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괜찮아?

by 신소운

퇴근 후 간단히 끼니를 때울 겸 우동집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연세를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활기차신 사장님이 반겨주신다.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방금 닦아낸 행주 자국에 축축하다. 주문한 우동이 나올때까지, 오늘만큼은 인터넷 대신 책 한권을 꺼내고, 새로 시작한 저녁 수업까지 남은 한시간 반... 공부를 하자.... 라고 마음 굳게 먹음도 잠시.. 에이, 우동 하나 나오는데 고작 몇분 걸릴걸 무슨... 결국은 핸드폰을 집어든다.


하루 중 유일하게, 편안하고 조용히 뉴스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이때 뿐이라는 걸 알아도, 사실 나는 뉴스가 싫다. 왠만한 강심장으로는 견디기 힘든, 이 세상 나쁜 일을 강제로 듣고, 보고, 읽어야 한다. 그냥 뉴스라는 자체가 참 사람 괴롭게 만든다. 가뜩이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 천지이니, 쉴새없이 쏟아지는 막장 뉴스 때문에 없던 병이 더해질것 같다.


그래서였나.. 언제부터인가 제목만 읽고 지나는 일이 많아졌다. 깊히 알기는 싫고, 모르고 지나서는 안될것 같은 책임감? 약간의 자존심... 하. 부끄럽지만, 선진 국민으로 마땅히 내어야 할 목소리는 남아있다. 지킬건 지키고, 못 지키는 놈은 따끔히 야단칠 줄 아는... 나 스스로가 감투 씌운 자격조건이다. 나는 지식인이다... 휙, 휙, 휘리릭 휙휙... 눈으로 훑고 손으로 넘긴다...


"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발성이 됬다. 입이 벌어지고 목구멍이 넓어지면서, 평소에는 존재의 흔적도 없던 목젖이 울려 소리라는 걸 낸다. 감탄사라기 보다는, 충격에 의한 짧은 비명..? 그와 거의 동시네 이루어지는 엄청 빠른 반사신경.. 눈꺼풀이 날아오르며 동공이 전진한다. 이미 두 손가락으로 이만하게 확대한 사진 속 얼굴... 모자를 눌러썼지만 숨기기 힘든 눈, 귓볼, 목젖까지 밀려들어간 무 턱, 반 곱슬 머리, 짧은 목, 불편하게 굽어간 두툼한 상체.. , 이 자식...

"왜? 왜? 뭔데?"

마침 우동을 가지고 다가오시던 사장님이 물으신다.

"아, 아니요.. 아는 사람인줄 알고.."

재빨리 전화기를 엎어놓았다. 어묵 한꼬치를 얹은, 김이 펄펄 오르는 우동 한그릇으로 눈을 돌린다.

"에이그, 뭔일 난 줄 알았지. 나는 뭐, 김정은이나 죽었다면 모를까, 놀랄것도 없어."


너털 웃으시며 돌아서는 뒷모습에 슬그머니 다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옆사람이 볼까 바짝 당겨들고 다시 화면을 켰다. 분명 그 얼굴이다... 양ㅈㅎ... 한번만 봐도, 딱 5초만 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 정말 보기드문 골격에 부조화스런 눈코입이 한 몫하는... 게다가 늘 짜증이 가득했기에 더더욱 비호감이었던 2학년 담임. 기사를 읽는다. 오래전에 그가 일했었다는 강북구 Y 여자 고등학교... 맞다.. 양ㅈㅎ이다...!


선생님이라는 세글자가 거북하도록 손버릇, 입버릇, 눈버릇이 모두 불량하던, 절대 기억하고 싶지않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지워져 주지도 않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유일한 구토유발. 그닥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고뭉치도 아니게 어중간하고 평범하던 내게, 아니, 그런 나.마.저.. 십오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단번에 소름끼쳐 하는 딱 한 사람.


*****


그가 우리 반에 온건, 담임 선생님의 출산 휴가 때문이었다. 반 배정 당시에는 임신 사실은 몰랐다며 변명아닌 변명을 하셨지만, 학부형들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진심어린 축하는 받지 못했을거다. 하필 2학기 중간에, 그것도 고 2 반을... 죄 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그리고 황급히 떠나신 뒤로 우리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마구 괴롭혀서 힘든 그런 악몽이 아니라, 참 불편하고 찝찝한, 불쾌하고 끈적거려 비명도 나오다 들어갈것 같은 더러움이었다.


실제 겪은 사람이 있을까. 한여름 뉴스에 나오던 구역질나는 하수도를 걷는 느낌이다. 장마비에 배수로가 막혀 온종일 역류하는 똥물에 둥둥 떠다니는 각종 쓰레기.. 바지를 있는대로 걷어올리고 철퍽철퍽 걸어가야는 지하도에서, 모래같기도 하고 이끼같기도 한 그 구질구질한 존재들.. 어김없이 무릎 훨씬 위를 스르륵 건들고 지나는 담배꽁초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누군가의 휴지 조각.. 벌겋기도하고 거뭇거뭇하기도 한, 평생 처음 맡아보는 둔한 악취를 품은 고인 물.


"너네 선생님 출산 휴가 갔다며? 애는 몇번쯤 해서 생겼대? 나는 1년 반을 맨날 세번씩 해도 안생기던데."

그의 첫 인사였다. 그가 온 첫날, 첫 아침, 첫 조회시간이었다.

"임신하면 당연히 출산 휴가를 가야지. 너네는 옆에서 봤으니까 다 알겠네. 젖 엄청 커졌겠다. 맞는 브라가 없어. 내가 잘 알지, 우리 마누라가 바스트가 38이야. 양심이 있으면, 그런 여자들은 집에서 노브라로 누워서 쉬어도 돼.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냐, 남자들 정신 못차리게."


누구는 그가, 학교는 다녔지만 임용에는 떨어진 백수라고 했다. 그리고 누구는, 재단 윗사람의 조카라고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에 있던 학교에서 짤리고 우리 학교에 '억'을 주고 들어온, 길건너 건물주의 아들이라고도 했다.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그는 분명, 없는 실력에 음담패설을 일삼다 짤려 백수가 된, 어느 빽있는 졸부의 자식이었을 거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차라리 수월하게, 가볍사리 무시할 수 있었다.


"너네도 나한테 관심없잖아. 나도 아무 관심없어. 암컷들이 우르르 모여있니까 본능 상 한번씩 쳐다봐주는 거지, 누가 공부를 하든, 잠을 퍼자든, 내 인생에는 아무 상관없단 말야. 그러니 각자 살자고. 대신, 엎어져 잘때 옆구리살 안보이게 가리고 자라. 가뜩이나 교복이 터질려 그러는데 팔까지 쩍 올려서 베고 자면, 앞에서 수업하는 남자들은 못참아요."


"야아, 이 반은 반장을 홀딱 벗겨놓고 뽑았나? 키가 몇이야, 한 170되겠는데? 니들이 보기에도 얘가 제일 섹시하지? 크고 작고, 배치가 좋아. 봐라, 이제? 얘 대학가서 옆구리 살 쫙 빼고, 화장하고, 짧은 거 한번 탁 입어주면, 교수고 학생이고 다 코피 터져 죽는거야."


성희롱이라는 말이 있기나 했던가. 기억이 없다. 그나마 쉬쉬하더라도 조금씩 새어 나오던 성폭행이라는 단어.. 아마 성폭력이라는 표현조차도 없었던것 같다. 바바리맨, 성도착증, 변태, 저질... 그런 말들이 심심찮게 쓰이긴 했어도, 학교 안에서 행해지는 성인 남자 교사의 비정상적 언행에 대해서는 어쩔 방법을 몰랐다. 기껏해야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 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남자 선생님들에게는 말을 꺼내기도 불편했고, 여자 선생님들은 우리보다도 먼저 그를 피하는 눈치였다. 서로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그렇게 지냈다.


"여자는 원래 강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있어. 나도 우리 마누라 강간해서 결혼한거야. 학생 때 앰티가서 술먹고 뻗었는데, 너무 예뻐서 바로 옆방 데려가서 잤어. 아침에 일어나서 며칠 울고불고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뭐, 자발적으로 지가 먼저 꼬시지. 자꾸 결혼하자, 결혼하자, 난리를 쳐서 하긴 했는데, 사실 난 걔랑 속궁합이 잘 안 맞아. 다들 잘 들어둬. 남자는, 여자가 너무 주면 그때부터는 재미없어."


소지품 검사를 이유로 여성용품을 뜯어 만지작거리고, 안나가고 숨는 사람이 있다며 체육복 갈아입는 교실의 창문으로 빼꼼히 지켜보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부인 시리즈 애로 영화를 보고 왔다며, 역시나 상상을 초월하는 디테일을 곁들여 주절주절... 그렇게 수업시간을 때웠다. 복도에서 교감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퀴즈를 내는 척, 미리 준비한 문제지를 나눠주었다. 한번, 두번, 세번... 모든 퀴즈의 문제지는 하나였다. 똑같은 문제지 한장으로, 남은 학기를 마쳤다.


두달간의 고문이 끝나고, 3학년이 되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는 비담임 과학 선생으로 학교에 남았고, 우리는 복도에서 그를 마주쳐야했다. 멀리에서라도 그가 보이면, 재빨리 뒤돌아 반대편 계단을 이용해 위로 혹은 아래로, 빙빙 돌아 도망다녔다. 문제는 등교 시간이었다. 그는 정문에 서서 복장과 지각을 단속했고, 우리는 매일 아침, 위아래로 흐르는 그의 시선을 허락해야헸다.


"누굴 꼬실려고 립스틱이냐? 남자들은 진한거 싫어해. 맛도 없고, 이게 구석구석 몸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아, 네가 다 씻겨줘야지."

"이게 누구야? 몰라보겠다. 너 어제 키스했지? 밤 샜냐? 너같은 애는 여성 호르몬이 많아서, 이거봐, 어제랑 입술 모양이 다르잖아. 그정도로 뒤집어 까질려면, 한 세시간은 했다는 건데, 어디서 했냐? 좋았냐?"


*****


전화가 온다. 같은 반이던 세린이다. 침묵하고 무시하려던 나와는 달리,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대들던 소수의 무리 중 하나였다.

"너도 봤구나? 그 인간 맞지?"

"기사 하나도 안 읽었는데, 옆모습 딱 보고 알겠더라. 미친놈. 결국은 뉴스로 보는구나."

"그러게. 그렇게 짤리고도 정신 못 차린거야."


"내가 옛날에, 종로에서 봤다 그랬잖아, 영어 학원 앞에서 악세사리 판다고... 그래도 그거해서 돈 좀 벌었나봐, 학원도 차리고."

"맞어, 그때 니 전화받고나서, 애들이랑 일부러 그 앞으로 지나다녔잖아. 일부러 눈 마주치고 째려보고.."

"크흐흐흐..."


양ㅈㅎ는 우리가 졸업하기도 전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혹은 '잘렸다'. 어떤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가 잘렸다고 믿었다. 댕강... 학교가 시끄러울만큼 특별한 사건 같은 건 없었지만 - 적어도 우리가 아는 건 없었지만, ... 카더라 하는, 늘 있던 루머만 몇개 더 추가하고, 생각보다 조용히 사라졌다. 안그래도 바쁜 고3에, 재수없는 '전직' 담임까지 기억할 여유는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졸업, 취직 때문에 토익학원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를 보게 된거다.


물론 나는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멀리서 본 것 만으로도 옛 기억이 떠올랐고, 징그러웠고, 고소했다. 넉살 좋은 친구들이 악세사리를 고르는 척 코앞에까지 다가가도, 모른척 하는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그 역시 일절,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졸업생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하나 둘, 확인차 그 학원 앞에 가봤다는 숫자가 늘었다.


"양ㅈㅎ 씨, 학교 짤리고 이거 해? 얼굴 보니 먹고 살만 한가봐? 미친 거 알면 손님 하나도 없을텐데. 난 이것도 불쾌해. 넌 완전 폭삭 망해야지. 잘 먹고 잘 살면 절대 안돼."

그의 노점이 사라졌을 무렵, 세린이와 몇몇 친구들이 그를 찾아가 욕을 퍼부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냥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꼼꼼히 기사를 읽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미성년 학생들을 성폭행해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도 빈번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추궁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그가 전직 교사 출신이며, 이미 두번의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때마다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했다. 참.. 많이도 저질렀구나..


어떤 감정인지 헷갈린다. 쌤통이다 좋아해야하는지, 그래도 우리때는 저정도는 아니었다 안도해야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현재의 어린 피해자들에게 그때 막지못했음을 죄스러워해야하는지.. 이제라도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기는 한건지. ## 일보, 김** 기자, 이매일 아이디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제보자를 기다릴까? 제보 할 게 더 있나.


아닌척 덮어왔던 15년 전 우리 일도 범죄였을까. 그가 저지른, 우리가 모두 하고만 있던... 뭔가 억울하고 힘들었어도, 확실치 않아 아닌 척 했었던것 같다. 그때는 그때라서 어리버리 했겠지, 어렸으니까, 학생이었으까.. 어쩌다 재수없게 또라이 선생을 만난거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피해자였는데,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그정도 쯤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얼굴 안 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 식은 어묵 꼬치를 집어든다. 번거롭게 후후 불지않아도 좋다. 이제, 딱 먹기 좋다. 한 입, 두 입, 세 입... 순식간에 후루룩 입안에 가득 찼다. 아직 탱탱한 우동 면발도 집어든다. 꼭꼭.. 씹어삼켰다. 그 자식, 감방에서 죽을때까지, 영영 썩어버렸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