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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Mar 07. 2017

새가 날아든다

쉴만한 물가  - 100호

20140228 - 새가 날아든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새 학년, 새 친구, 새 학기의 새가 날아들고,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훈풍에는 새봄, 새순, 새싹, 새잎의 새가 날아들고, 지방선거에는 새정치, 새바람, 새바람, 새일꾼의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이 새들 중에 어느 새가 가장 으뜸일까?


아침에는 새봄의 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비보를 접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위에 무심코 지나치다가 그런 아픔을 보듬어 줄 만한 여유도 없이 스러져 간 이들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왜 마지막에 가면서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아니 자신들을 외면한 세상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세 모녀는 미안한 맘 가득히 유언 같은 메모를 남겨두고 생을 이별하고야 말았다. 미안해할 사람은 그네들이 아니라 그런 아픔을 외면한 우리들인데 떠난 이들이 말이 더더욱 가슴을 먹먹케 한다. 


집세와 공과금, 부동산과 생활비, 땅과 먹거리는 이 땅에 목숨을 달고 나오는 이들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기가 온 땅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고, 제 먹거리 달고 나온다고 했으니 먹는 문제로 끼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 만큼 그래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네 사회의 빈부 격차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격차가 멀어지고 말았다. 


땅은 절대로 투기나 돈벌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을 통해서 땅의 소산을 먹고살아야 할 인간에게 땅의 분배가 한 켠으로 몰려서 그 땅을 잃게 되면 결국 먹거리를 얻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종이 되어 종속되어 살게 되고 계급이 생기고 만다. 사람은 서로 대등한 존재인데 땅의 소유 여부에 따라 종속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많이 가진 이들이 먹거리로 장난을 치고 탐욕에 눈멀어 한없이 모아도 나눌 줄 모른다. 


성경에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다. 쉽게 얘기해서 50년째 마다 한 번씩 포맷을 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빚도 땅도 노예도 모든 죄도 원래의 상태로 다시 탕감해주거나 돌려주거나 풀어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결국 땅이 편중되어 누군가는 그것을 잃게 되고, 먹거리를 잃어 생명을 잃거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주인 노릇하는 계급화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가진 이들의 권력과 탐욕으로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인 우리나라는 이제 더욱 이러한 일이 가속화되어 갈 것이다. 그런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또 온갖 잡새가 날아들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표방하면서 바꿔보겠다고 한다. 분명 새봄이 와서 새싹이 나고 새 일군인 것 같은데 웬일인지 지나고 나면 새가 없어진다. 제도와 규제가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한 두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가치관과 사상이 바뀌지 않는 한은 새가 아무리 많이 날아와도 잡새일 뿐이다. 비명에 간 세 모녀와 그런 절박한 위기에 있는 이들이 다시 온 새봄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그런 새가 날아들길 기대해 본다. 누군가 표현했듯이 찬란한 이 새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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