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26-45
민수기 14:26-45 광야학교의 상벌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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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내뱉은 원망의 말대로 그들에게 갚아주겠다고 하시며, 40년간 광야를 떠돌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못 들어갈 것인지 예고하십니다. 그 선별의 근거는 불신에 찬 원망입니다. 그간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전면 부인하는 일이기에 그 결과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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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이해
<묵상과설교>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에 동조되어 불신앙을 드러낸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합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그 심판을 감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형벌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악한 말로 보고했던 정탐꾼들에게 즉각적인 죽음이 임했고, 불평하며 불신앙을 드러냈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두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며 출애굽을 경험했던 구세대의 마지막을 고합니다. 40일간의 정탐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기 때문에,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총 40년의 광야 생활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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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35절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 삶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매일성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원망의 말”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뱉은 원망의 말대로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댜. 하나님 은 그들이 말한 대로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2절)는 말대로 인구조사에 포함되었던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고, 그들이 "우리 처자가 사로잡힐 것이다'’(3 절) 하며 걱정했던 어린 자녀들은 부모 세대가 거절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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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가서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부모 세대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한 죄 짐을 지고 살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으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 삶을 심판 하십니다. 말은 곧 마음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불신과 원망의 말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원망은 단지 부정적인 언어 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사(生死)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달려 있음을 모르는 무지와 불신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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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살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말하는 대로 만들어 집니다. 부인하기 어렵도록 말의 능력은 우리를 지배합니다. 혀의 권세가 온 몸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말은 정제되고 연단되고 절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불평, 불만, 불신의 언어보다 감사와 믿음과 살리는 말로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언어를 전하고, 내면을 향하여 선한 것을 채우고 담고 품을 수 있는 언어 그런 말로 채우는 것이 거룩한 백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언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할수만 있는대로 하늘의 언어 곧 거룩한 주의 말씀으로 빚어져야 할 것입니다. 부디 우리 입술의 열매가 주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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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3절 하나님은 믿음의 여부를 따라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매일성경>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신 후에,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과 들어가지 못할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하나님보다 가나안 거민을 더 두려워하고 약속의 땅을 싫어하며 원망한 출애굽 세대(20세 이상)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악한세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른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아직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언약에 책임이 없는 자녀 세대(20세 이하)에게는 그 땅을 허락합니다. 이것은 가나안이 선물이며, ‘믿음’이 출애굽이나 가나안 입성의 핵심 조건임을 말해 줍니다. 자녀와 공동체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 믿음으로 세상과 상황을 보도록 도전하는 부모입니까? 교사입니까? 지도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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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나의 믿음은 나와 가족과 공동체의 생사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믿음에 반해 10사람의 불신과 불평과 불만은 공동체 전체를 불신과 불평과 원망이 점철되게 합니다. 쉽게 선동되고, 쉽게 화내고, 쉽게 불평 불만의 언어로 불쑥불쑥 독한 말을 내는 일들 모두가 결국 그 누구보다 자신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분명히 깨닫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책임있게 살피고 교정하고 바르게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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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5절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언약과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매일성경>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즉시’ 진멸하지 않으십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에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방랑하게 하실 것입니다. 40년의 광야 방랑은 출애굽 세대(부모 세대)에게는 불신앙의 ‘무서운 심판’이지만, 출애굽 이후 세대(다음 세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을 키우는 ‘연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말씀을 외면할 때 방황의 시간은 길어지고 약속의 땅은 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분의 약속도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만 변하면 됩니다. 의심에서 믿음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타협에서 단호함으로 변하면 됩니다.
<매일성경>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언약을 이어가셨습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은 징벌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장성할 때까지 양육할 수 있었고,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의 뒤를 이어 언약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혹독히 징계하실 때에도 우리를 향한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멸할 목적이 아니라 살릴 목적으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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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때를 아는 지혜, 하나님의 양육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지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있음을 온전히 신뢰하는 지혜,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그분의 언약과 긍휼을 언전히 알고 품어 누리게 되는 일까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 삶에 때를 아는 지혜, 순종하는 지혜, 신뢰하는 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더 잘 사랑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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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38절 하나님은 지도자의 언행심사에 엄중한 책임을 갖게 하십니다.
<매일성경>하나님께서는 원망한 회중은 살리셨지만, 정탐 후에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회중에게 불신과 원망을 뿌린 열 정탐꾼은 재앙으로 죽게 하셨습니다. 말하는 직임을 맡은 사람, 말의 무게와 영향력이 큰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말이나 글로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의 무게를 알고 신중하고 진중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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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 쌓여 가며 말과 글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 신중하고 진중해야 한다는 것 역시 경험하게 됩니다. 더 잘하고 바르게하고 온전한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관과 청중이나 성도를 향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청중에 대한, 글은 독자에 대한 애정을 따라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고려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공동체를 향한 영향까지 고려하며 깊은 애정을 가진 자라야 더욱 언행심사를 신중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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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5절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에 책임을 지고 겸손하게 순종하기 원하십니다.
<매일성경>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를 떠돌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뒤늦게 가나안으로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다가 아말렉과 가나안에 패배했습니다. 잘못을 만회하려고 하나님의 처분을 거스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일을 시도하다간 실패만 더할 뿐입니다. 겸허하게 자기 잘못에 책임을 지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결정을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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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말씀과 공동체와 지각과 상식과 환경까지 분명하게 확인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물론 공동체가 함께 잘못된 길로 가고, 몰지각, 몰상식한 판단이 있을 수 있고, 환경이 열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인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런 잘못된 언행이 드러났음에도 깨닫지도 못하고, 돌이키지도 않는 것이 더 큰 일입니다. 자기 부인하지 못하고, 반성도 안되고 또 다른 거짓과 기만으로 가리려는 행동은 책임있는 자, 성숙한 자의 자세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의 윤리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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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오래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긍휼하심을 오남용하는
교만된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늘 기억하며
우리 안에 품고 내는 언행심사에
신중하고 진중한 자세를 갖기 원합니다.
때늦은 후회로 탄식하기 전에,
원망의 말을 거두고
서로 믿음의 말을 나누게 하소서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원망과 불평을 거두고
믿음의 언어로 응답하게 하소서
오늘도 나의 언행심사의 비중을 고려하여
살리고 사랑하고 온전케 하는 일들로
채워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