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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08. 2017

사색을 위한 여백

쉴만한 물가 - 85호

20140207 - 사색을 위한 여백


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이라고 하기에도 그저 그런 달이 2월입니다. 뭔가를 시작했지만 제대로 발동이 걸리진 않을 것 같고, 새해의 결심들이 조금은 해이해지는 시간이어서 여차하면 그냥 지나칠 만한 시간이기도 한 달입니다. 보통은 음력 설이나 정월 대보름이 있어서 여차하면 설렘만으로 보내버리기 쉬운 달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졸업식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새 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면서 보리농사에는 웃거름도 주고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봄을 시작하는 입춘(入春)도 2월에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는 것과 동시에 유난히 2월이 빠르게 지나는 것은 다른 달보다 2~3일이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쉬는 시간들이 있기에 더 금세 지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달이 언제인지 묻는 이들에게 2월은 거의 언급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렇게 2월은 부족한 달에 있는 듯 없는 듯 1월과 3월 사이에서 겨울의 자리를 내어주고 봄이 오면 수줍은 색시처럼 다소곳이 자리를 내어주는 달이기도 합니다. 눈이 와도 금세 녹아버리고, 바람이 불어도 그리 차갑지 않으면서 금세 햇살이 비추이기도 하는 달입니다. 비가 한번 올 때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속에서는 싹을 틔우려 준비하는 속삭임도 들을 만한 달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그 아이들로부터 책 읽기의 유익은 상상력을 풍성하게 한다는 얘기와,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은 상상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해준 이야기를 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친구들은 그 말을 실제로 공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이야기들이 이젠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은 이제 아이들과 사람들의 손에서 수시로 점검하게 하고 없으면 불안해지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의문과 답에 대한 고민도 생각도 할 것 없이 검색하고 답을 찾는 것이 너무도 편해지고, 불편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자로 대체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는데 오랜 시간을 기다리려 하지도 않고, 다운로드하는 시간이 조금만 길거나 버퍼링이 심해도 금세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데 익숙하다 보니 그 안에는 사색의 여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이 없으면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다는 아이들에게 책을 보라 하면 재미없다 하고 밖에 나가라면 놀 사람이 없다는 핑계가 이젠 예사로운 대화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그건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른들도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읽고, 유리(스마트폰 창이나 모니터, 텔레비전)를 보고 있지 않으면 뭔가 불안해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보편화되어가는 것도 역시 사색의 여백을 지우게 합니다. 


너무도 비약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생각 없이 말하고 웃어버린 한 장관의 낙마에는 무표정하리만치 생각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오버랩됩니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생각이 없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실감이 나는 즈음에는 오래도록 천시했던 그 사색의 열매들이 빛을 발할 때인데 정작 속에 든 것이 없으니 누군가를 의지하고 그런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생각 없는 어른들이 많이 지고, 그러다 보니 상식적인 일과 생각마저도 통하지 않는 불통을 낳기도 합니다. 


2월은 사색하기 좋은 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흩날리는 눈을 보면서도, 때 이른 비의 낙수와 앙상한 가지에 물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결심하고 지나온 새해의 여정을 돌이키면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뿌옇게 산허리를 두른 안개와, 앙상한 가지에 지난겨울 다 벗지 못한 마른 잎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반복되는 일상의 모든 일들 속에서도 사색의 여백을 찾아 부족한 2월의 날들을 채워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족한 2월에 대한 배려이고 오는 봄에 대한 정성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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