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96호
20140425 – 잃어버린 봄
어느새 가는 봄의 뒷모습을 아쉬움 가운데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두가 뉴스를 보고 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마저도 숙연해져서 하루하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뒤적였다.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난 후에야 그 모든 바람도 무색하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이들을 억장이 무너져 몸을 가눌 수 없는 모습으로 부모도 친구도 그리고 온 국민들도 그네들을 가슴에 묻어가고 있다.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 있는 이의 부모 가슴은 새까맣게 다 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어릴 적 자라던 시골마을에 초상이 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장례에 동참했다. 곡소리와 상여를 얼르는 소리 외에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상가에서는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배고프던 시절이라 국밥 한 그릇 먹는 일들도 한 귀퉁이에서 가까스로 둘러 마시고 먼발치에서만 슬퍼하는 유족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절차들이 엄수되는 동안에 온 마을이 엄숙했고 숙연하게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 말 한마디 옷매무새 표정 하나 행동거지 모두가 경거망동을 삼가는 것이 결국 이웃된 우리가 마땅히 함께할 도리가 아닐까.
하여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노란색 리본을 달아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일으켜 마지막까지 단 한 사람이라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일부 종교인들이 노란 나비와 이런 그림들이 주술적이네 뭐네 하면서 또 딴지를 건다. 정말 애도의 마음이 있는 것인지 큰 고통을 당하는 이들과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터인데 알량한 종교심과 지식과 참을 수 없는 가벼움들이 함께 아파했던 마음에 돌을 던진다. 그나마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서 행사들을 자제하면서 애도기간을 보내는 모습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돌발상황들은 늘 감춰진 진실들을 밝혀 준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에 그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여겼는지,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알게 되고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지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보이지 않게 받고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된다. 물론 거짓과 부정과 부패된 부분들과 허위와 가식으로 찌들어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그래서 그동안 몰랐던 부분들을 알고 고마워하기도 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어 감사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깨닫는지,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을까.
안전공학에는 1:29:300이라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300번의 이상한 징후가 발생하고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면, 1번의 대형 사고가 터진다는 것이다. 결국 일이 터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동안 무시했던 것들의 결과를 안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는 돈 때문에 도덕을 버려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돈 때문에 진실도 민주주의도 안전도 모두 버린 결과를 애꿎은 아이들이 다 안고 있고 그마저도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돈의 권력 앞에 언론은 덩달아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춤춘다. 그 가식적인 춤이 더욱 추해 보이는 이유다.
잔인한 4월의 시간들, 다시 오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잊지 말아야 할 그 날들. 우리는 똑똑히 현실을 직시하되 이런 혼란 속에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에게서 이 봄을 앗아간 것이 무엇이며, 누구인지 기억해야 한다. 떠날 때 그 모습들을 되짚고 흔적 하나하나를 기억하면서 소중한 그것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고 돈과 권력에 눈먼 이들이 저지른 만행이 밝혀지게 하고, 그네들의 횡포에 피해를 당한 이들을 함께 일으켜 세워서 이 땅에 다시 봄이 올 수 있도록 곧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그 표 위에 하나하나 권리를 표하는 도장을 찍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