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6:1-10
시편 146:1-10 영원한 왕께 소망을 두는 자의 복락
: 피조물의 유한성과 창조주의 신실한 통치에 대한 평생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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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6편은 여호와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찬양을 촉구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에게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명령하며 서원합니다(1-2절). 이어서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방백들)이나, 호흡이 끊어지면 그 계획이 소멸되는 유한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3-4절). 대신, 야곱의 하나님께 도움과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며,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제시합니다(5-6절). 특히 하나님은 억눌린 자를 공의로 심판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며, 갇힌 자와 약자(맹인, 비굴한 자, 나그네, 고아, 과부)를 돌보시며, 악인의 길은 좌절시키시는 분이심을 열거합니다(7-9절). 마지막으로 시온의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로 통치하실 것이므로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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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적 배경 : 시편 146편은 시편의 마지막 결론부(시 146-150편)를 여는 첫 번째 시편입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모두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로 시작하고 끝나는 '할렐루야 시'(Hallelujah Psalms)로 불리며, 시편 전체의 장엄한 송영(Doxology) 역할을 합니다. 이 시는 앞선 시편 145편(만유의 왕권에 대한 찬양)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며, 시편 145편 21절의 우주적 찬양 선언을 구체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 이 시편은 히브리어 원문에 특별한 표제(저자나 배경)가 없으나, 70인역(LXX)에는 학개와 스가랴의 시로 기록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포로기 이후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벽 재건 금지령과 같은 역경 속에서, 인간의 도움 대신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의존과 찬양을 촉구하기 위해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 시편의 핵심 주제는 여호와의 왕권(Kingship)과 그분의 신실하심(Faithfulness)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 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을 대조시키며,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만이 약속을 지키고(진실함), 세상의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구원이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에 있음을 보여주는 신학적 전통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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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평생의 찬양 서원과 자기 영혼에 대한 권면
하나님은 우리의 전 인격적인 찬양을 영원히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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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며, 시인은 자신의 "내 영혼아"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형으로 권고합니다. 이어서 그는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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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는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이 시편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결론부의 중심 구호입니다. 시인이 "내 영혼아"(네페쉬)라고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은, 찬양의 일차적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밝히는 것이며, 자신의 가장 깊은 내적 자아, 즉 전 인격적인 존재의 본질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찬양하라'(할랄)는 동사는 '높이다', '자랑스럽게 여기다'는 의미를 가지며, '찬송하리로다'(자마르)는 악기를 동원하는 등 모든 것을 다해 찬양한다는 뜻도 함축합니다. 특히 시인은 이 찬양을 '나의 생전'과 '나의 평생'(오드, 지속, 계속)에 하겠다고 강력히 서원함으로써, 일시적이거나 감정적인 찬양이 아닌, 흔들림 없는 지속적인 헌신을 표현합니다.
찬양은 성도의 삶의 주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 존재(영혼)가 그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시간 동안 그분과 동행하며, 영원히 계속될 찬양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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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실하심에 대한 찬양으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나의 생전에) 우리의 입술은 의무가 아닌 자발적인 기쁨으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격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 의지적인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개인적인 헌신의 고백인 "내 영혼아"에서 시작하여, 공동체의 찬양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찬양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공동체가 온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올 한해 우리교회의 예배(공동체, 개인, 삶의 예배) 찬양이 더 풍성해져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찬양이 날로 더 온전하고 성숙해 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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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절 유한한 피조물에 대한 의뢰 경계 (3-4절)
하나님은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계획과 도모가 소멸되는 인간의 무력함과 덧없음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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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회중에게 "방백들"(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이유로 사람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 바로 그날에 그의 도모(생각)가 소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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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들'(고관, 귀인)은 세상에서 권력과 명예, 재력을 가진 유력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인생'(벤 아담, 사람의 아들)은 죽을 운명을 지닌 약한 존재를 뜻하며, 특히 '아담'(사람)과 '아다마'(흙)의 언어 유희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이 부정적인 권면의 핵심은 참된 구원의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게 세운 계획이나 장대한 목표(도모/생각)도 인간이 죽음(호흡이 끊어짐)과 동시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은, 인간의 능력과 권세가 제한적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의 지혜와 권력을 의지하는 것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를 신뢰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참된 구원은 오직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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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능력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방백들'에게 소망을 두기 쉽습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재정적 위기 앞에서 인간적인 수단이나 임시방편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망각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고 헛된 일임을 인식하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대신 오직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를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의뢰의 당위성을 제시하는 지혜 문학의 전통입니다. 인간의 모든 계획(도모)의 소멸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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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절 창조와 구속으로 약자를 돌보시는 신실한 왕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와 언약적 진실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며, 약자를 보호하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구원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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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고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며(5절), 여호와가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6절). 이어서 하나님께서 억눌린 자를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고, 갇힌 자를 해방시키시는 분임을 열거합니다(7절). 또한 맹인의 눈을 여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시며,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시는도다라고 선포합니다(8-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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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은 본시의 핵심 구절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되다는 것을 3-4절의 유한한 인간 신뢰와 대조시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모든 위기에서 보호하셨던 하나님, 즉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6절은 창조주로서의 전능하심과 섭리를 찬양합니다. 특히 '진실함'('에메트')을 영원히 지키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확고한 근거가 됨을 강조합니다.
7-9절은 창조와 구속의 주제를 융합하여, 하나님이 현재 일하시는 방식(모든 동사가 분사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합니다. 여기에 나열된 약자들(억눌린 자, 주린 자, 갇힌 자, 맹인, 고아, 과부)은 고대 사회의 사회적 약자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며(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을 상징합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통치의 의로움임을 보여줍니다.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는 악인의 계획이나 음모가 결코 성사되지 못하고, 오히려 좌절되고, 악인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능히 구원하시고, 신실하시기에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하시기에 약자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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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객) 등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보호하시고, 압박당하는 자의 권익을 옹호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참여함으로써 악인들의 압제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식물(양식)과 자유(해방)를 주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7-9절에 열거된 하나님의 구원 행위(맹인에게 눈을 엶, 갇힌 자 해방, 약자 일으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을 예고하며, 예수님은 친히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예언의 성취를 선포하셨습니다. 결국 인간의 실존을 상징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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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 영원한 왕권 통치에 대한 확신과 찬양 촉구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한 통치와 대조적으로, 시온을 통해 세대와 세대에 걸쳐 영원히 의롭고 자비로운 통치를 펼치시는 주권적인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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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시온아"라고 호명하며,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라고 선언한 후, 다시 "할렐루야"로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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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여호와의 통치(왕권)가 시간적 제한이 없이 '영원히 대대에' 걸쳐 지속됨을 선포합니다. 이는 앞서 3-4절에서 언급된 일시적이고 유한한 인간 통치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시온아'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이는 지리적 장소를 넘어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 공동체 혹은 메시아적 통치의 중심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야훼는 '네 하나님'(엘로힘)으로 불리는데, 이는 천지 창조의 능력과 더불어 변치 않는 언약적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악인의 길은 결국 굽게 하시는 분이 영원히 통치하실 것임을 확신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승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하며, 그 통치 방식은 공의롭고 자비롭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환난과 불안 속에서도 이 영원한 왕께만 소망을 두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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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영원한 통치에 삶의 모든 영역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뜻(율례)을 행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복락을 미리 경험하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사회는 지속성 없는 인간의 정치나 지도력(3-4절)에 실망하지만, 시인은 그 모든 유한함 위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통치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선하고 의로우며 자비로운 하나님의 통치(7-9절)를 세상에 증언하는 시온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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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히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의 전 생애와 전 인격이 당신을 찬양하며 자랑합니다.
우리는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계획과 도모가 소멸되는
유한한 흙의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유력한 권세나 사람의 헛된 약속에 소망을 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야곱의 하나님 되시어 약속을 지키시는 당신께만 절대적인 도움과 소망을 둡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주님,
지금도 억눌린 자를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갇힌 자를 해방시키고, 맹인의 눈을 여시며,
소외된 모든 약자를 돌보시는 공의롭고 자비로운 구원자이심을 찬양합니다.
악인의 길은 반드시 좌절될 것임을 확신하오니,
시온의 하나님이 영원히 대대에 다스리신다는
이 진리를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며 승리의 찬양을 쉬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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