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01:21-34
마가복음 01:21-34 하나님 아들의 권세
* 회당에서 가르치심, 귀신을 쫓아내심, 많은 병자들을 고치심
-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하나님나라 복음 전파사역을 시작하시며 대표적으로 세 가지 가르침에 대하여 짧게 다 언급되고 있습니다(갈릴리 사역은 '선포'까지 포함하여 네 가지가 대표적 사역입니다). 가르침과 축귀와 치유의 사역들입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아, 왕)이심을 드러내는 사역(하나님나라의 도래 - 참된 왕이 오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놀라기만 할 뿐 귀신도 아는데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시친 분(21)
- 창조의 목적인 안식, 그 안식일에 회당(성전 이외의 장소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모임을 하는 유대인들의 집회장소, 남왕국 유다의 멸망 이후 포로기에 생긴 것으로 본다)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바로 가르치실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인정받은 선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르침은 '하나님나라 복음'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통상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는 강론정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서기관들과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어떻게 다른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전 문맥에서 스승이 제자들을 선택하는 것과, 후 문맥에서 예수님의 축귀와 기적사건들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단순한 해석정도가 아니라 확신과 실제적인 부분이 강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셨고, 참된 왕으로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하간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렇게 계속 때를 얻을 때마다 가르치신 분으로 마가는 언급합니다.
- 오늘 교회에서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는 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하고 귀 기울여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가르치거나 배우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음이 자라 이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배움의 자리에 우선순위를 두고서 겸손히 임하는 이 한해가 될 수 있길 원합니다.
2. 권위 있는 자와 같은 교훈(22), 권위 있는 새 교훈(27)으로 가르치신 분
- 에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표현한 말입니다.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다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확신과 성취의 관점으로 당대의 랍비들이나 서기관과 다른 면이 확실하게 구분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대 랍비들은 자신들의 스승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의존했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 주님의 말씀 곧 성경에 대한 권위와 권세를 얼마나 인정하고 깨닫고 수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세상의 가르침들과 그 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하고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하게 합니다.
3. 귀신(마귀)을 멸하러 오신 분(24)
- 귀신은 자신에게 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자신들을 멸하러 왔느냐고 말합니다. 귀신의 두려움 가운데 내 뱉은 말 속에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인 마귀를 멸하러 오신 부분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요일 3:8). 이후 4, 5번에서 언급하는 귀신의 말에는 예수님의 신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귀신은 '나사렛 예수여'라고 말하고 있는데 출신 배경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24)
-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귀신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신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지식이 믿음과 경배로 이어지지 않고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대적하는 자, 원수된 자, 이미 심판의 대상이 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5. 귀신을 꾸짖어 잠잠케하고 축귀하신 분(25~26)
-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 전파와 가르침의 사역을 방해하는 귀신의 등장을 예수님은 단호하게 꾸짖어 방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도심을 드러내 주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주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이 권세가 있음을 믿으며 주께서 멸한 거짓된 것들에 우리의 운명이나 운세를 맞춰가는 어리석은 일들을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년초에 토정비결을 본다거나 점을 치거나 여러가지 미신적인 운세를 보는 일들은(심지어 말씀도 그렇게 심지를 뽑아 운세를 보는 것처럼 하는 형태도 삼가해야 합니다) 절대로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6. 귀신에 명하여 순종케 하신 분(27)
- 예수님께서 참된 왕이시기에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귀신도 순종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 우리를 살리고 복주시고 온전케 하시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왜 이렇게 더디고 재고 의심하는지 우리의 모습이 귀신앞에 부끄러울 정도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7.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손을 잡아 일으켜 치유하신 분(30~31)
- 혹자는 시몬(베드로)의 장모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예수를 따르는 사위때문에 생긴 열병이 아닌가도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추측일 뿐이고 일단 장모의 병이 생겼고 그런 장모에게 손을 잡아주고 일으켜 치유하셨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병이든 예수님께서 고치고자 하시면 치유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ㅏ.
- 통상 유대인들에게 병이라고 하는 것은 죄와 연관 짓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있어서 생긴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치유하시는 것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구약에서 예언된대로 말세에 메시아의 도래에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가운데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 각종 병든 사람들과 많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신 분(33~34)
- 짧은 구절 속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또한 귀신들린 이들도 치유됩니다. 하나님나라의 도래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세에 있던 자들이 해방되어 풍성한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잔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도래하고 역사하는 현장에 정작 예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고 고백하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기적과 치유의 역사 그 자체에 머물러 정작 그 모든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도 알지도 못하는 어두운 눈이 오늘 말씀의 역사들을 보는 우리에게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 내 살에 역사하는 수많은 기적같은 일상의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동행하심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날이들에게 하소서
9. 귀신이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신 분(34)
- 귀신에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보입니다. 첫째는 귀신의 인정이나 말에 대한 소동을 잠재우기 위함입니다. 앞서 회당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중에 소동이 일어나서 방해가 되기에 잠잠하게 하셨고(25), 마을에서도 역시 치유 사역들을 진행하는 가운데 그것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막은 것으로 보입니다(34). 둘째는 아직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사람들이 수용할 만한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 때까지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수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와 예수님이 보여주신 메시아상이 다르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습니다.
* 교훈
1. 예수님의 교훈에 놀람의 반응과 깨달음이 있는가?(22, 27)
2. 나는 예수님과 상관이 있으며,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고 믿고 순종하는가?((24~26)
- 귀신의 지식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오히려 단절을 원합니다.
3. 예수에 대한 소문을 주위에 전하고 있는가?(28)
4. 나는 예수님을 나의 집에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29)
5. 주위에 아픈 영혼들을 주님께 의뢰하며 기도하고 있는가?(30)
6. 주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로 섬김을 행하고 있는가?(31)
7. 뭇 영혼들을가 확신가운데 주께로 인도하기를 힘쓰고 있는가?(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