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01-10
민수기 14:01-10 광야학교의 디베이트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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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정탐꾼의 비관적 보고를 들은 온 회중은 원망을 쏟아내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며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여호수아와 갈렙마저 죽이려 합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열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를 무시하고 큰 소리로 통곡합니다. 백성들은 두려움을 넘어 좌절했고 급기야 모세를 죽이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자고 설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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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이해
13장에 이어서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다룹니다.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크게 원망합니다. 최고 수위의 원망과 반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11장에서부터 시작된 불평 이야기가 절정에 이릅니다. 진영 끝에서부터 시작된 불평이 모세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불평으로 이어지며 그 강도와 위기가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망과 불평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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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믿음은 불평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입니다.
<매일성경>믿음없는 정탐꾼들의 결론을 들은 회중도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자, 믿음으로 다다르게 될 새롭고 더 나은 미래도 잃어버렸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노예살이를 끝내고 애굽에서 나온 일, 홍해를 걸어서 건넌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그려볼 수 있는 미래는 고작 가나안 족속의 칼에 멸절되거나 애굽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예가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믿음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이 성취될 미래를 마음에 그려봅시다. 그 믿음이 나를 약속된 미래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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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증언은 듣지 않고 열 정탐꾼의 보고만 믿은 온 회중은 밤새 큰소리로 울며 절망합니다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원성은 모세와 아론을 넘어 하나님을 향합니다. 가나안 땅을 무덤으로 쓰려고 여기까지 인도해 왔다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왜곡하며 비난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선한 은총과 역사를 부정하며 현재의 어려움 앞에 좌절합니다. 날마다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상황이 변하더라도 구원의 감격이 싸늘한 불만으로바뀌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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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은 반역으로 이어집니다. 현 지도자를 내리고 한 지휘관을 세워 환(還)애굽(또는 입애굽)애굽을 도모합니다. 광야에서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가 낫다며 불평하더니 이제는 아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들은 제때 먹여 주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하면 언제든 바로로 주인을 바꿀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의 상상력이 이러한 한계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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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가 밤새도록 울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다하고 젖이라도 물리고 이마에 손도 올려보고 여기저기 주무르며 아픈곳은 없나 살펴 보기라도 합니다. 그런데 다 큰 애가 울면 자초지종을 물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나 보는데,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면 습관이 되어서 애초에 뭘 해도 불만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다 큰 어른이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면 첨엔 살피겠지만 정확한 진단을 통해 처방을 하고 치료해 갑니다. 그런데 몸이 아픈것도 부족한것도 없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염려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 하는 이들에게는 백약이 무효합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오래 되면 부모된 자들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라서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탄식은 지금 다 큰 어른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귀가 얇아 두려운 이야기들을 듣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서 지나 불평하고 심지어 다시 애굽이 좋았다고 환애굽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심기를 심각하게 긁어대는 소리뿐 아니라 모든 것을 뒤집고 그 은혜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니 실제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 할 때는 통곡하지 않고 비장합니다. 그럴 맘으로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진격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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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절 믿음은 어리석은 이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품습니다.
<매일성경> 격앙된 백성과 달리 모세와 아론은 땅에 엎드립니다. 회중의 분노앞에 숨죽이며 원성의 한올까지도 감내합니다. 백성의 무지와 불신을 깊이 통감하고 책임지는 모습입니다. 더 나아가 온 회중의 난동에 대응하지 않고, 그들을 상대하기 전에 하나님을 상대합니다. 자신들을 향한 거역이기 전에 하나님을 향한 거역이기 때문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개업을 기다립니다. 문제와 위기 앞에서 내 첫반응은 원망입니까 기도입니까?
온 회중이 불신의 말을 내뱉으며 하나님을 거역하자,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며 엎드렸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회중을 설득하기 위해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약속의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다시한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자고 그리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하며 그들이 우리의 먹이이고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를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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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심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땅을 눈앞에 누고서 두려워하고 불신하고 심지어 돌아가자고 하니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회중을 향해 안타까운 심정, 긍휼의 마음을 품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이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이도,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이도, 척박한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이유도 모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거역하지도 말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도 말자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먹이인 이유는 이제 그들의 보호자는 없고 만유의 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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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땅을 보고서도 믿음의 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신뢰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는 삶과 죽음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불신 불평 불만의 끝은 죄와 사망이지만, 믿음과 감사와 신뢰의 열매는 의와 생명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녀나 공동체의 지체들이 믿음을 잃고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려 할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간곡한 말로 믿음의 길을 제시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달라고 또한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그런 기도 후에라야 믿음이 더 자랄 수 있습니다. 애초에 믿지 않는자는 기도해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응답해 주셔도 계속 불신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애초에 믿음이 없기에 욕심에 쩔어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엎드려 부복하며 항복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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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믿음은 현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게 합니다.
<매일성경>여호수아와 갈렙은 회중과 다른 현실, 다른 미래를 보았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이 ‘악평한 '(13:32) 땅이 두 사람에겐 ‘심히 아름다운 땅'이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였고, ‘거주민을 삼키는 '(13:32) 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삼킬 먹이(밥)’로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볼 때, 위기에 처한 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무력한 가나안 족속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 두 사람은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누리는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현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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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아름다움과 그 땅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거듭 강조하며 백성의 동요를 진정하려 합니다. 아낙 자손들이 장대하지만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전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이기 때문에 미리 싸울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외적인 환경을 뛰어넘게 합니다. 죄와 불신은 너무 적은 기대감, 지나친 두려움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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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고, 보여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주어진 사람과 사건을 믿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불평하고 불만스럽고 염려되는 일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수없이 많이 찾아냅니다. 염려와 불평과 불만의 특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특징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러한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 한 편, 한 면만 아는 것이기에 부족한 것입니다. 다른 면도 볼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을 더 크게 봐야 하는지 분별하는 것이 지식이기도 하고 믿음이기도 합니다.
한편 감사하고 신뢰하고 용기를 갖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 모든 일을 허락하셨고,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그 믿음을 가진 이들은 현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새로운 미래를 소망가운데 바라보면서 지금은 비록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여러가지 우려 되는 이들이 더 커보인다 하더라도 시퍼런 바다 위나, 아낙자속같이 거대한 벽을 향하여 한걸음 내 딛을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약속하시고, 주님이 허락하시고,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지금 먼저 손내밀고, 발을 내딛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아직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없거든 잠잠히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그리고 그런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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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 믿음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면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매일성경>회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현실에 압도되어 믿음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현실로만 채우지 말고, 믿음이 작동할 여지를 남겨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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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불평 불만 불신은 보이는 사람에게 돌을 들어 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타살하려는 데까지 막장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과 불평과 불만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이웃도 공동체도 모두 다 병들게하고 죽게 합니다. 선한 영향력은 미미하되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영향력은 살인도 불사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나신 것은 보통은 구름으로 가득한 것으로 임재를 표현하는데, 지금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시기 위해 ‘나타나심’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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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과 은혜와 사랑을 구하며 여호와의 임재와 나타나심과 함께하심을 구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나의 염려와 근심과 불평과 불만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 구하고 있는지요? 아니 아예 그분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는다면 기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돌로 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불현듯 우리의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하나님이 부재하실 것이라고 불쑥불쑥 믿음없는 언행이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한두번은 실수이겠지만 결국 그의 마음에 품은 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숨길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죄인은 두려워 떨겠지만 의인은 기뻐하며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지금 그분의 임재를 구하는 믿음이 있긴 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와 상관없는 일에 묻혀서 살리는 일이 아니라 죽이는 일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동참하고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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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쁨으로 우리를 거룩한 백성되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여기가지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우리에게 약속에 신실함을 보여주시고
이후로도 모든 일들을 주께 의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날을
마음에 그리며 살게 하소서.
의심과 두려움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지 못하도록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허락하소서
나의 언행심사가 믿음에 기인하게 하소서.
주의 임재와 동행이
제게 기쁨과 기대와 소망이게 하옵소서.
어려운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