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27
D 원주. 창률 혼자 방 안에서 작업 중, 이리저리 재어보고, 벽에 드릴로 구멍을 내어 나무문을 걸면, 먼지, 땀방울, 공구통과 지저분한 방바닥 정리하는데 전화
창률 (장갑 벗으며) 예, 접니다.. 결과 나왔어요?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할께요. 얼른 씻고 가면 한 3-40분 쯤 걸릴거에요... 감사합니다. 좀 있다 뵙겠습니다..
CUT TO 공구함 들고 일어서고, 무심히 책상에 툭 올려놓고 나가는데, 카메라 돌면 햇살 잘 드는 작은 방 – 20년전에 죽은 남동생 시율의 방 모습 그대로. 조그만 책상, 야구 포스터, 1인용 침대, 태권도복과 검은 띠.
CUT TO 문 콩 닫히는 소리, 샤워 물 트는 소리 밖에서 들리고, 카메라 줌 들어가면 반대쪽 벽에 방금 못 박은 작은 나무 문 – 어린 지율이 숨어있던 다락방과 같은 모습
카메라 어두운 문틈으로 빨려들어가고 화면 깜깜해지고
씬 27 D 가평 (차체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 쿵쿵!
차 안에서 사진에 집중하던 시환과 지율, 깜짝 놀라고
시환 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 (문 열고 내리며) 오셨어요? 가까운데 계셨나봐요?
오경사 예, (턱으로 뒤쪽 휙 가르키며) 저기 잠깐 들렀다가.. 뭐 궁금하신게 있으시다고요
시환 이 교통사고, 기록 좀 볼 수 있을까요? 경사님이 직접 출동 하신 건 아닌 것 같고,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오경사 기록은 보여드릴 수 있는데,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시환 교통사고 사망자가 신원 미상일수록, 더 빨리 보고 되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서울도 아니고 이런 동네에서, 며칠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시신을 찾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경사 아, 그게 아마.. 저희 파출소 막내가 왔었습니다. 사건 일지도 직접 작성해서 올렸구요. 아무래도 늦은 밤이었고, 경험이 좀 없다보니까, 보고서만 쓰고 전산망에는 제때 올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환 사수는 뭐하구요? 신입이 그런 실수를 하는데, 관리 안합니까?
오경사 다음날이나 되어서 아마.. 시정했을겁니다.. 저도 정확한거는 잘.. 죄송합니다.
지율 관할도 아닌데, 왜 그쪽에서 처리했죠? 여기가.. 어디 관할이에요? 거기서도 사고에 대해 알고는 있죠?
오경사 (바로) 그럼요, 진작에 다.. (아차) 아시죠... 아, 그.. 그 친구가 밤에 놀다가, 마침 이 길로 지나가는데 사고가 났더랍니다. 그래서 일단 내려서 급한 거 처리하고, 관할 경찰서에서 바로 도착하시고.. 그런데 이 친구가 알아서 다 한거 보시고.. (눈치, 자신없음) 보고서도 아마 대충 알아서.. 저희 막내한테 올리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지율..??)
시환 사망 사고를 대충 알아서 쓰라구요? 그것도 비번인 막내한테?
오경사 어차피 아침에 (작은 소리) 몇시간 있으면 출근할 거..였으니까.. (지율 시환 뭔가 의심)
시환 보고서 바로 주실 수 있죠?
오경사 (긴장) 예에, 제가 지금 들어가서 바로.. 근데 뭐, 별 다른 문제는 없는거죠? 저희 막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시환 그건 나중에 판단하구요, 지금 복귀하시면, 한 20분? 30분 내로 보내주세요.
오경사 같이 안 가십니까?
시환 영안실 먼저 들리려구요. 오경사님이 확인하셨지만, 그래도 저희도 직접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오경사 당황) 왜요? 저희가 가면 안되는 이유라도..?
오경사 아닙니다.. 그냥.. 점심 시간..이라서.. 뭐 간단히 식사라도 하시고.. 요 근처에..
지율 불편하신가봐요. 저희가 내려온 게..
오경사 (어색 웃음) 그, 그럴리가요.. 그냥, 거기 영안실이, 작은 병원이라 담당하시는 분이 한명이에요. 그 분이 식사라도 가셨으면 괜히 오래 기다리실까봐.. (시환지율 ??) 그럼, 다녀오십시오, 저는 먼저 가서.. (돌아서서 자기 차로)
시환 (지율에게) 뭔가 이상하죠?
지율 많이요. 그것도 아주 많이..
/INS/ D 가평 (차체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 쿵쿵!
차 안에서 사진에 집중하던 시환과 지율, 깜짝 놀라고
시환 아휴, 깜짝이야... (문 열고 내리며) 오셨어요? 근처에 계셨나봐요?
오경사 예, (턱으로 뒤쪽 휙 가르키며) 저기 잠깐 들렀다가.. 뭐 궁금하신게 있으시다고요
지율, 오경사가 턱으로 가르켰던 방향 돌아보면, 국도, 병원, 영안실, 미키의 하얀 천... 머릿속 지도 그려지고, 빠른 걸음으로 막 출발하려는 오경사의 차로 뛰다시피, 시환 아, 뛰지 말라니까.. 같이 뛰고)
지율 (오경사의 차 두드리고) 스탑, 스탑! 잠깐만요! (오경사 창문 열면) 조금전에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었습니까?
오경사 .. 그게, 저쪽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지율 볼 일이 아니라.. 볼 사람이겠죠? 영안실에 미키씨?
오경사 !!.. (체념. 작은 소리) .. 죄송합니다..
디졸브 / 영안실
안절부절 못하는 오경사. 시환, 의사 검안서 사진 찍고, 시신과 대조 갸우뚱, 사진 찍으며 꾹꾹 참고. 꼼꼼히 미키 시신 살피는 지율. 흰 천 다시 덮으며 오경사 노려보면, 오경사 눈 피하고
씬 28 영안실 밖 복도, 시환 탐문
직원 이미 사망한 상태라 저희가 절대 안 받겠다 그랬거든요. 보시다시피 저희는 이거 딱 두칸 밖에 없어요. 신분증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무연고자 시신은 언제 찾아갈지도 몰라서, 거기다가 요즘은 마음대로 기증도 안되고, 우리만 곤란해요. 그런데 같이 오신 경찰분이 자꾸 맡으라고, 금방 찾아간다고 그러셔서..
시환 조금전에 저희랑 같이 왔던 오 경사님은 아니었구요?
직원 아니요, 그 분은 오늘 처음 봤어요, 조금 더 젊은 사람이었어요.
시환 얼굴 생각나세요?
직원 모르겠는데, 그냥 되게 젊고.. 눈썹 진하고, 쌍꺼풀 크고.. 눈만 기억나네.. 그때가 너무 새벽이라 잠이 덜 깨서..
시환 나중에 사진 몇장 보내드릴께요, 혹시 그 중에 그 사람이 있는지 한번 봐주세요.
직원 예, 그럼요. 알겠습니다.
지율 그때요, 사고 피해자만 여기로 오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구요?
직원 저희는 응급실이 없어요. 보통 교통사고면, 양쪽이 다 다치잖아요, 보험처리 할라고 다친 척 하던지.. (눈치).. 그럴려면 보통 응급실 통해서 입원해야죠. 어쨌든, 원무과 가셔서 그날 입원 기록 보여달라고 하세요. 저희는 그 시간에 진짜 환자 안 받아요.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딱 아침 9시에 열어요. 에이, 저 여자분 시신도 진짜 안 받았어야 했는데. 그 야밤에 경찰이라고 막 전화해가지고 깨워서.. 솔직히, 여기는 이름만 병원이에요. 동네 어르신들 노환으로 가실 때, 마지막으로 입원실, 영안실, 장례식 패키지로 제공하는 그런 장사꾼이지, 진짜 치료를 하는 그런 의료기관이 아니라니까요.
지율 그럼 환자분들은 대부분..
직원 환자라고 하기에도.. 거의 다 그냥 동네분들이세요. 낼모레 가실라고 줄서신 분들.
씬 29 강력팀 사무실
조 그래서 지금 날, 여기 붙잡아 앉혀놓겠다고? 야, 나 힘들어. 병실로 돌아가야돼.
진우 면회시간 끝났어요, 못 들어가세요.
조 내가 문병가냐?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거지.
진우 그러니까 이거 끝나고 가세요. 모셔다 드릴께요 (젤리 몇개 꺼내주고)
조 아, 자식들 정말.. (하나 까먹고) 그까짓 개발바닥이 뭐라고 나까지 불러? 너 진짜 중요한 거 아니면 각오해.
CUT TO 민규 서류 출력 기다리며 종종
진우 중요해요, 아니 중요 하대요. 저쪽에서 시간 약속 딱 잡아서, 제대로 통화하재요. 뭔가 있는거에요.
민규 (뛰어와 진우에 토스) 도착했습니다.
진우 (전화 연결, 스피커폰) 예, 박사님, 지금 받았습니다 (조팀장에 붙어 앉아 함께 보면)
창률 (전화) 먼저, 놀이방에서 가져오셨다는 첫 번째 샘플이요, 여자아이이고, 가족력이 있습니다. 반성 유전이라고, 어느 한쪽 성별만 타고 유전이 되는데, 여성 염색체 X를 통해서 전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이지만, 보인자, 혹은 잠재적 색맹이라고 하구요, 아마 아이의 부모 중에 한 쪽, 혹은 두 사람 다 색맹이라는 가정이 나옵니다 (진우 민규 메모 바쁘고).
두 번째 샘플이요, 강아지 털에서 나온 혈흔은, 첫 번째 샘플과 친족 관계는 성립합니다 (진우민규 오케이!! 조팀장 흥미 생기고) 그런데 색맹 유전자가 없는 걸로 봐서, 아마 아버지가 다른, 자매일 확률이 높습니다.
진우 (모두 놀람) 예? 아버지가 다르다구요?
창률 예. 첫 번째 샘플 아이의 아버지는 색맹이구요, 두 번째 샘플 아이의 아버지는 색맹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는, DNA를 체취해서 다시 돌려봐야 더 확실하겠지만, 일단 두 샘플만 비교해 봤을때, 한 어머니가 낳은 아이들 맞습니다. 이 어머니는 색맹 유전자가 없구요, 그래서 첫번째 아이 아버지의 모친이 색맹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두번째 아이의 아버지는 양친 모두 정상이구요.
진우 두 번째 아이요, 특정할 만한 다른 병력은 전혀 없나요? 혹시라도 아버지를 찾을 단서가 될만한..
창률 두 아이가 친족이라고 말씀드렸죠? 그게, 자매 이상으로 아마.. (망설) 아이들의 부계 유전자가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다시 말하면, 첫번째 아이의 아버지 쪽으로, 그러니까, 부계 쪽으로 아주 가까운 남자가, 두 번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색맹이 아니고, 보인자도 아닌, 첫 번째 아이의 아버지와 아주 가까운 친족관계의 남자요.
진우 그럼 그 할애비 새끼..??!!
조 잠깐 (제지) 만요, 박사님, 저 조상현 팀장입니다. 그러면, 이게 가정이 아니라, 확실하게 증명을 하려면, 지금 아이 어머니하고, 그 친족되는 남자의 DNA가 필요한거죠? 증명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창률 대조 샘플은 이미 확보했으니까요, 그것만 보내주시면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진우 제가! 최대한 빨리,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두 번째 아이의 사체를 찾으면, 아주 애기일 건데, 사망원인도 알 수 있을까요?
창률 글쎄요, 개월수에 따라 다른데, 만약에 뱃속에서 죽은거면, 밖으로 나왔을 때 부패 속도가 빨라요. 태어난 다음에 죽었더라도, 워낙 체구가 작은데다가, 지금 사실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라, 아마도 크게 기대하기는 힘들겁니다 (일동 한숨).
진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나중에 저녁 한번, 사겠습니다.
창률 아닙니다. 이게 일인데요. 그럼, 수고하세요.
CUT TO 전화 끊고, 모두 넋 나감
조 야, 이게.. 애기 없어져서 그거 찾으려다가.. 너네도 이건 몰랐지?
민규 몰랐죠. 저희는 그냥, 그 피가 그 집 애기 껀지, 그거 확인하려고 맡긴건데.
진우 이거, 만약에요.. 가정폭력에 성폭행, 영아 살해, 사체유기.. 이게 다 한 사람이면.. 아, 그리고 감금, 협박도요, 그럴 가능성이 크니까...
민규 잠깐 선배님, 근데.. 그 사람.. 아들 죽은 게 몇 달 안되었는데..
조 (버럭) 미친 놈..? 그럼 지 아들이 오늘내일 하는데, 그 옆에서..
진우 아, 팀장님, 이거, 완전 개또라이에요. 지금가서 긴급체포 때리고..
조 잠깐, 잠깐... 후우.. 침착해. 우리가 아직, 확증이 없어. 다른 가족일수도 있잖아.
진우 뭐가 있어요! 이 놈이에요! 두드려 팬다니까? 위험해요, 당장 분리 시켜야지.
조 강진우, 기다려봐라! 아직 시간있어. 너, 거기서 며칠 밤 샐 동안 잠잠했다며? 지금 우리가 이거 들쑤시고 있는것도 저쪽은 모르잖아. 오민규, 너 놀이방에서 애기 샘플 가져온 거, 거기 선생들이 알아?
진우 아니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면담하고 나오면서, 복도에 유치원 가방 걸려있길래, 거기에서 꺼내온겁니다.
조 잘 들어. 그러면 이제, 애기 엄마랑 할아버지 DNA 샘플을 가져와야 하는데, 그런데, 이거는! 제대로 하자고, 몰래 그러지 말고, 응? 본인 동의 얻어서, 합법적으로 해야지, 더 이상은 불법 체취 안돼.
진우 아우우... 그런데 확실한 건, 그 놈이랑 떨어져 있어야, 애기엄마가 협조를 할 겁니다.
민규 그러면 아침에, 용의자가 출근 한 다음에..
진우 절대 안 열어. 대답도 안하고... 없는 척 해.
민규 경찰이라 그래도 안 될까요?
조 그러면, 그 자식을 먼저 데려가고, 당신 시아버지는 연행했다, 안심해라.. 유전자 채취하게 협조를 해 달라, 그래볼까?
진우 한국말을 얼마만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잘 한다 그러고, 누구는 말하는 거 못 들었다 그러고.. 차라리, 애 엄마 보는 앞에서, 놈을 경찰차에 태워야 안심하지 않을까요?
조 그래, 그게 낫겠다. 그러면, 아직은 우리도 두 사람 DNA가 확보 안 된 상태고, 사실은 진우야. 이성을 좀 챙겨보면.. 여자를 폭행한다는 것도, 소리를 들었다는 간접적인 증언만 있지, 직접 봤거나, 몸에 자국이 있거나, 증명할 수 있는 절대적이 증거가 없지? 아직은, 아무것도 단정짓지 말고, 정말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 놈이 애기 아빠가 아닐 가능성도 있는 거니까, 응? 폭행, 성폭행, 영아 살인, 이런 이야기는 지금은 다 빼고, 신생아..! 거기에만 집중해. 뱃속에 있던 애기 어디 갔습니까? 영유아 실종이 의심된다는 제보가 들어왔으니, 일단 임의 동행해서 협조 좀 해 주십시오, 경찰서로 데려오고, 그 사이에 정아랑 들어가서 애엄마랑 아이를 보호 시설로 옮겨.
진우 지금 갈까요?
조 지금은.. (시간 확인) 좀 늦기도 했고.. 임의 동행해도 시간 안에 DNA 결과 안 나와. 서둘지 말고, 내일 아침에, 일찍 가자. 너 어차피 이정아, 내일 아침에 보기로 했다며.
민규 그러네요. 그러면 내일, 그 사람 출근 전에 바로 가는 걸로..
진우 (찝찝하지만 어쩔수 없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 그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조 아니, 아니야. 오늘은 너 가는 거기, 단골 찜질방. 거기 다시 가서, 동네 아주머니 하나라도 더 만나. 그 집에 대해서 아는 거 아무거나, 누구 왕래하는 남자 친척이 있었는지, 대충이라도 임신 몇 개월이었는지.. 병원 간 적이 없으니까, 덕분에 우리도 아무것도 없잖아. 발 뻗고 누워서, 차분하게 충전도 하고.
진우 (갑자기 생각) 아, 병원.. 팀장님 먼저 모셔다 드릴께요
조 됐다. 너나 먼저 가서 위아래 싹 씻고, 머리 식혀. 나는 내 발로 간다.
민규 제가 가는 길에 내려드리면..
조 어, 그래. 민규 차 타자. 가정있는 놈은 가끔이라도 집에 들려야지.
진우 (피식) 집을, 가끔 들립니까?
조 야, 우리때는 마누라가 애를 낳아도 못 들어갔다니까? 세상 좋아진 줄 알어.
진우 (일어나 가방 메고) 아우, 언제적 얘기야?
조 너 대가리에 피도 안 말랐을 적 얘기다! 왜? 기억 안나?
진우 안나요! 하나도 안 나! 대가리에서 피 나는데 어떻게 기억해? (나감)
조 저 자슥을! (문 닫히고 껄껄) 참, 많이 컸다, 강진우.. 교복 입고 쭐래쭐래... 허구헛날 경찰서 들락거리던 놈이 (민규 옆에서 푸흡) 아, 쟤..? 아니, 사고쳐서 들락거린게 아니고, 지 아버지 일 하는 데라..
민규 아, 그럼요, 알죠... 아는데 어감이 웃겨서.. (두 사람 같이 웃고)
씬30 다시 가평, 파출소 회의 책상에 즐비한 사진, 서류, 불안해 보이는 오경사, 분위기 좋지않고, 지율 약 꿀꺽 삼키면
시환 (지율 걱정 눈빛, 오경사 향해 바뀌고) 그러니까 지금, 이거 달랑 몇줄이 사건 보고서라구요? 사망 사건인데?
오경사 지금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좀 있다 황순경 들어 오면..
시환 오 경사님. 이거 보고서, 다음 날 오 경사님이 확인했네요. 여기 싸인 하셨잖아요. 그러고도 피해자 확인이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우리가 그날 여기까지 내려와서 직접 부탁 드린건데, 신원미상, 30대 일본 여성... 이 사람일수도 있겠다, 그 쉬운 걸... 그 생각이 전혀, 진짜 전혀 안들었어요?
오경사 죄송합니다, 그날 제가 좀 바빠서..
시환 뭐가 바빠요? (사건 일지 들고) 직접 보세요! 그 날 밤부터 다음날까지, 이거 말고는 사건이 하나도 없어요.
오경사 큰 사건은 없었는데, 자잘하게 술 드시고 위험한 일이 많아서..
지율 보고서 자체도, 현장하고 맞는게 하나도 없어요. 혼자 밤늦게 운전하다가, 차도 옆으로 걸어가는 여자를 치었는데 즉사했다.. 그런데 현장은, 다른 말을 하잖아요. 가해 차량이 갓길 너머까지 굴러들어갔고, 화재가 나서 불을 끈 흔적도 있고, 상당량의 소화기 분말이 뿜어졌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전혀 한마디도 언급이 없어요 (오경사 침묵, 미키 사진 내밀고) 시신 상태도 마찬가지에요. 걸어가는 사람을 뒤에서 치었다면, 범퍼 높이 기준, 무릎에서 위아래 10센치, 먼저 부딪히고 튕겨나갔을거고, 무릎 접히고 밀리면서 찰과상 생겼을건데, 미키씨 몸에는 필요 이상의 상처가 너무 많아요. 그것도 교통사고와는 아무 연관성 없이, 정말 아무데나 막... (의사 소견서 들고) 갈비뼈 골절에 의한 폐 손상, 출혈,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그리고, 한번 들이받아서 즉사했다고 하기에는 도로에 혈흔도 거의 없고, 제일 흔하게 나타나는 후두부 상흔이나 출혈도 없고. (시신 사진 벽에 탕! 붙이고) 보고서 내용하고, 시신 상태하고.. 전혀 앞뒤가 안 맞아요. 본인도 아시죠? (오경사 한숨, 지율 차분) 그거, 알고.. 그거 다 알아서, 혼자 다시 확인하러 몰래 가셨던거에요? 왜? 검안서 위조하려고?
오경사 아닙니다, 제가 그걸 왜..
지율 왜 일까요? 사수라서, 황 순경 감싸려고? 같이 징계 받을까봐? 아니면, 누구를 숨겨주려고..? (오경사 보면) 누가 시켰어요?
시환 가해자가, 사건 현장 바로 옆에있는 대형 병원에 입원 중이에요. 아시죠? 면회 거부... 새벽 두시에 산속 외곽 도로에서 보행자 사망사고를 내고, 본인은 다친 곳 없고, 건강한데.. 그런데 경찰은 음주 검사도 안하고, 진술만 받고 바로 입원이요? 반대로, 사망한 피해자는 거기에서 25분을 달려야 나오는 다 쓰러져가는 동네 의원에 몰래 숨겨놓고, 가해자는, 기본 검사도 하나 받지않고, 가평에서 제일 큰 종합 병원 특실에 누워 쉬고 있다.. 보통 큰 병원 영안실에 자리가 더 많잖아요. 왜 그 앞을 열심히 지나서, 논밭이 시작되는 시골 마을까지 가서, 자리도 없다는데 억지로 맡겼어요. 한 병원으로 바로 갔으면 여러 사람 편했을텐데요 (오경사 전화 지이잉)
오경사 (얼른 받고) 어디야? 빨리 들어와서 보고 드려. 기다리셔... (시환 손 내밀고, 오경사 불안불안 전화기 넘기고)
시환 (스피커폰) 황지석 순경. 복귀 안 합니까? 어딘데 이렇게 오래 걸려요?
지석 (목소리)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조금 멀리 와있습니다.. 메시지 듣기는 했는데, 무슨 문제신지..
시환 3일 전에 있었던 헤븐 모텔 앞 교통 사고요. 본인이 처리한 것 맞습니까?
지석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찾고 계신 분이 그 분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시환 보고가 조금만 빨랐어도.. 아니, 제대로만 했어도 이런 문제 없잖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관할도 아닌데, 왜 사수도 없이 혼자 나서서 이따위로 만들어놔요?
지석 관할은 아니지만, 다른 일 때문에 순찰 돌다가요.. (시환, 지율 보면??) 제가 현장에서 제일 가까이 있었거든요, 전화 받자마자 마음이 급해져서...
시환 순찰.. 이라고 하셨습니까? 비번이라 친구네 놀러가던 중에 우연히 본게 아니구요? (오경사 흠칫)
지석 (당황) 아, 그건.. 아마 그러니까 (버벅), 순찰 끝나고 친구 만나러 가다가..
시환 무슨 친구요? 어디 동네 높은 분이 친구하자고 전화 하셨어요? 가해자 좋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피해자 시신은 빼돌리라고 시키신 그 분이요?
지석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시환 보고서 본인이 쓴 거 맞아요? 현장은 직접 가봤고?
지석 예, 제가 분명히 다녀왔습니다. 그날 안개가 심해서 해가 좀 늦게 뜬것까지 기억합니다 (지율 어이없음)
시환 피해자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게 새벽 4시인데, 현장에 해가 늦게 떴어요?
지석 아.. 그러면.. 제가 시간을 잘못 봤나봅.. 해를 잘못 봤나봅니다..
시환 (꾹 참고 한숨) 어딥니까? 얼마나 더 걸려요?
지석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시환 얼마나 걸리냐고!
지석 30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시환 기다립니다. 당장 오세요.
지석 예, 죄송합니다.. (시환 휴대폰 오경사한테 넘기고) 경사님, 어떡하죠?
오경사 뭘 어떡해, 얼른 와야지, 기다리시는데.. (지율, 시환 보면, 꾸뻑하며 파출소 밖으로, 지율 노려보고)
CUT TO 밖으로 나온 오경사 건물 옆 화단으로 나와 속닥
오경사 황 순경, 내 말 잘 들어. 이 전화 끊고나면, 이제부터 절대 아무한테도 전화 받지마. 아냐, 아예 전화기를 꺼놔, 알았지? 그리고 연락할 일 있으면, 짝수 시간 정각에 한번씩, 공중전화로 연락해. 아무도 만나지 말고, 일단 잠수 타. 생각 좀 해보자. 그쪽 분들은 내가 알아서 잘 얘기 할테니까, 걱정말고...
(전화 끊고 안도의 한숨, 들어가려 뒤돌면 서있는 지율, 시환, 오경사 기겁)
씬 31 (시환의 차 안, 조수석에 앉은 오경사, 뒷자리의 지율)
시환 뭐하시는 겁니까?
오경사 죄송합니다.. 제가 똑바로 살피지를 않아서...
시환 사실대로, 처음부터.. 딱 한번만 기회를 더 드릴께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뭘 꾸미고 계시냐구요?
오경사 ... 그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들은 바로는... 그날 새벽에 황 순경에게 전화가 한통 왔답니다..
/과거/ 새벽 3시, 피시방에서 친구랑 게임하는 황순경, 전화 받고
지석 예, 전데요.. 예? 아, 알겠습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바로 짐 챙겨 뛰어나가고)
/오경사 목소리/ 청평 경찰서라고, 좀 높으신 분이 전화를 하신 모양입니다.
/시환 목소리/ 개인 휴대폰으로요?
/오경사 목소리/ 예, 발신자 제한이라 번호도 안 뜨고.. 청평 경찰서 서장실이라고 했답니다.
(현장 도착하는 지석, 이미 수습 끝난 현장, 레카차, 사고 차량 매달고 출발할 준비 <동인레카>, 황순경에 손인사하는 남자들)
/오경사 목소리/ 황 순경이 도착했을때는, 이미 가해자도 병원으로 이동한 후였고, 사고 차량도 막 견인되고 있었답니다
/시환 목소리/ 그럼 황 순경이 수습한 것도 아니고, 제일 먼저 도착한 것도 아니구요?
/오경사 목소리/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다 해놓고, 지석이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CUT TO 시환의 차 안
시환 피해자는요?
오경사 그게 좀.. 황순경이 도착했을때는 큰 이불같은거에 덮혀서 갓길에 누워있었는데, 주소를 하나 주면서, 차로 옮기라고 했답니다.
남자: 자네가 수고 좀 해.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정리 할테니까, 걱정말고
지석: 예, 알겠습니다 (남자 2를 도와 피해자를 차에 싣고)
시환 살아있었나요?
오경사 확인은 못했는데, 당연히 살아있을 줄 알았답니다. 설마 처음보는 사람한테, 시신을 옮기라고 부탁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지율 그럼 황순경은, 피해자, 가해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 누구 하나도 신원조차 확인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시골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건가요?
오경사 예, 병원에 연락을 해 놨다니까, 거기에서 뭐라도 치료를 해주겠지 했던 것 같습니다. 애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요.
시환 교통사고 환자를... 그것도 경찰이요. 바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병원을 놔두고, 30분이나 떨어져있는 시골 병원으로 데려갑니까? 119도 안 부르고?
오경사 저도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청평 경찰서에서 왔다니까 신고 처리 다 된 줄 알고... 게다가 그 분들이 워낙 높으신 분들이라, 아무 생각없이 위에서 시키시는 대로..
지율 높은 분 누구요?
오경사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청평 경찰서 서장실이라고 했다가, 현장에서 자기들끼리 속닥속닥하는데, 언뜻 '청장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다'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답니다.
(남자 1: 이거 정말 괜찮겠지?
남자 2: 뭐가 걱정이야, 아무말 말고 시키는대로 해. 문제 생기면, 청장님이 알아서 꺼내주시겠지..)
시율 청장이요..? 서울은 아닐거고, 경기도 경찰청? 아니면 군청이나 뭐 그런거?
오경사 확실치 않습니다. (답답) 그 자식이 워낙 순진해서.. 엄청 쫄아가지고 그 사람들 얼굴도 똑바로 못 봤답니다.
지율 오경사님은, 이런 걸 왜 우리한테 숨기려고 했어요? 부하 하나 살리자고?
오경사 .. 그날 사실은.. (눈치) 지석이가 전화받고 나가는 길에, 같이 가자고 저한테 전화를 몇번을 했는데, 하필 제가 술이 많이 취해서.. 자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출근하니까, 책상에 보고서를 써놨더라구요. 머리도 아프고 그래서.. 대강대강... 읽어보지도 않고... 당연히 저는,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사인만 해서 넘겼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는 그게 사망 사고인지, 어디서 뭐가 굴러 떨어졌는지도 아무 기억이 없고..
시환 그래서 낮에 우리가 왔을 때, 우리가 찾는 실종자가 그 교통사고 사망자인것도 몰랐다, 이렇게 되네요.
오경사 죄송합니다.. (꾸뻑)
지율 언제 알았어요?
오경사 두분 서울로 올라가시고 나서 다음날, 퇴근하려는데 영안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INS/ 파출소
직원 (목소리) 거기 황지석 순경이라고 있지요? 아니, 금방 찾아간다더니, 왜 아직 연락이 없어요? 이거, 맡겨놓은 거 얼른 빼줘야 우리가 다음 사람 받지? 이래서 무연고 시신은 안받는 다니까 억지로 가져다 놓고...
오경사 예? 시신이요...?
직원 (목소리) 아, 이 사람들이 진짜 이러기에요? 교통사고라면서요? 신원미상 젊은 여자! 사건 마무리하는대로 바로 가져간다더니, 아무리 경찰이래도 이러시는거 아니죠, 큰 병원에 자리 많은데, 왜 우리한테 갖고와서 그래?
(시환의 차)
오경사 그제서야, 뭔가 쎄하더라구요. 부랴부랴 보고서 찾아보니까 찔끔 몇줄 써있고, 아, 이거 지석이가 일 냈구나 싶어서 병원 달려가서 확인했는데.. 엉망인게 한두가지가 아니고, 의사 소견하고도 완전 거리가 멀고.. 그래서 뒤늦게 사고 현장도 가보고... 그런데, 형사님, 제가 봐도, 이게 누가 작정하고 망가뜨려 놓은 것처럼, 개판이더라구요. 이게, 지들이 사고치고, 어리버리한 우리 지석이한테 일 시켜놓고 숨은거에요. 아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이거, 완전히 당했어요. 위에서 알게되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지율 황 순경이 도착했을때, 혹시 소화기 흔적 있었다는 얘기했었어요?
오경사 어두워서.. 있었으면 봤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경찰인데..? 모르겠습니다, 직접 물어보시면..
지율 그 높으신 분들, 청평서에 연락 해보셨어요?
오경사 해봤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욕만 잔뜩 먹고, 그러고 나니까 경찰청까지 전화하기에는... 이제 생각하니 경찰청인지, 군청인지.. 어느 청장님인지도 모르겠구요.
시환 소장님도 아세요? 여기 파출소 소장님?
오경사 지금 병가 중이셔서 잠깐 공석입니다. 큰 일은 잘 없는 동네라서 이 사건만 아니면 아무 일 없었어요. 아직 이 사건은..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지율 두 분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셔야겠네요. 근무태만, 허위보고, 사건 축소은폐까지.
오경사 하아, 징계받겠습니다, 받아야죠.. 그런데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알고싶어요, 왜 하필 우리한테...
지율 찾아봐요. 오경사님 공범이잖아요.
오경사 저는.. (억울) 저희는, 정말 위에서 시키시는 대로.. 잘못이 있다면, 그 위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
시환 가해자 신상은요? 그걸로 역추적 할 게 있을까요?
오경사 대리 기사입니다. 차 주인이 많이 취해서, 모텔이요, 그 옆에 헤븐 모텔. 거기에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이었다고.
시환 데려다주고, 자기가 그 차를 가지고 나와요? 왜요? 모텔에 세워둬야지.
오경사 차주분이 그러라고 했대요. 자기만 내려주고, 차는 자기 회사 주차장에 갖다 놓으라고.. 모텔 들어가서카드 쓴 것도 확인했습니다. 너무 취해서 잠들었고, 기억도 잘 없고... 뻔한 이야기죠.
시환 대리 기사가 무단으로 차를 이용한 정황은 없구요?
오경사 글쎄요, 둘이 군대 동기랍니다. 평소에도 자주 운전해주고, 친해요. 그런데 형사님, 한가지 이상한 건.. 지금 그 사람 병원비를, 차주가 대신 내어준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6인실이 아니라 특실에 혼자 있어요. 그러면 보험비도 안 나오는데요.
시환 (갸우뚱) 대리 기사가 자기 차를 가지고 나가서, 사망 사고를 냈는데, 병원비까지 내준다..
오경사 의심이 가죠? 그런데 찾아보니까 그 차에는 블랙박스도 없고.
시환 블랙박스가 없어요?
오경사 자기 사생활이라고, 필요할때만 쓰고, 떼었따 붙였다 한답니다. 여자가 엄청 많던지, 뭐.. 다른 찔리는 짓을 하던지.
지율 사고 차량 어디 있어요? 아직 견인업체에 있나요?
오경사 .. 그게... (주변 경계하며) 사실은..
씬 32 디졸브/ 해 떨어지는 깊은 산속, 사방이 휑한, 버려진 땅 한 복판
차에서 내려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 시환, 지율, 같은 곳을 응시하고
시환 이걸 믿으라구요? 지금 눈앞의, 이 말도 안되는 장면을?
지율 눈앞에 있으니까, 이것만 믿어야죠. 이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건 아마 하나도 믿지 못할 것 같아요..
CUT TO 카메라 멀어지면, 두 사람의 허리까지 차오르는 잡초밭 한 가운데에 숨겨진 고급 SUV. 차량 앞부분과 내부에 잔뜩 뿌려진 소화기 분말. 차량 옆에 선 오경사, 어서 와서 보라는 듯 손짓하고
/디졸브/ 산속 어둠이 내리고, 차량 이곳저곳을 들추며 수색하는 시환, 차문을 열고 걸터앉아 불빛을 비추며 주변을 둘러보는 지율
오경사 뭐 더 찾으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지율 주변 동네 좀 아세요? 근처에 뭐가 있는지?
오경사 말씀 드린 그대롭니다. 지도에 표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요. 학교도 없고, 경찰서도 없고.. 그냥 버려진 땅입니다.
지율 황 순경은 이런 데를 잘 알아요?
오경사 제가 시켰습니다. 저는 여기 토박이에요. 여기다 숨겨 놓아야 아무도 못 찾을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윗선 누군가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 같은데, 만약에 저 증거마저 없애려고 한다면 큰일이잖아요. 저렇게 소화기를 엄청 뿌려놓은 것도 그렇고, 그거 말고는 별로 부서지지도 않은 차를 견인차 사장한테 없에라고 시킨 것도 웃기고.
지율 그래서 수사중이라고 하고 도로 빼왔다, 철저히 입단속 시키고..? (생각) 오경사님은, 그 사람들을 검거하려고 저 차량을 빼 온 겁니까, 아니면 본인 잘못을 덮을려고 숨기는 겁니까?
오경사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징계.. 달게 받겠다구요.
지율 근무태만, 허위보고.. 상대적으로 징계가 약하다 이거죠?
오경사 그게 아니라.. 사고 차량에 남아있는 증거라도 찾아야겠다 싶었어요. 저걸로 사람을 죽였잖아요. 경찰까지 불러내서 은폐하려는 걸 보면, 분명히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일거고, 저는 뭐 게임도 안되겠지만, 최소한 피해자 억울한 거 까지는 알려야죠.
지율 (일하는 시환 보며) 할 수 있을까요?
오경사 해야죠. 도와주십시오. 저는 안되지만, 두분은, 꼭 하실 겁니다. 피해자를 살려내지는 못해도, 영혼이라도 행복하게요.
시환 (멀리서) 선배님!
지율 (일어서 다가가고) 뭐 나왔어요? (오경사 따르고)
시환 (허리펴고 끄응) 오늘은 이정도면 많이 한 거 같아요. 마지막 운전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핸들이랑 내부는 완전 망한 것 같아요. 나쁜 놈들, 소화기를 얼마나 뿌렸는지, 어떤데는 아직도 축축해요. 대신 여기, 바깥쪽이요, 아우디는 상대적으로 범퍼가 작고, 대신 양쪽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렇게 가운데에 라디에이터가 크게 자리잡아서, 그릴 부분이 충격 완충의 역할을 해요. 사고 후에 급하게 뿌렸는지, 다행히 소화기 용액이 그릴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았어요. 루미놀을 안쪽으로 깊숙히 뿌리면, 혈흔이 몇 군데 보여요.
/INS/ 미키, 어두운 찻길을 혼자 걷고,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 급정거하지만 부딛치고, 튕겨나가고
시환 이상한 건.. 차량 진행 방향대로라면, 갓길쪽을 걷던 피해자를 뒤에서 받았으니까, 오른 쪽 범퍼에 부딛혔을건데, 그릴 안쪽 루미놀 반응을 보면,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골고루 혈흔이 퍼져있어요. 국과수 보내서 차를 다 뜯어봐야 알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충격이 단발에 그치지 않았을거에요. 범퍼랑 차체 아래에서도 혈흔 반응이 있구요, 그건, 실수로 한번 부딛힌게 아니라, 여러번 접촉했을 가능성을 말하구요, 어쩌면, 이미 쓰러진 사람을 차로 밟고 넘어갔을수도 있어요 (오경사 고통스러운 상상에 인상 쓰고)
지율 고문?
시환 (끄덕끄덕) 학대, 고문.. 어쩌면 지나친 장난.
지율 맨 정신은 아닐거고, 술김에?
오경사 그렇길 바래야죠. 아유, 맨정신에 그런 놈이면 그건 ..
시환 하나 더 있어요. 차량 안에 소화기를 뿌린거요, 필사적으로 노력한 티가 나는데, 정작 그을림은 거의 없어요. 군데군데 눈에 보이는 자국은, 화재가 아니라 작은 토치로 일부러 태운 거에요. 조작이요. 보세요. 소화액이 닿지 않은 뒷좌석의 뒷면이나 의자의 아래쪽은, 그을림 반응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손으로 창문의 소화액을 문지르면 닦여나오고, 고무 패킹 드러나고), 차량 화재의 경우는, 차체보다도 창문이나 문 이음새의 고무 패킹 혹은 시트가 먼저 손상되는데, 이 차는 소화기 때문에 손상이 생겼지, 구멍이라든지, 녹아서 변형되거나 타버리는, 열손상의 흔적이 전혀 없어요. 특히 여기..
CUT TO 지율, 오경사 들여다보면, 시환 명함만한 종이 조각들을 집어들고
시환 주차권이에요. 바쁜 사람인가봐요, 같은 주차장을 몇번씩 왔다갔다.. 총 세장이고 종이 재질인데, 하나도 안 탔어요. 대신 이렇게 분말만 잔뜩 뒤집어 쓰고, 주차권이 있던 자리도 보세요 (카메라 줌인) 눌어붙은 자국이나 잿가루 하나 없이 깨끗해요.
(감탄하는 오경사 거의 웃을 뻔하다 꾹 참고)
시환 아, 그리고.. 이거! 찾았어요 (면봉넣은 시료백) 조수석 문턱에서요, 누군가 구토를 한 흔적이 있었어요.
/INS/ 조수석 문 열리며 토사물 투투둑.. 문 닫히고, 오버랩, 닫힌 문에소화기 분사
시환 소화기를 뿌린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구토한 거 몰랐어요. 이걸 차주의 DNA하고 비교해보면, 그날 거기에 앉았던 사람이 과연 차주 본인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차주는 그때 어디에 있었고, 기사는 왜 제 3자를 언급하지 않았는지... 최소한 몇가지 질문은 더 할 수 있을거에요.
오경사 와, 대단하십니다. 벌써 그걸 다 알아내시고..!
시환 (미소) 과학수사대.. (오경사 아하.. 시환, 열려있는 본넨트로 이동) 많이 수상해요. 뭔가를 덮으려고, 이 비싼 차에 일부러 불까지 지르는 흉내를 내고.. 앤진에 불이 붙어 본체로 옮겨갔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럴려면, 본넨트 안으로 화염이 지나간 자리가 있어야하는데, 보세요. 어딜봐도 흔적이 없어요.
오경사 뭘 숨겼을까요? 단순히 지문 하나 숨기자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닐건데..
시환 글쎄요. 차주가 꽁꽁 숨어야 할 이유가 있나보죠. 그 대리 기사랑 차주, 통화기록 안 나왔어요?
오경사 오늘은 이미 너무 늦어서요.. 근데 어두우시면, 제가 모닥불이라도 피울까요? 잘 안보여서 힘들죠?
시환 괜찮아요. 밤에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건 다 한것 같아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빠진거 없나 보고, 국과수로 넘기겠습니다. 오경사님, 이 차, 이슬 맞지않게 천막이나 담요 같은 것 좀 찾아봐주세요. 전체를 다 덮을 수 있는 크기로요.
오경사 알겠습니다 (터덜터덜 뒤돌고)
지율 믿을까요? (시환 돌아보면) 우리랑 같이 있는 저 사람.
시환 일단은 믿는 척이라도 해야죠. 최소한, 손해를 입히거나 방해를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우리한테 많이 의지하는 것 같은데요?
지율 자기가 실수한 거, 카버하려고?
시환 그럴수도 있죠 (전화 지이잉) 어, 나왔어?
목소리 야, 류시환, 넌 역시 잡학다식의 왕이야. 인정! 네 말이 맞아. 미끄러져 내려온 자국이라서 정확한 사이즈는 힘든데, 일단 벨루티 제품인건 확실하고. 옥스퍼드 모델하고 제일 비슷해. 밑창에 새겨진 글자랑 점선도 일치하고, 근데 이거, 표준보다 양쪽 볼 사이즈가 좀 작아. 줄인거야.
시환 국내에서 판매했다... 좋네.
목소리 그렇지. 아니면 조금 넓혀서 아시아.. 홍콩이나 싱가폴?
시환 일단 직구나, 프랑스 원산지 구매는 아니고.. 대충이라도 사이즈 나오나?
목소리 앞쪽에 힘을 주고, 발끝으로 걸어 올라간걸로 감안해서 대입해 봤는데, 오차가 좀 넓다. 260에서 280.
시환 됐어, 할 수 없지. 족적에 발뒷꿈치가 없는 걸 뭐.. 고맙다. 다른거 더 나오면 연락줘.
목소리 오케이. 수고!
시환 선배님! 아까 보여드린 족적 사진이요, 밑창에 아무 무늬 없는 거..
지율 고급 수제화, 그거요?
시환 예. 프랑스 벨루티가 제작하는 홍창 구두 맞대요. 경사진데를 올라가는 족적이라 발 뒤꿈치가 없어서, 사이즈가 좀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시아 매니아층을 위한거라 유럽산보다 볼이 좁아요. 일단 한국에 있는 매장부터 연락해야겠어요.
(오경사 비닐 천막들고 돌아오고, 생수 하나씩 전달. 대화에 관심)
지율 겨우 구두 한 켤레 산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확한 모델도 없고..
시환 최근에 수리나 세탁 맞긴 사람을 찾을려구요. 그 정도 수풀속에서 경사길을 올라갔어요. 이음새나 특히 밑창에 이물질이 많이 묻었을거에요.
오경사 시내에 가면 구두 닦는데 엄청 많아요, 그런걸로 매장까지 갈까요? 그것도 다 서울일텐데?
시환 이건 일반 구두랑 다르다니까요. 서울에 특급 백화점 몇 군데하고, 수원에 딱 하나 있어요. 벌써 문의전화 정도는 했을수도 있고, 치워버릴려고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 내놨을수도 있어요. 그쪽은 오경사님이 알아봐주세요.
오경사 에이, 돈도 넘치는 인간이 그런 거 팔아서 얼마나 받겠다고..
시환 .. 경사님, 그 구두 진짜로 잘 모르죠? 벨루티는 한켤레에 기본 3백이에요. 중고도 백은 넘고..
발 들어간다고 다같은 구두가 아닙니다.
오경사 구두 한 켤레가 삼백만원이요?
시환 특별히 다른 걸 주문하거나, 아니면 앵글 부츠 같은 것도 5백 가요.
오경사 어이고, 그게 요즘 정치한다는 사람들 신는, 그런거에요? 뭐 로퍼라고 하던가..
시환 에이, 로퍼는 아저씨들 디자인이구요, (휴대폰 사진 찾고) 이 신발 주인은 아마 그보다 좀 젊고, 제 나이에서 아마 조금 더 되었거나 비슷할 거에요. 아우디 신형 SUV에, 신발만 3-4백만원이라.. (사진 보여주며) 여기요. 족적 딴 그 밑창이에요. 홍창이라고 하는데, 아주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을 써요. 원래는 유럽 귀족들이 실내에서 신는 신발이었거든요. 카페트 위에서..
오경사 아아... (정신 번쩍) 미쳤네요, 그런걸 신고 다니게.
시환 지금쯤 미쳐 갈 걸요, 그런 걸 다 버려놨으니..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한거라 함부로 세탁도 못하는데, 갓길이랑 수풀 속까지 헤매고 걸었으니, 긁히고 찢기고 속상할 거에요. 아, 아깝다... 내 취향이었으면 타바코라고.. 중간 브라운에서 진한 초코렛으로 가는 중간을 몽롱하게 빠지는, 하.. 그게 최곤데.
(지율, 오경사.. ?? 보면)
시환 아니, 제가 좋아한다는건 아니고, 그냥 이쁘다구요.. 상식이에요, 경찰 상식.. 이것저것 다 알아야, 수사할 때 수월하니까, 제가 좀.. 공부를 많이 해요, 봐요.. 여기서 바로 써먹잖아요.
(오경사, 지율, 말없이 차량 위로 천막 덮고, 시환 와서 지율 돕고)
시환 진짜 아니에요, 그런거 안 좋아해요.. 머리가 그렇게 텅 빈 놈도 아니고.. 아시죠..?
씬 33 새벽녘, 해뜬 직후. 다문화 가정 위치한 주택가, 아직 사람들 없어 조용한 골목에 경광등 켜지않고 정차하는 경찰차. 멀찌기에 서있던 승용차에서 하나둘씩 내려 기지개 펴고. 진우와 정아, 일행과 따로 떨어져 지켜보고.
경찰 1 (무전) 들어갑니다
진우 (무전) 예, 대기 중입니다.
경찰 2 (띵똥, 쿵쿵쿵 대문 두드리고) 장 선생님,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잠깐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띵똥 띵똥)
안에서 나오는 소리, 슬리퍼 찍찍 끄는 소리
대문 철컥 열리지만 딱 5센치 열리고
장 무슨 일입니까? 경찰에서 왜 나를 찾아요?
CUT TO 진우 이어폰 고쳐쓰고 집중
경찰 1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선생님 며느님이요, 얼마전에 출산 하셨죠?
(남자 당황, 아니 그걸 어떻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