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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5. 2017

꿩 대신 닭

쉴만한 물가 - 84호

20140124 - 꿩 대신 닭


어릴 적 설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촌닭을 구해 오셔서 잡으셨다. 아버님이 잡아야 하나 목을 비틀어 털을 뽑아 두었더니 푸드덕 도망가는 일이 한번 있은 뒤로는 어머님이 잡게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잡은 닭을 짚불로 잔털을 살짝 꼬시른 후(태운다는 이야기가 왠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배를 갈라 내장을 버리고 모래주머니는 잘 손질해서 기름장에 먹기도 하고 함께 다듬어 넣기도 했다. 나머지 몸통을 두꺼운 칼로 자잘하게 뼈채로 잘라 장을 넣어 졸여 닭장을 만들었다. 그 닭장을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서 떡국을 끓여 주셨는데, 떡국은 으레 그렇게 닭장으로만 끓이는 줄 알았다. 그런시면서 원래는 꿩고기로 맛을 내야 하는데 잡기가 힘드니 닭으로 대신해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하셨다.


그럴 때 꼭 잊지 않고 해주시는 이야기가 꿩 잡는 이야기다. 가끔 시골에서 겨울에 꿩을 잡을 때 논두렁에 약을 넣은 콩을 뿌려둬서 잡았다고 한다. 어느 꿩 부부가 아침에 밖을 나서는 남편 꿩에게 ‘여보 논두렁에 있는 콩들은 먹지 마세요’했더란다. 그랬더니 남편 꿩 曰 '여편네가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남편 한테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퉁을 줬단다. 밖을 노닐다가 논두렁에 콩이 있어 웬 횡재인가 싶어 주워 먹다가 하늘이 노래질 무렵 문득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아내가 했던 얘기가 생각나 후회하며 죽었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허풍에 객기까지 부리는 철없는 남편이 뒤늦게야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해 후회했는데 어디에서 웃어야 할진 모르지만 그 얘기를 들을 때를 돌아보니 어느새 그런 아내가 끓여주는 떡국을 먹는 나이가 되어 있다. 삼시 세끼 꼬박 다 챙겨 먹는 남편이 삼식이라던데 그 삼식이보다 더 많이 먹는데도 아내의 말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자식을 기르는 꿩이나, 도망가다 머리만 숨고 꽁지를 들고 있는 꿩의 습성이나, 장끼의 깃털로 만드는 붓 이야기 등 꿩에 대한 얘기들이 많은데 떡국 먹을 땐 꼭 그런 얘기들이 생각이 난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또 기승이다. 하필이면 설 대목을 앞두고 시작되어서 더 안타깝기만 하다. 발병한 농장에 애지중지 기른 오리를 다 묻어야 하는 농부의 아픔과, 물가로 떼죽음을 당한 철새들의 주검을 보는 일도 두렵고, 곳곳에 방역을 위해서 다시 설치되는 시설들과 그곳에서 방역복을 입고 일하는 분들의 모습도 고생스럽고, 하늘로 나는 새들이 옮기는 상황에서 어떻게 방역이 될지도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데, 그런 자연을 향하여 삽을 들고 훼손하는 인간의 무모함에는 아내 말 듣지 않는 장끼의 말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대 간의 소통의 부재보다 요즘엔 정가의 소통의 부재가 더 답답해 보인다. 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와 현실의 삶의 괴리는 서민들의 어깨를 더 움츠러들게 하고,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 쓸 수 없도록 살기가 힘들거나 부조리에 대한 이의 제기에는 가차 없는 벌금과 형벌로 압박해 오는 시국이다. 은행의 개인정보 유출은 그렇지 않아도 많던 스팸이 더 많아지게 했고 빼갈 돈도 없는 통장을 괜스레 뒤적여 보게도 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꿩도 없고 대신 쓸 닭도 시원치 않다. 소고기나 굴을 넣어야 하는데 이도 이래저래 떡국에 넣기 찜찜해지고 있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설날 아침에 먹었던 떡국. 방앗간에서 뜨거운 김과 함께 나오는 그 가래떡 하나 얻어먹자고 발동기 소리 시끄러운 그곳에 있으면 설은 마냥 설렘 가득했었다. 팍팍한 현실 속에 생채기 난 가슴을 부여잡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에 가서 설을 지내고 오려한다. 어느새  연로해지신 어머니 변함없이 닭장으로 떡국 준비하셔서 설날 아침에 끊여 내주실 것이다. 어머니 살아온 시절에 비할 데 없지만 지난 어려운 시절들도 잘 견뎌 왔듯이 이제도 그렇게 잘 이겨내리라, 힘과 격려를 얻고 올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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