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03:14-22
요한계시록 03:14-22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라오디게아 교회 :
미지근함을 넘어, 주님과 함께 앉는 영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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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편지 중 마지막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은, 가장 부유했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가난했던 교회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 자신과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주님은 자기만족에 빠져 미지근해진 그들의 신앙을 날카롭게 진단하시고 책망하시지만, 그것은 버리기 위함이 아닌, 사랑하기에 돌이키시려는 열렬한 초대였습니다. 주님은 거짓된 풍요를 버리고 참된 영적 부요를 얻으라 권면하시며, 교회 밖에 서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간절함으로 다가오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아픈 경고이자,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영광스러운 약속이며, 절망에서 소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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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 : 자기만족에 빠진 미지근한 교회 (14-22절)>
# 14-17절 부유하다는 착각, 비참한 실상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최종적인 성취이신 ‘아멘’이시며, 세상의 거짓됨과 대조되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모든 창조 세계의 시작과 근원이 되시는 절대 주권자로서, 교회의 자기기만을 꿰뚫어 보시고 참된 실재이신 자신에게 돌아오라 명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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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은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로 자신을 소개하신다. 그분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위를 아시는데, 그들의 신앙이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이기에, 그들을 입에서 토하여 버리겠다고 경고하신다. 더욱이 그들은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실제 모습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임을 그들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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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충성되고 참된 증인, 창조의 근본 : 주님의 자기소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와 정반대입니다. ‘아멘’이신 주님은 모든 진리의 확증자이시며,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그분만이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실체입니다. ‘창조의 근본’(arche)이라는 칭호는 주님이 만물의 주권적 시작(Beginning)이자 통치자(Ruler)이심을 선포합니다. 이는 부와 자립을 자랑하는 라오디게아의 거짓된 가치 체계의 토대를 허무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가 서야 할 유일하고 참된 반석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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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여 : 이 ‘미지근함’은 단순히 열정 부족이 아니라, ‘쓸모없음’과 ‘역겨움’을 의미합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인근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온천수와 골로새의 차가운 생수를 수로로 공급받았는데, 중간 지점인 라오디게아에 도착하면 물이 미지근해지고 석회질이 섞여 마시거나 치료에 쓰기에 역겨운 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이 물과 같다고 하십니다. 복음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치유하지도, 진리의 차가움으로 세상을 각성시키지도 못하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여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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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자, 실상은 영적 파산 : 라오디게아는 금융, 의복(검은 양털), 의학(안약)으로 유명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자랑거리 세 가지를 정확히 뒤집어 영적 파산을 진단하십니다. 그들은 참된 부요인 믿음이 없는 ‘가난한 자’였고, 영적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 먼 자’였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없어 죄의 수치가 드러난 ‘벌거벗은 자’였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자신들의 이 곤고하고 가련한 상태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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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개인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세상적인 풍요와 안정 속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잃어버린 채, 미지근한 신앙을 ‘성숙’이나 ‘지혜’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예산, 교인 수, 사회적 영향력과 같은 외적인 지표로 스스로 ‘부자’라 만족하며, 주님 보시기에 비참한 영적 실상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라오디게아의 모습은 물질적 풍요가 영적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이 아닌,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의 영적 실상을 정직하게 진단받아야 합니다. 나의 가난함과 눈 멂과 벌거벗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참된 부요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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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0절 사랑의 처방, 간절한 초대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그들의 거짓된 자기만족을 깨뜨리는 아픈 징계를 통해서라도 회복시키길 원하시며, 교회의 주인이심에도 불구하고 문 밖에 서서 인격적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친밀한 교제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시는 겸손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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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책망에 이어 구체적인 처방을 내리신다. “내게서 사라”고 하시며, 세 가지를 권하신다. 곧,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책망과 징계는 미움이 아니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기” 때문임을 밝히시며, 열심을 내어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주님과 더불어 먹으리라는 친밀한 교제를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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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사라 :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그들에게 ‘사라’고 하시는 것은 놀라운 은혜의 역설입니다. 그 값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파산을 인정하고 거짓된 자기만족을 버리는 ‘회개’입니다.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세상의 금, 검은 옷, 안약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보화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 : 시련을 통해 얻어지는 순수한 믿음(벧전 1:7).
흰 옷 :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죄 씻음과 의로움(계 7:14).
안약 : 성령의 조명으로 진리를 깨닫는 영적 분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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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징계한다 : 주님의 책망은 거절이 아니라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히 12:8), 주님은 우리를 친아들처럼, 친구처럼 사랑하시기에(헬, phileo) 아프더라도 회복의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징계는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다시 열심을 낼 수 있는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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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그리스도 : 이 구절의 일차적인 의미는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서 밀려나 문 밖에 서 계신다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슬픈 그림입니다. 그들은 주님 없이도 만족스럽게 종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언약 관계의 완전한 회복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며, 장차 올 메시아 잔치의 예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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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과 교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아니면 우리의 계획, 프로그램, 전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의 문을 두드리며 “나와 함께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책망의 음성이 들릴 때, 그것은 나를 향한 사랑의 확증임을 믿고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의 거짓된 부요와 자기 의를 내려놓는 회개의 값을 치를 때, 주님은 들어오셔서 우리의 삶을 참된 잔치의 자리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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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2절 이기는 자의 영광, 보좌의 약속
우리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세상을 이기시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최종적인 승리자이시며, 그 승리에 동참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영광과 권세를 나누어 주시는 은혜로우시고 영광스러운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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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마지막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약속을 주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선포하신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엄숙한 촉구로 편지를 마무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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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 : ‘이기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라는 유혹에 맞서, 미지근함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실함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이미 이기신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얻는 승리입니다(계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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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리라 : 이것은 일곱 교회에 주신 약속의 절정입니다. 스스로 부자요 왕처럼 행세하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공동 통치자’가 되는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천국에 가는 것을 넘어, 구원받은 성도의 최종적인 신분과 역할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연약했던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주적인 통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이 약속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흐르는 최고의 소망입니다(계 20:4,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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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 마지막 호소는 라오디게아 교회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 각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간절한 음성입니다.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 지금 나에게, 우리 교회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라는 강력한 촉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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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은 세상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정체성과 운명은 이 땅의 성공이나 실패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다스릴 존귀한 자들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은 현재의 미지근함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이 땅에서부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가치를 따라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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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부유하다 착각하며 주님 없이도 만족했던 저희의 교만과,
세상과 타협하며 역겨운 미지근함에 머물렀던 죄를 회개합니다.
저희의 곤고함과 가련함,
가난함과 눈 멂과 벌거벗은 실상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의 책망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하옵소서.
저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활짝 문을 열게 하사,
날마다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친밀한 교제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믿음과 거룩함과 분별력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이기는 자가 되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인내와 열심으로 살아가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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