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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19. 2017

잊을 수 없는 맛

쉴만한 물가 - 83호

20140117 - 잊을 수 없는 맛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우리들에게 그런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고구마나 간식거리를 좀 챙기는데 그날은 그냥 지게만 달랑 지고 출발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어디로 땔나무를 하러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다가 오래간만에 좀 더 먼 곳으로 가서 땔감으로 좋은 나무를 한번 해오자는 이야기에 의견이 모아졌고 우리는 큰 맘을 먹고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먼 산으로 갔습니다.


멀리 간만큼 나무꾼들이 다녀가지 않아 땔감으로 쓰기에 좋은 나무를 금방 구해서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나무를 한참 하다가 하나둘 내리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다가 모두들 다른 때보다 땔감으로 좋은 나무가 많아 이전보다 더 많은 통나무를 지게에 지우고 난 뒤 드디어 집으로 출발할 때쯤엔 벌써 눈이 발목까지 쌓였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좋은 나무를 했기에 욕심을 내서 짐을 지우고 미끄럼 방지를 위해 신발에 칡을 동여 매고 집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멀리 가서 평소에 가는 곳까지 내려오는 데만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면 다시 지게에 나뭇짐을 실어서 내려오고 다른 사람들 것까지 챙겨주고 함께 내려오는 바람에 모두들 지치고 배고프고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허기진 배는 점점 발걸음을 무겁게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우린 산지기가 살았던 외딴집까지 오게 되었는데 모두들 지게를 내려놓고 그 산막으로 가서 뭔가 먹을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빙빙 둘러보다가 집 뒤에 있는 고욤나무를 발견하곤 고염 열매를 많이 따 먹긴 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였고 우린 급기야 산막의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은 솥이 아궁이에 있었는데 뚜껑을 여는 순간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옆에 굴러다니는 숟가락으로 그 밥을 뜨려고 하는 순간 마치 박물관이나 식당에서 샘플로 차려놓은 듯이 딱딱해져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얼어버렸거나 굳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 물을 붓고 끓이면 누룽지라도 먹었을 것을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린 솥뚜껑을 닫고 다른 먹거리를 찾았는데 한편에 커다랗게 있는 고무통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두들 그곳으로 가서 위에 있는 덮개를 여는 순간 또다시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들 가슴 높이까지 오는 큰 고무통 가득히 바알갛게 잘 익은 감홍시(연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천연 김치 냉장고처럼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었던 홍시를 한입 물었을 때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모두들 입에 물리도록 꺼내 먹었습니다. 지금껏 그때 먹었던 그 시원하고 단 홍시 맛보다 더 맛있는 홍시는 아직까지 못 먹어 본 듯합니다.


가장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맛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일 또한 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편안하고 풍족할 땐 알 수 없는 일도 빈궁에 처하고 어려워지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쓰고 먹고 누리고 만나고 있는 모든 물질과 사람들은 빈 손으로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방학을 맞이 집에 있는 우리네 아이들에게 이러한 소중함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풍족하게 허락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잘못된 베풂이 오히려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아낄 줄도 알고 어려움에 처해도 이겨낼 수도 있으며, 빈궁에 처하고 갑작스레 재난을 당한 이웃이나 먼 이웃나라의 어려움에도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인정을 외면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지금이 정말 소중한 것을 알게 되고 고마움을 배우는 시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곧 명절이 다가오고 들뜬 마음 가운데에서도 어려움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마음 한 번 쓰고 도움의 손길 한번 주는 온정이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즐거이 손 내밀 수 있는 맛깔나는 인생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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