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03:01-12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요한계시록 03:01-12



요한계시록 03:01-12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사데, 빌라델비아 교회 :

살아있는 믿음, 열려있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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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 칭찬받는 교회와 책망받는 교회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교회의 실상을 꿰뚫어 보시고, 각 교회의 형편에 맞는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사데 교회를 향해서는 명성 뒤에 숨겨진 영적 죽음을 지적하며 깨어날 것을 엄중히 촉구하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는 작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킨 신실함을 칭찬하시며 영광스러운 약속을 주십니다. 이 두 교회를 향한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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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 살아있다는 이름뿐인 죽은 교회 (1-6절)>

# 1-3절 깨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도둑같이 이르리라

우리 주님은 교회의 생명의 근원이신 성령을 온전히 주관하시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손에 붙드신 분으로서, 교회의 겉모습과 명성이 아닌 그 중심의 영적 실상을 꿰뚫어 보시며, 죽어가는 교회를 향해서도 다시 깨어날 것을 촉구하시는 은혜와 공의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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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사데 교회의 행위를 아시는데,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그 실상을 정확히 진단합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명하시며,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책망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복음)를 다시 생각하고 굳게 지켜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만일 깨어 있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어느 때에 이를지 알지 못하게 도둑같이 임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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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 주님은 자신을 교회의 생명력의 원천이신 성령(일곱 영)과 교회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통치자(일곱 별)로 드러내십니다. 이는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데 교회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상기시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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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하는 이름, 그러나 죽은 자 : 사데는 과거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부와 영광을 누렸던 도시였습니다. 아마 사데 교회 역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명성으로 인해 겉으로는 활발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불꽃같은 눈에는 그들의 행위가 생명력을 잃고 형식만 남은 ‘죽은 상태’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소문과 실체가 전혀 다른, 가장 비극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왕년에 잘했던 것, 과거의 화려한 업적은 지금의 영적 죽음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붙잡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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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굳건하게 하라, 그리고 회개하라 : 주님은 죽어가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깨어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날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처음 받았던 복음, 그 순수한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지키고, 회개하라는 구체적인 회복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기초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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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같이 임하리라 : 깨어있지 않으면 주님이 ‘도둑같이’ 임하시겠다는 경고는, 재림의 시기뿐만 아니라 개인과 교회를 향한 심판의 때가 예고 없이 닥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두려움을 주기 위한 협박이 아니라, 영적 나태함에서 깨어나 늘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깨어 준비하라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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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과 교회는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분주하게 종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주님과의 살아있는 교제와 생명력이 없다면 우리 역시 사데 교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은혜 체험이나 직분에 안주하며 오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없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작은 믿음의 불씨라도 다시 살려내어 주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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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절 더럽히지 않은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

주님은 영적으로 죽어가는 공동체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소수의 남은 자들을 귀하게 보시고 기억하시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영광스러운 교제와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약속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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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주님께서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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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 영적 죽음이 만연한 사데 교회 안에도, 세상의 풍조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순결을 지킨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존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남겨두십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의 우상숭배와 부도덕함에 물들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거룩하게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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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영광스러운 약속 : 주님은 이기는 자, 즉 이 남은 자들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리라 : ‘흰 옷’은 죄사함으로 얻는 순결과 의로움, 그리고 승리와 기쁨을 상징합니다. ‘주와 함께 다니는 것’은 이 땅에서는 물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가장 영광스러운 교제와 친밀함을 의미합니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아니하리라 : 생명책은 하나님의 백성의 명단입니다. 이 약속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그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실한 증거이며, 그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다는 강력한 보증입니다.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세상에서는 조롱받고 무시당했을지라도, 마지막 날 온 우주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해주시는 최고의 영광과 명예회복을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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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영적으로 침체된 공동체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수의 길이 아니라, 진리의 길, 좁은 길을 걷는 소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가장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함께해주십니다. 참된 교회는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수가 아니라, 바른 말씀(진리)이 선포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성례)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 참된 능력을 회복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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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 작은 능력으로 지킨 믿음 (7-13절)>

# 7-8절 열린 문, 작은 능력, 지킨 말씀

우리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절대 주권자로서,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막을 수 없는 구원과 선교의 문을 여시고, 우리의 강함이 아닌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신실함을 가장 귀하게 보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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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로 자신을 소개하신다. 그분은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는데, 그 문은 아무도 능히 닫을 수 없다고 하신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를 아시는데,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음을 알고 칭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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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다윗의 열쇠’는 이사야 22장을 배경으로 하며, 메시아 왕국의 모든 권세와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이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구원과 심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나가는 모든 주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나 세상 권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문을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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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 : 이 ‘열린 문’은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교의 기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 이 문을 활짝 열어두셨기에, 그 어떤 세력도 그들의 구원과 사명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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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능력으로 지킨 믿음 :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책망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힘이 없고 연약한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약함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연약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그 신실함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우리의 능력은 세상적인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팡이를 붙드신 하나님의 손에 능력이 있듯이, 우리의 작은 능력을 붙드시는 주님의 손이 우리를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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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우리의 부족함을 탓하며 불평합니다. 가진 것이 적고, 능력이 부족하고, 환경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강함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을 가지고 얼마나 주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느냐입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작고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여시고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말씀 위에 굳게 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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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3절 원수 앞에서의 명예회복과 영원한 약속

주님은 인내로 말씀을 지키는 당신의 백성을 모든 시험에서 지켜주시고, 그들을 핍박하던 원수들 앞에서조차 사랑을 증언하게 하시는 신실한 보호자이시며,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하고 흔들리지 않는 지위와 영광스러운 새 정체성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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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회당, 즉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거짓말하는 자들이 와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발 앞에 절하게 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에,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에 그들을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 속히 오시리니,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신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실 것이며,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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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앞에서의 명예회복 : 교회를 핍박하던 ‘사탄의 회당’이 오히려 신실한 교회의 발 앞에 와서 절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적인 명예회복을 의미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신실한 삶 자체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어, 핍박자들조차도 “하나님이 정말 저들을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강퍅한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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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 이 약속은 모든 시험과 환난을 겪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험의 한가운데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여 믿음을 잃지 않고 통과하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인내로 말씀을 지킨 자에게, 주님은 인내할 더 큰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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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전의 기둥과 새 이름 : ‘성전의 기둥’은 견고함, 영광, 그리고 영원한 안정을 상징합니다. 이 땅에서는 약하고 떠돌이 같았던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흔들리거나 쫓겨나지 않는 핵심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 기둥에 새겨질 세 가지 이름(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님의 새 이름)은 그들이 이제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영광스러운 새 정체성을 영원히 소유하게 될 것을 보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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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 할 때 세상은 우리를 시험하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인내로 그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신 면류관, 즉 구원의 약속과 사명을 굳게 붙들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장차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될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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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거룩하고 진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삶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살아있다는 이름만 가졌을 뿐,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같이 무기력했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처한 상황을 불평하며 주의 인도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음도 회개합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아는 것과 행하는 일이 하나 되는

온전한 교회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분주함 속에서도 주께 합당한 자로 신실하게 살아가며,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작은 능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주의 말씀을 넉넉히 순종해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실한 삶의 모습이 굳어버린 영혼들을 녹이고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이 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을 인내로 경주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그날까지 주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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