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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Mar 07. 2017

철들다

쉴만한 물가 - 101호

20140307 - 철들다


늦깎이로 요즘 멀리 한양을 오가며 공부 중이다. 평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늦깎이라는 말이 배움에 대한 예가 아닌데, 그래도 공부는 젊어서 해야 한다는 옛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고 난 배움은 보고 듣는 것이 좀 남다르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들며 또 다른 묘미를 맛보고 있다. 그런데 하필 학교가 북향에다가 산 중턱에 있고, 거기다가 여러 가지로 검소함이 몸에 배도록 하는 환경이어서 난방도 최소한으로 가동을 하다 보니 옷을 겹겹이 입고 있어도 춥다. 문제는 학교에선 그렇게 껴입고 파카를 입다가도 귀가를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나오면 뭔가 어색하다. 가만 보니 어느새 옷들이 얇아져 있다. 


가끔은 꽃이 피는 걸 시샘하는 추위가 한 번씩 휘익 돌아서서, 오는 봄을 향해 입김을 내뿜을 때면 화사한 봄옷 속 뻘쭘함이 느긋한 안도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 날들이 그리 많던가? 대부분은 철 모르는 무딘 사람으로 눈총을 받다가, 애써 먼 산만 바라보며 줄기차게 제 갈길 가버리며 그런 어색함을 모면한다. 철 모르고 꽃이 피면 그래도 꽃은 이쁘기라도 해서 봐줄 만 하지만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철을 모르면 철없다 하기도 하여 철부지라고 한다. 그러다가도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 사리 분별을 할 줄 알게 되어 철이 들면, 말이나 행동에 사람 구실 제대로 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챙길 줄도 알고 이해도 하며 배려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타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광양에 제철이 있다고 하면 ‘거긴 제철이네?’ 하기도 하고 ‘철이 제대로 들겠네?’하는 농담을 듣는다. 농담이지만 한편으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쇳가루 철과 계절의 철이나 삶의 지혜의 철에 대한 개념이 혼용되어서 무슨 뜻이냐고 되묻다가 그냥 웃는다. 쇳가루가 들면 위험하고, 제 철(계절)이 되어 꽃이 만발한 때가 되었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정말 지혜가 넘치는 철든 사람이라는 의미라면 더더욱 으쓱해지긴 하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 속은 모를 일이다. 


철들었다 하면 지혜와 사리 분별의 능력이 들었다는 의미로 철부지가 이제 지혜와 사리 분별을 할 정도로 성숙한 이가 되면 그렇게 불러준다. 허나 나이가 들어서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행동에 사리분별 제대로 못 하고, 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분도 못 하며, 특히나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 배려하지 못하는 이들을 철부지라고 한다. 그 사람이 지도자라고 한다면 철이 없는 지도자 밑에는 간사한 섭정과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이 득세하게 되고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며, 민생은 어지러워진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철없는 왕들의 시대가 그랬다. 그런데 요즘 민주 공화국인 우리나라가 꼭 철없는 왕정시대를 사는 것처럼 제 철도 모르고 철부지 같은 언행으로 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이들이 여러 분야에 소위 지도자라고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느냐에 따라서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게 되고 그런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면 더 넓은 안목으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최고인양 편협함 속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가끔은 일을 하다가도 멀치감치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을 탐구하거나, 전문가의 조언들을 통해서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노력해야만 성숙해질 수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 종일 공부를 하다가 꼭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라는 시간을 학교에서 배려하고 있다.  그런 시간을 일부러 갖지 않으면 현실 감각이 무뎌지고, 책 속에 갇힌 죽은 지식만 쌓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동산으로라도 잠시라도 휘이 둘러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소에 그런 민생의 현장을 두루 살아온 이들이라면 지도자가 되더라도 말하는 것부터 여러 씀씀이가 표가 난다. 그런데 평생을 그렇게 살지 않다가 준비도 안돼서 지도자가 되어 이제야 민생을 살핀다고 하다면 요식 행위밖에 안된다. 벌써 봄은 왔는데 산책이 필요한 이가 있는 듯싶다. 켜켜이 쌓여 가리어진 것들을 걷어 내서라도 지금 어떤 철인지 알고 철이 좀 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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