다.


200, 150, 100… 거의다 갚고, 이제 겨우 몇십만원 남았다. 아직도 방에 갇혀 꼼짝 못하는 두갑이에게 모텔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를 갖다 주었다.

“이번 달이면 다 갚을거야. 삼백 딱 채우면, 바로 나가자.”

여기저기 멍자국이 가시지 않은채로, 자리에 누운 두갑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엄지야. 우리 꼭 행복해지자.”


...


30분짜리 손님... 간단히 한건을 끝냈다. 방값까지 칠만원을 지갑에 넣어놓고 샤워를 한다. 아무일도 없었던 척, 커텐도 없는 작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다음 손님이 오려면 아직 20분쯤 남았다. 재개발 플랭카드만 펄럭이는, 인적없는 뒷골목을 내려다 본다. 저 아래에서 일 끝나기를 기다리며 쭈그리고 앉은 오빠는 전화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게임하나 보다. 창문을 닫으려는 찰라에 다가오는 오토바이 하나… 집 앞에 세워져 있던건데, 수리 맡겼다더니 고장은 아니었나보다. 몸체에는 전에 없던 야광을 입히고, 경찰차에나 있을 것 같은 번쩍거리는 라이트를 앞뒤로 달았다. 신상인것 같다.


남자가 헬멧을 벗으며 오빠에게 손을 흔든다. 뒷자리에 탔던 여자애가 스타벅스 커피를 건넨다. 아는 얼굴이다... 오빠들 집에서 몇번 봤다. 셋은 각자 커다란 커피를 하나씩 홀짝거리며 담배를 피운다. 손님 하나 받으면 저거 열잔... 웃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린다. 3층이라 소근거리는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짓이나, 손짓… 웃는 얼굴은 똑똑히 보였다. 오빠는 그들과 아주 친하게, 장난을 치며 헤드락을 건다… 오빠와, 오빠 집에 있던 여자애, 그리고 그 방에 갇혀 두드려 맞던 두갑이가... 저 아래에서 활짝 웃고 있다…!


비웃었을까… 나 하나 속이는 건 껌이라고… 잘 속였다고 기뻐했을까…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정말 같이 살려고도 했었다. 갈곳도 없고, 비슷한 처지에 도와준다고 생각했었다. 어릴적부터 항상 내 옆에 있었으니까,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나를 항상 보호 해 주었으니까… 두갑이는 내 편인 줄 알았다…


두갑이와 여자애가 다시 오토바이에 오른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서두르는 걸까? 둘이 사귀나? 아니면 저 여자애도 나처럼 돈을 벌러 가나… 조금 억울하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밥 한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잠깐 머리를 굴려본다. 다음 손님이 올때까지 아직 15분... 아까 번 돈 7만원.. 그리고 두갑이가 여기저기 숨겨놓은 그 돈을 찾는다면.. 몸을 숨기고 살짝 창밖을 본다. 오빠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다음 손님인것 같다. 목을 쭉 빼고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다 발걸음을 옮긴다. 길을 못찾아 마중 가나보다.. 기회일까…


망설인다. 1분1초를 다투는 이 순간에도 결정내리지 못한다. 힘들때마다 옆에 있던 두갑이, 눈비는 피하게 해주던 오빠들, 한번 수고비로 며칠 밥값은 되는 손님들… 내가 손해인 건 알지만, 이렇게 의리없이 다 배신하고 도망가도 되는 건가.. 어디서든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텐데, 어차피 고생할 거, 여기 있는게 나은 건 아닌지..

골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오빠가 다음 손님을 데려온 모양이다. 곧 올라오겠지… 선뜻 창문을 닫지 못한다. 빈 하늘을 본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나비든 제비든… 누구라도 나타나 날 꺼내주지 않는다면, 나의 동화는 오늘도 해피 앤딩이 되지 못한다. 어차피 왕자님을 만나야 행복해진다하니, 조금 판이 컸을 뿐, 공주나 나나… 인생의 목표는 같다. 방법은 서로에게 맞는 걸 고른다. 나는 그냥, 툭툭 털어 침대를 정리한다.


혼자 생존할 수 없는 나는, 여기저기 휩쓸리고 휘둘리며, 여전히 치열한 전투를 치룬다. 다시는 두갑이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뛰쳐나가는 게 맞다해도, 언제 올지 모르는 왕자님을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라 해도.. 손가락만한 계집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숨이나 끊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남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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