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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19. 2017

연(鳶)과 인연(因緣)

쉴만한 물가

20130118 - 연(鳶)과 인연(因緣)


방패연, 가오리연, 꼭지연, 치마연... 이 연(鳶)에다가 가느다란 명주실에 풀을 먹여서 바람을 업고 하늘 높이 올린 연(鳶)은 아이에겐 꿈을 주고, 멀리 있는 이들에겐 소식도 전하고, 때론 전쟁 가운데 무기를 나르는 도구로도 사용했습니다.  중심도 무게도 바람도 모두 적당해야 높이 날아오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뱅글거리다가 허망하게 연줄이 끊어져 멀리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그렇게 날아가버린 연을 좀처럼 찾으러 가진 않지만 찾으러 가다가 묘한 인연이 되는 이야기도 종종 있습니다. 하여간 이 연(鳶)은 가느다란 실 하나에 바람을 안고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연(因緣)에도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악연, 선연, 우연, 필연...  불교에서는 이런 연마다 겁(劫)의 시간을 오가는 것이라 하여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일에 우연이 없다 합니다. 모두 다 인간사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연 가운데 피할 수 없이 맺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연들 가운데는 대부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악연(惡緣)이든 선연(善緣)이든 피치 못해 맺어지게 된 것을 살아가는 일도 어려울진대 만일 그것이 대를 이어 끊을 수 없이 이어진다면, 더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적 구조로 고착화된다면 이는 안될 일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연을 대물림까지 한다는 구조들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일입니다. 


최근 소위 상위 대학의 진학률이 서울의 일부 지역에 집중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내용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이지만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혈연이 학연을 결정하고, 지연까지 대물림해서 이어지게 하는 구조다 보니 이제는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얘기가 불가능해지는 구조로 고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시대 신분 세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회가 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연(緣)을 맺어가는 일도 어려울뿐더러 그것을 끊기도 쉽진 않습니다. 연(緣)에 연연해서 부정부패가 생기는 것도 문제이고, 함부로 그 연(緣)을 쉽게 끊어가는 일도 문제입니다. 하늘 높이 띄운 연(鳶)이 계속 떠 있기 위해서 바람도, 무게 중심도, 명주 실도 모두 그 긴장을 잘 유지해야 계속 날 수 있습니다. 그 긴장이 흐트러지면 주위에 있는 다른 연(鳶)까지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관계에서도 무질서한 관계 형성은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의 형태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는 이러한 연(緣)을 찾아주기도 하고 새롭게 이어줘서 거미줄처럼 이어줍니다. 알고 보면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이라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연(緣) 없이 살 수 없는 사회이며, 그것을 어떻게 유지 관리해 가느냐 하는 일도 사회적인 지위의 유지에 필연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 연을 잘 이어가는지도 그 사람의 인간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연(緣)에 연연해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말고, 소홀하지도 말며, 소중한 연(緣)에 대해서는 잘 이어갈 수 있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연(緣)을 통해 이기적인 욕망을 돌출하다 보면 당연히 그 균형은 무너져 오히려 연(緣)은 끊어지고 연(鳶)처럼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구조적이든 개인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문제 되는 인위적인 탐욕적 연(緣)의 대물림은 반드시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람을 팽팽하게 받은 연(鳶)의 줄을 너무 세게 당기면 가느다란 연줄은 어느새  끊어지는 이치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간만에 하늘 높이 나르는 연(鳶)을 보면서 소중한 인연들을 감사해하며 깊은 상념에 젖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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