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01-19 광야학교의 등급 시험 1 - 위기와 타협 * 많은
민수기 32:01-19 광야학교의 등급 시험 1 - 위기와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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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가축 떼를 가진 르우벤과 갓 자손은 길르앗 땅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모세는 그들의 요청이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사건과 같다고 책망하면서 이는 모든 백성을 멸망케 하는 행위라고 판단합니다. 요단 동편을 요구한 갓과 르우벤 지파는 모세에게 수정안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자신들은 무장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에서 전쟁하고 각기 기업을 얻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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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주신 분의 뜻을 바라 봐야 합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은 많은 가축 떼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야셀과 길르앗 땅(차래 지도 참고)을 보고서 자신들의 가축을 먹일 장소로 여겨서 이 땅을 소유로 주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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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많은 소유를 얻게 된 데는 르우벤과 갓 뿐 아니라 다른 여타의 지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달리 이 두 지파만 언급 됩니다(므낫세 지파도 요단 동편에 거하지만 여기선느 두 지파만 언급됩니다). 더우기 르우벤은 장자여서 여기서는 먼저 언급되지만 이후로는 갓지파가 먼저 언급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제안에 갓지파가 주도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르우벤은 고라의 반역에 가담한 것으로 이미 한 번 학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또 불신앙적인 행동에 동참합니다. 지금 길르앗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요단을 건너 바로 눈앞에 약속의 땅을 두고서 눈에 보이는 길르앗 땅을 보고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소유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급기야는 하나님의 약속에 부인하는 행위를 하고 만 것입니다. 이토록 풍성한 소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알았다면 약속의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깊이 재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지금 눈에 좋아 보이는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까지 한 그 땅에 마음을 쏟고 결국 불신앙적 제안을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딴에는 약속의 땅이 비좁기에 이곳에서 자신들이 거한다면 서로 좋은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적절한 행위로 보이지만 이러한 행동이 하나의 뜻에 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행위라고 하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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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가 애매하게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시험은 꼭 눈에 보이는 것, 특히나 물질과 소유를 통해서 강하게 다가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으로 가장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그 이면에는 불신앙적 요소로 가득한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의 주권이 주님께 있으며,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그런 물질을 허락하신 분이 우리의 필요에 따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더불어 필요 이상으로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왜 내게 주어 졌는지 물어야 하고, 그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 곧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기까지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눈이 멀어버립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주님의 뜻과 사명을 보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게하고 물질에 집착하게하고 세상의 것을 탐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로 온전히 주를 따르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임을 분별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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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3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도를 온전히 따르는 자(순종)가 소유합니다.
모세는 갓, 르우벤 자손에게 어찌하여 여기 눌러 앉고 다른 자손들을 낙심하게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하느냐고 진노합니다. 이들의 행위는 조상들의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앙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낙심케하고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없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을 상기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때도 갈렙과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른 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여호와께 악행한 세대는 모두 40년동안 광야에서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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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소망을 이야기하며 약속의 땅을 얻자고 했는데, 지금 갓과 르우벤은 불신앙으로 낙심을 전하고 약속의 땅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행위를 범한 것입니다. 두 지파, 두 사람이 모두 상반된 행위로 대조됩니다. 소유를 보다가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명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봐야 할 것을 보지 않고 소유를 보게 되니 탐욕에 눈이 멀어서 여호와 앞에 불신앙의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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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듣고 품고 말한대로 생각하고 살게 됩니다. 선한 것이면 선한 열매로, 악한 것이며 악한 열매로, 하나님의 뜻이면 거룩한 것으로, 세상의 것이면 부정한 것으로 그렇게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하늘에 소망을 품고, 거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길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무리 탐스럽고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더라도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음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의 역사를 회고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는 자는 눈앞의 유익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뜻하심과 계획하심이 무엇인지 더 관심을 갖고서, 허락하신 소유를 주신 뜻을 물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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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불신앙의 죄에 대해서는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갓과 르우벤을 향하여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라 단정하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한다고 책망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떠나는 행위로 규정하면서 그 결과는 자신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멸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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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이미 이스라엘은 공동 운명 공동체임을 확인했습니다. 기쁨과 영광도 함께 하는 것이지만 한 지파의 죄악이라도 결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한 몸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부르셨고, 인도하셨으며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만일 일말의 불신앙적 요소와 죄악이 있다면 함께 망하는 길임을 상기합니다. 불신앙과 죄의 영향력은 이렇게 공동체에 심각하여 전염되고 부패하게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러한 불신앙의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이미 광야 40년의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학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온저한 믿음위에 서 있지 못합니다. 누구보다 르우벤은 더 뼈아픈 반역의 역사를 기억하고도 이렇게 불신앙적인 생각에 또다시 동조한 것입니다. 모세가 더 단호하게 말한 이유도 르우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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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교회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이유는 연약함을 아시기에 함께 자라도록, 서로 격려하며 도우며 섬기며 세워질 수 있도록 붙여 주셨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유기적인 생명공동체가 믿음을 잃으면 불신앙과 죄악의 암덩이는 금새 공동체 전체를 마비시키고 오염시켜버리고 맙니다. 사소해 보이는 잘못일 지라도 불신앙적 요소에 대해서 단호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특히나 교회에서는 영향력 있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이런 시험에 빠지게 되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교회가 혼란과 분열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없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건강을 좌우합니다. 치리가 사라진 교회에 깨어 있는 지도자들의 바른 삶과 치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갈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바른 말씀의 기준들을 세워가고 말씀을 통한 믿음위에 든든하게 서 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호리라도 잘못된 가르침이나 불신앙적 행위로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함께 협력하여 단호하게 대처해 가는 지혜로운 처신과 치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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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9절 우리의 목숨을 걸만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갓과 갓과 르우벤 자손은 모세에게 와서 가축을 위해서 우리를 어린 아이들을 위해 성읍을 견고하게 건축한 후에(건축 순서가 24절 모세의 제안과 다름) 무장하여 약속의 땅 정복에 앞장서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기 기업을 얻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고, 자신들은 요단 동쪽의 기업을 받고 약속의 땅 기업은 받지 않겠다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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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과 갓 자손이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의 정황을 두고 보면 먼저 미디안과의 전쟁은 약속의 땅에 대한 헤렘과 전리품의 분배에 대한 원칙을 보여주고 있고, 이제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하는 일에 대해서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광야 이스라엘의 자세를 교육하기 위한 본문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다른 자손들을 배려하여 자신들이 요단 동편에 거하는 것이 다른 자손에게 유익이라 생각하고, 또한 자신들이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대가를 지불하다 하고, 가축과 가족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유익이 있습니다. 또한 막무가내로 요단 동편을 달라 하지 않고 모세에게 충분히 상의하고 요구를 거두고 수정하는 자세등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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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먼저 요단 동편에 거하는 지파는 르우벤과 갓 지파 외에 므낫세 지파의 절반 정도인데 여기서는 므낫세 지파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지파는 인구가 많기에 요단 동서에 거할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이 지파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갓과 므낫세의 부정적인 문제에 므낫세 지파를 제외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는 요단 동편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이미 암몬 모압 에돔이 살고 있는 땅이고 이들은 비록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만 형제의 나라입니다. 이 땅이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원래 약속은 요단 동편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이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 보이는 땅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요청하고 결정하려 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됩니다.
세번째는 요단 동편에 거하는 이유를 가축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일이 합당하게 보이지만 먼저 이들의 안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이들이 병거와 경고한 성읍과 다른 인간의 노력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들이 제안하는 순서가 아이들이 먼저가 아니라 소유된 가축의 우리를 먼저 짓겠다는데에는 이들의 속내가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보다 물질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들의 기준이 더 우선되는 것을 판단한 것입니다.
네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도 역시 이들이 제안하는 약속의 땅에 대한 정복 전쟁에서 자신들이 선봉에 선다는 표현에 있어서도 전쟁의 모든 전략과 방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함부로 목숨을 걸고 선봉에 서겠다고 하는 것은 전쟁의 주권을 가지신 주님을 자신들의 열심으로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는데 이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물론 정복이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무모한 맹세로도 보입니다. 역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자신들의 욕심에 기인한 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요단강 건너편의 약속의 땅 대신에 이편을 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스라엘이 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들이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기에 분열의 씨앗을 제공하는 일이므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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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들이 선봉에 서고 후일에 요단 동편 땅에 거하게 되지만 몇번 다른 지파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위험도 실제로 있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것은 앗수르의 침공에서 요단 동편의 이들이 가장 먼저 끌려가게 됩니다(대상 5:26). 이러한 모습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 먼 이들이 결국 하나님과의 약속과도 멀어지고 그것이 신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헌신하고 맹세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발로로 기인한 것이라면 결국 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 열매와 끝이 좋지 않다면 긴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때 문제가 됩니다. 정말 우리가 헌신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은 우리의 이기적인 탐욕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그 약속을 이루며 누리는 일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위해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의 탐욕과 이기로 인한 것이라면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후일에는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그토록 열심으로 취하고 들어가려 했던 그 나라에 가서 여기가 아닌가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인도하시는 대로, 인내하며 끝까지 순종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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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허락하신 소유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신 것을 자족하면서
풍성하게 허락하신 것에 대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나누고 섬기고 베푸는 일에 앞장 서게 하옵시며,
삶의 여정과 하나님의 역사를 돌아보며
부어주신 은혜를 늘 상기하면서
불신앙의 전철이 아닌
믿음의 본을 온전히 따르게 하옵시며,
공동체 안의 불신앙적인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분별하고 대처하게 하옵소서.
더불어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과 약속하심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안위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고 있는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믿음과 현실 가운데서
자꾸면 눈에 보이는 현실과 타협하려는 연약함을
주님 붙잡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