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22-41
민수기 15:22-41 광야학교 규칙과 교복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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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안식일을 범한 이에 대한 처벌에 대해 다루고,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기 위한 옷단의 술을 만들 것을 명하시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서 거룩하게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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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묵상 :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탐욕에 물들지 아니한 거룩한 삶의 길이 거룩한 나라 백성의 길입니다.
# 한줄묵상 : 생명이 주인되시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길이 거룩한 백성의 길이니 개인과 공동체 모두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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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6절 우리가 부지중에 지은 죄도 반드시 속죄해야 합니다.
부지중에 여호와의 명령을 공동체가 지키지 못하여 범죄할 가능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이를 속죄하기 위한 규례를 제시하면서 이러한 속죄는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거류민들도 똑같이 범죄한 것이며 또한 속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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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선순위를 두고서 주님의 통치와 주권에 대해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부지중에 공동체가 함께 어리석은 일을 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죄를 범한 이후에 그 죄를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공동체가 속히 속죄한다면 하나님은 능히 사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거류민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적으로 죄를 범하는 일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망하는 일이기에 신속한 범죄의 인식과 조치가 필요합니다. 잠시만 지체되어도 함께 부정에 물들어서 어느 순간에는 되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공멸하게 되는 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부지중에라도 지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이러한 공동체가 범한 죄가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야 하는 기준 또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이들이 있어야 범죄를 자각하고, 속죄의 길로 제시한 일들을 신속하게 진행하므로 공동체의 파괴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문제를 신속히 발견해야 하고, 발견된 문제에 대해서 공동체는 속히 자각하고 이에 대한 처리에 있어서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공동체도 사람도 모두 잃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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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공동체로 부르심은 함께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세워져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한 일을 열심인 백성들, 거룩한 공동체는 혼자서 세울 수 없습니다.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해야 거룩한 예배와 사랑과 말씀과 선교의 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습니다. 부디 공동체의 문제점과 허물에 대해서 신속하게 자각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발견된 죄악에 대해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실수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신속하게 규례를 따라 처리하는 것이 공동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족들의 실수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고치고 채워 가야 하는 지 다시한번 점검하게 합니다. 주님의 긍휼과 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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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9절 한 사람이라도 지은 죄가 있다면 죄를 속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해도 마찬가지로 속히 속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속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 모두 범죄자에 대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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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범죄는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 속히 처리하지 않는다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서 점점 그 죄에 대한 오염은 심각해 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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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우리가 매일 사는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라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과 교만함은 없었는지 알게 됩니다. 공동체는 사랑으로 개인의 죄에 대해서 공의롭게 다루되 사람을 잃지 않도록 지혜롭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 공동체적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범죄를 소홀히 여기기 시작한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죄에 대한 자각과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죄에 둔감하여 점점 무디어지고 급기야는 그 죄에 대한 질책을 듣지 않고 고착화 시키게 됩니다. 이는 심각한 파멸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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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1절 여호와를 향한 멸시와 반역의 결과는 퇴학입니다.
본토인이든 타국인이든 고의로 여호와를 향하여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반역한다면 그는 여호와를 향하여 반역하는 것이기에, 그의 죄악에 대한 조치는 광야공동체에서 끊어지거나 추방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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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의로(즉 의지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들고 저항한다면) 범죄하면 이는 여호와를 비방하는 것이며 멸시하는 것이며 명령을 파괴하는 행위이기에, 이러한 범죄의 결과는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공동체에서 퇴출되는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히10:26-29). 한 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범죄면 불신앙입니다. 여호와의 뜻을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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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들마저도 늘 말씀의 다림질과 거울 앞에서 서서 나의 생각과 믿음과 삶의 내용들이 얼마나 말씀에 가까운지, 부족함은 없는지, 부지 중이든 고의 든 지은 죄는 없는지 반드시 점검하고 조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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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6절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삶이 아니면 이미 죽은 것과 같습니다.
광야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 발견되었으나 어덯게 처치할지 몰라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는 그를 죽이라고 명합니다. 심지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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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사건으로는 너무도 가혹하고 잔인하게 보입니다. 안식일에 나무하는 일이 그렇게 죽을 죄인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는 것은 이미 가데스에서 정탐을 보낸 지파의 수령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행동을 했다가 재앙으로 죽었던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호르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서 제시된 제의 규정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회중의 죄와 개인의 부지중 지은 죄는 속하는 길을 제시하지만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라는 규정과도 연관됩니다.
안식일에 나무를 한다는 것은 먼저 일하지 말라는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 저변에는 그날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불신에 기인한 행동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주관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려는 행동 곧 반역적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토록 엄하게 이 죄에 대해서 처리하고 이러한 풍토의 전염성을 차단하고 부정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진영밖으로 나가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진영에서 축출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음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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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날을 지키는데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공급하심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은 주권이양입니다. 그렇게 이전한 주권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채우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매일 매순간을 주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아닌 것의 통치에 끌려다니며 분주하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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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39절 성령님께서는 주의 계명을 기억하게하고 준행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옷단 귀에 술을 달게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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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자체에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또한 욕심을 따라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표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기억하게 하고 탐욕에 기인한 음행을 금하게 하는 것이라면 대번에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과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게 하고 순종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 예배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들 모두 결국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찾게 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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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말씀을 기억하는 일도, 깨닫는 일도, 준행하는 일도, 그리고 탐욕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는 일들도 모두모두 불가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성령충만을 구하는 일이 거룩한 삶에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책, 사람, 물건, 장소, 예배당 등등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게하고 탐욕을 버리며 음행하지 않게 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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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41절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거룩한 백성이라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나라 세워가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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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안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그런 모습으로는 결코 거룩한 백성의 모습이라 할 수 업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의 포로된 백성을 구원하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섬기는 거룩한 백성을 빚으시기 위해서 출애굽의 놀라운 사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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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역사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속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주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고 살게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성령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외면하는 것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 안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수없이 전하는 우리 맘이 먼저 주되심을 온전히 신앙하며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백성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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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날과 절기와 시간과 모든 소유의 주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으며, 소유권을 주께 이전하고
죄에 대하여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하며
날마다 약속하신 성령님의 인도와 기억하게하심과 순종케 하심을
날마다 구하고 찾으며 살아가고
거룩한 주의 나라의 백성을 세워 하나님나라 세워 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준해아며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
나의 모든 삶의 주권과 소유의 주되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부지중에라도 지은 공동체와 개인의 죄에 대해서
속히 발견하고 자각하고 돌이키며 말씀의 통치를 받는 삶을
신실하게 살 수 있는 능력 허락해 주옵소서.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죄에 더 민감하고 심각하게 반응하여 속히 처리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