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21-33
민수기 13:21-33 광야학교의 사전 답사 보고
*
모세는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바란 광야에 속한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가나안 땅 전역을 다니고, 가장 북쪽에 있는 성읍까지 방문합니다. 헤브론에서는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는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왔습니다. 과연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탐꾼들이 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가져온 것은 가나안 땅의 긍정과 부정 둘 다였습니다. 무엇을 보고 선택할지는 이제 백성들의 믿음의 영역입니다.
*
# 21-24절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모세의 지시대로 신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 또 네겝에서 헤브론까지 가나안 일대를 정탐했습니다. 거주민과 성읍을 정탐하다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매장지를 산 곳이자, 그와 사라가 묻혀 있는 헤브론(창 23:16-20; 25:7-10) 에도 이르렀습니다. 일찍이 요새화된 헤브론에는거인 집단인 아낙자손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또 모세의 명령대로 여러 과일을 따 왔는데, 그중 포도송이는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가져올 정도였습니다.
.
이처럼 정탐꾼들은 주어진 임무를 빠짐없이 이행했습니다. 공동체가 나를 믿고 맡긴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에게 헤브론의 기억은 심히 오도됩니다. 헤브론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처음 약속하신 곳이요, 아브라함이 이미 값을 치루고 소유권을 획득한 유서 깊은 땅입니다(창 23:16-20). 그러나 지금 이곳은 망각되어 아낙자손의 땅으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에게 지금 보이는 것은 아낙자손만 크게 보입니다. 약속의 땅이자, 유서깊은 땅으로서의 기억은 없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두려움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가까스로 따온 포도송이와 여러 과일들이 풍성한데 어쩌면 이들에게는 과일이 큰 만큼 큰 사람 아낙자손에 대한 큰 두려움도 함께 메고 돌아온 듯 합니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역사를 아는 지식으로 현실을 보는 지혜로운 안목입니다. 두려우리만치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는 대적이나 문제들에 대해 이미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풍요 속에서도 부요 속에서도 그것을 둘러싼 두려운 요소보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게도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여 포기하기에는 매우 소중하고 오랜 분깃(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현실의 두려움에 너무도 쉽게 믿음을 저버리는 연약함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눈,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을 따라 보고 품고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
# 25-29절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정탐꾼들은 40일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가져온 과일을 회중에게 보여주며,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그 땅은 이미 강력한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들의 성읍은 크고 견고한 요새이며,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도 그 땅에 거주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 헷, 여부스, 아모리, 가나안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거론하면서 천지 사방이 이들이 깔려 있는 것처럼 말하며 자신들의 두려움을 애써 애두르지만 이미 그들의 두려움은 회중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
40일동안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것은 대부분 다 봤다는 얘기이고, 광야의 40년과 한 세대의 40년을 중의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제대로, 그리고 온전히 다 살펴 봤다는 얘기이며, 동시에 우리 인생의 전면적인 상황 속에서 다가올 수 있는 모든 두려움과 복잡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동안 이들이 본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았으면서도 그곳에 있는 아낙 자손을 비롯한 가나안 거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눈은 이들을 두려워하며 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있는 이들로 그렇게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기에 결국 이들이 본 것은 두려움입니다.
.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따라가는 길에는 물리쳐야 할 유혹이 있고, 맞서 싸워야 할 불의가 있습니다. 그 험난한 과정을 지나야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탐꾼을 파견한 곳도, 정탐 보고가 이루어진 곳도 “가데스”입니다. 약속의 땅 길목에 위치한 가데스는 애굽의 노예살이를 청산하고 가니안의 자유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갈림길입니다. 하지만 신앙이 무너지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곳이 또한 가데스입니다. 가나안과는가까운 곳이었지만, ‘믿음’ 없이는그 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내 인생의 가데스는언제, 어디였습니까?
*
# 30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현실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회중이 어쩔 줄 몰라 술렁일 때, 칼렙이 나서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나안 거주민은 강하고 그들의 성읍도 견고했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내린 담대한 결론이었습니다. 정확한 정보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해져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
갈렙의 증언이 다른 정탐문들의 보고(25-29, 31-33절) 사이에 위치합니다. 믿음의 목소리가 불신의 아우성 속에 묻힌 것입니다. 하지만 “간결하지만 확신에 찬 갈렙의 메시지는, 장황하지만 불신과 두려움에 가득 찬 그들의 보고”와 대비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한 그들은 신념으로 무장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현실 너머 진실을 보는 영적 상상력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말씀(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길 간구합니다.
*
# 31-33절 믿음은 담대하게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14:6)를 제외한 나머지 정탐꾼들은 가나안 거주민들이 이스라엘보다 강하기에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며 갈렙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탐한 사실을 믿음 없이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스스로 메뚜기 같아 보였고, 그 땅은 자신들을 삼키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부여한 '‘탐지하라 ’(20절)는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했지만, '‘담대하라" 한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담대하지 못한 그들은 실패한 정탐꾼이었습니다.
.
열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이라고 폄하 합니다. 가나안땅의 비옥함과 열매의 풍성함은 축소하고, 헤브론(22절)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장대하다고 과장합니다. 특히 가나안땅을 ‘죽음(삼킴)’과 연결한 것은 그 땅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정면으로 배격한 것입니다. 그들의 악펑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도, 정체성과 사명도 다 잊게 합니다. 긍정의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부재한 것입니다.
.
능히 이기리라는 믿음과, 능히 못하리라는 불신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억과 그간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의 부재 여부에서 비롯됩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만으로도 이후로 모든 일들을 주께 의뢰, 의탁, 의지하기에 충분합니다. 주의 은혜가 나와 우리에게 족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불신앙과 탐욕이 있는 그대로를 족하게 여기지 않고, 더 많이, 더 높이, 더 크게 분수 이상으로 기대하거나, 기대 이상의 탐욕을 비전으로 포장한 것이 채워지지 않아 불평하는 것 때문에 믿음보다 두려움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고 결국 약속의 복을 버리고 염려와 두려움을 씨앗을 뿌려 전염시키게 됩니다. 화평케하고, 위로를 주고, 소망을 갇게 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언행심사를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해석하게 하옵소서 .
두려움을 일으키는 현실에서도
믿음으로 그것들을 버리고
믿음을 취하여,
우리를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