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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5. 2017

방학 숙제

쉴만한 물가 - 

20130125 - 방학숙제


방학이 끝날 때쯤 어딘가 불안하다 싶어 되짚어보면, 이내 숙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애를 태우면서 진즉에 할 걸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분명 미리미리 한다 했는데, 그리고 긴긴 방학 나중에 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었건만, 산으로 냇가로 놀러 다니느라 어느새 방학이 다 간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중 제일 난감한 숙제가 일기였는데 지금에야 날씨들이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하지만 예전엔 어림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누님 일기장으로 가늠해서 쓰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그 날씨까지 체크하셨을까 하고 생각 보니 괜히 맘 졸인 것이 또 한편으론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아니어도 방학은 마냥 노는 날이 아니라 학업의 연속이며 집에서도 뭐든지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되기에 그나마 과제물이라도 주어 긴장 가운데 살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 한 장 그리고, 일기 매일 꼬박꼬박 쓰고, 곤충 채집도 하고, 문제도 풀어오고, 독후감도 쓰고 하는 일들을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엔 하나하나 학교에 다닐 때처럼 일상이 되어야 했을 과제들이며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인데 그땐 왜 그것을 놀지도 못하게 숙제를 내야 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성실한 누님들은 꼬박꼬박 그 과제들을 착실하게 잘 하는 편이었는데 머스마(?)인 필자는 제대로 숙제를 잘 못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중학생 딸애가 자긴 방학 숙제가 없다고 하면서 숙제하는 초등학교 동생한테 놀리듯 자랑하는 얘길 얼핏 들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없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걸 듣고서, 어릴 적 바람이었지만 막상 딸애가 그런 숙제도 없이 방학을 지낸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해야 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허송세월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드는 생각이 평소에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받았을 스트레스에 방학만이라도 좀 신나게 놀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숙제가 없는 것도 좋겠다 했습니다. 공부할 때가 제일 좋다 하시던 어른들 말씀이 쟁쟁한데 지금은 반대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내어 몰아가며 집요하게 공부의 벼랑으로 모는 일들을 보면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학교라는 TV 드라마를 통해서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학업 환경을 적나라하게 엿보고 있는데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성교육은 둘째치고 건강하게 무탈하게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저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아직까지 정상인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과제가 없는 것이 선생님들이 통솔과 아이들을 향한 기대를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면 숙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생의 숙제는 더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했다가는 여지없이 경쟁에 밀려버리는 세상을 접하고 보니 요즘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왜 이리 쫓기듯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그러나 결코 삶이 여유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숙제를 제대로 고민해 볼 틈도 없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게 합니다. 방학숙제처럼 아무리 아빠도 미리미리 챙겨야 할 것은 챙겨야 그나마 가족에게도 직장에서도 펑크 없는 인생이지 않을까! 벼락치기 인생 숙제는 이제 그만하고 날마다 꼼꼼하게 자녀들을 향한 숙제와 부부 사이의 숙제, 부모님, 이웃, 직장, 시민으로서의 숙제들 다시 한번 더 점검해 봐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방학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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