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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Mar 07. 2017

보름달에게 배우는 지혜

쉴만한 물가 - 197호

20160220 - 보름달에게 배우는 지혜


겨우내 매일 장작 한 짐씩 해 놓고 놀아야 했던 시간들이 설이 지나고 설렘 가득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일에 지치지 않도록 때를 따라 마을 잔치로 먹고 쉬고 놀면서 함께 공동체가 하나 되는 계기들을 세워둔 절기를 세워둔 지혜가 있다. “정월은 천지인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율력서에서는 말한다. 새해 새 달을 시작하면서 자연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이 하늘과 이웃과 관계, 그리고 땅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픈 염원들을 절기를 통해서 풀어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설날의 세시 풍속들 속에서도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전통과 질서들에 대해서 점검하고 계승하는 일들이 있었다면 보름이 지난 정월 대보름에는 다시 한번 좀 더 제의적인 축제들을 통해서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려 했던 여러 풍속들이 있다. 지신밟기를 위해서 마을의 풍물패들이 모인다. 그럼 평소에 전혀 음악적 소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른들이 쇠와 징 그리고 장고들을 치면 유난히 남달라 보였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소리가 산골짜기 계곡에 울려 퍼지면 어깨춤 덩실거리게 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동네 집집으로 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종일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 풍물패들이 해가 지면 동구 밖 무논으로 향했다. 


한편 풍물패가 마을의 집들을 가가호호 방문하고 있을 때 마을의 청년들은 뒷동산에 있는 대나무와 소나무들을 잘라서 동구 밖 무논에다가 달집을 만들었다. 평소의 쥐불놀이 때에 만들던 모닥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에다 마을의 장정들이 합세해서 쌓고 둘러가는 달집은 한가운데 연을 달아 켜켜이 송진 가득한 소나무로 둘러서 칡넝쿨로 단단히 동여매서 만들었기에 괜히 신이 났다. 부지런히 대나무와 소나무를 날라다 던져두고서는 우리들은 주위에서 쥐불놀이를 하면서 달맞이를 준비했다. 때론 건너 마을에서 먼저 달집이 만들어질 것 같으면 일부러 쫓아가서 확인을 하고선 서로의 달집을 자랑하기도 하고 시샘으로 달집 재료를 뺏아 오기도 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은 무용담 정도로 남지 원수 맺자고 하는 일들은 아니었고 오히려 달집 태우는 행사가 마쳐지면 즐거운 이야깃거리 정도일 뿐이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동쪽이었기에 건너 마을에서 먼저 떠오른 달을 맞아 달집에 불을 붙였다. 그럼 우리도 질세라 금세 달집에 불을 붙였고 타오르던 달집이 넘어지는 방향을 따라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달집이 타오르면 풍물패는 더 요란하게 흥을 돋웠다. 함께한 마을 사람들 남녀노소 모두 덩실덩실 풍물패를 따라 달집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어느새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한 해 동안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달집이 사그라들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밝아지면 이젠 소쿠리 하나씩 들고서 또 가가호호 방문해 찰밥을 얻으러 다녔다. 보름에 하는 음식들에도 모두 건강과 기원의 의미들을 담고 있다. 여러 집 밥을 먹어야 한 해 동안 배를 곯지 않는다거나, 부럼을 깨 먹어야 이빨도 부스럼도 안 난다고 했고, 귀가 밝아지는 술도 먹어야 한다고 했으며 아침에는 해가 뜨기 전에 이름을 부르면 대답 대신에 더위를 팔아야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도 했다. 얻어온 찰밥과 나물을 함께 먹으며 낮의 일들로부터 시작해서 수년을 이어 내려오는 마을의 전설과 한 해의 소망들이 자연스레 나눠지면서 농사가 시작되는 첫 달을 그렇게 풍성한 잔치로 시작하여 공동체가 함께 새해를 소망 가운데 시작하게 한 것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문화들을 경험한 세대들이 그렇지 않은 세대들보다 여전히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경사회의 마을공동체를 경험한 이들의 정서와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들을 고스란히 겪어온 세대에게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은 더없이 가슴 아프게 소외감과 안타까움을 갖게 하고 움츠러드게 하는 것 같다. 문화의 변화와 더불어 정치적 현실과 더 나아가 외교적 상황들까지 도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면서 본의 아니게 이기적인 생존 경쟁만 치열하게 삶을 고수하게 하니 보름이 되어도 달맞이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기 힘든 냉한 가슴들이 더 텅 비어 간다. 


수 년을 있어온 문화와 전통이 몸에 배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정서와 사상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권력에 눈먼 이들이 성급하게 바꾸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 하는 행태들은 더더욱 비정상적인 권모술수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을 속일 순 있을지 몰라도 하늘을 속일 순 없다. 율력서의 정월의 의미들을 되새겨 본다면 국민을 생각하여 더불어 함께 공생하는 길이 무엇인지 해체되어가는 가정과 어려워지는 경제적인 상황들을 이웃 나라와의 관계들도 함께 살펴보면서 번영은 아니어도 안녕 정도는 소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통을 제대로 계승해야 중요한 본질을 찾는 혁신도 힘을 얻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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