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7:1-20
시편 147:1-20 선하고 아름다운 마땅한 찬양
: 상한 자를 회복시키시고 만유를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영원한 왕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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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7편은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찬양시입니다. 시인은 찬양이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하다고 선언한 후(1절),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바벨론 유수(幽囚) 이후 예루살렘을 재건하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치유하시는 자비의 행적을 드십니다(2-3절). 또한 하나님은 무수한 별들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이름까지 다 부르시는 광대하신 창조주이시며,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을 엎드러뜨리시는 공의의 통치자이십니다(4-6절). 시인은 하나님이 모든 생물에게 식물을 공급하시고(8-9절), 인간의 군사력(말의 힘, 사람의 다리)이 아닌, 오직 자신을 경외하고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고 선포합니다(10-11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안전과 평안을 보장하시며(12-14절), 강력한 말씀으로 눈, 서리, 우박 등 자연계를 다스리시고(15-18절), 특별히 그 말씀(율례와 규례)을 이스라엘에게만 보이셨음을 강조하며 찬양으로 끝맺습니다(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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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적 배경 : 시편 147편은 시편의 마지막 결론부인 '할렐루야 시편'(146-150편) 중 두 번째 시이며, 민족 공동체적 감사 예배시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시편 그룹에 속합니다. 시편 전체를 마감하는 대송영(大頌榮)의 역할을 합니다.
#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 이 시편은 저자가 미상이며, 포로기 이후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성벽과 성문 재건을 마친 상황(느헤미야 시대)을 배경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루살렘의 회복, 흩어진 자를 모으는 것, 그리고 문빗장의 견고함에 대한 언급이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반영합니다.
# 신학적 배경 : 이 시편의 핵심은 여호와의 왕권과 그분의 자비(긍휼)에 대한 찬양입니다. 찬양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맥락, 즉 우주 자연 만물을 절대적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창조자의 광대하심과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구속사의 특별 은총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상심한 자를 치유하시고 (3절), 율법과 규례를 이스라엘에게만 주셨다는 사실(19-20절)은 구속사적 특권이자 찬양의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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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회복과 초월적 지혜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치유하시고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며, 무수한 별들의 수를 아시는 광대하신 통치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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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 유수 후에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십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은 별들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이름대로 다 부르시는 광대하시고 무궁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통치를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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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테힐라)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마땅하다'는 것은, 그 대상인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가 찬양에 합당하기 때문에 찬양 그 자체가 기쁨과 만족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예루살렘을 세우심'과 '흩어진 자를 모으심'은 포로기 이후의 역사적 회복을 나타내며,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치유하시는 자비로우신 사역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상심한 자'의 치유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의 영적 회복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천지 창조의 광대하신 권능과 무한한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별처럼 흩어져 있어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대하신 하나님은 억압된 자/가난한 자를 뜻하는 '겸손한 자'를 붙들어 올리시고, 교만한 악인은 멸망의 자리로 낮추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가 공의와 자비를 기반으로 하며,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광대한 능력과 섬세한 자비로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며, 우리의 좌절과 상처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언약)을 통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전능한 치유자이심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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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 심령이 상하고 절망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싸매시고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적 고통(상심)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갈망과 회복의 기회이며, 모든 계획을 아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여 좌절 대신 찬양을 선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약자나 소외된 자(겸손한 자/비천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붙들어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세상에 구현해야 합니다. 교회가 직면하는 분열과 쇠퇴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재건하셨듯이 다시 회복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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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절 피조물을 돌보시며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생물에게 때를 따라 공급하시고, 인간의 힘이 아닌 당신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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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감사함으로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고 땅을 위해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고,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말의 힘이나 사람의 다리를 즐거워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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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노래'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성품을 인정하며 찬양하는 자발적이고 기쁨에 찬 고백을 의미합니다. 8-9절은 창조주의 보편적 섭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들짐승과 심지어 부정한 새로 여겨지던 까마귀에게까지 먹을 것을 공급하심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향한 그분의 세심하고 뜨거운 자비(긍휼)를 드러내십니다.
이러한 보편적 섭리는 10-11절에서 인간의 교만한 힘에 대한 경고로 이어집니다. '말'은 고대 군사력의 상징이며, '사람의 다리'는 인간의 튼튼한 체력이나 능력/민첩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한하고 가시적인 능력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의 권능과 역사를 믿고 경건한 삶을 사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분의 언약적 사랑(헤세드)에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참된 소망은 인간의 힘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세상의 힘(권력)과 능력을 의지하는 교만을 버리고, 전지전능하지만 세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인자하심)을 갈망하는 절대적인 의존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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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경쟁 논리 속에서 우리의 재능, 지위, 재력 등 '말의 힘'이나 '사람의 다리'를 자랑하고 의지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미물까지 먹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함으로써, 나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태도로 그분의 은혜를 갈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먹이시는 분임을 기억하고, 굶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할 때도 인간의 힘이나 정치적 방편에 의존하기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개입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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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절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언약 백성에게 특별 계시를 주신 왕
하나님은 강력한 말씀으로 자연을 다스려 복지를 제공하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오직 당신의 백성에게만 계시하시는 유일하고 특별한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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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시온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자녀에게 복을 주시며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배불리십니다. 그분은 그 명(말씀)을 땅에 보내시니 속히 달립니다. 눈, 서리, 우박, 추위 등 자연 현상도 말씀으로 다스리시며,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고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이 행하신 것은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다는 선언으로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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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빗장을 견고히 하심'은 군사적 침입으로부터의 완전한 보호를 나타내며, '자녀의 복'은 후손의 번영을 통해 장래까지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이 복지는 '아름다운 밀'로 상징되는 풍요로움과 '평안함'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이 모든 축복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실패나 지체 없이 즉각적으로 성취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눈, 서리, 우박과 같은 추위와 물의 흐름 같은 자연 현상까지도 말씀의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창조 섭리를 넘어, 하나님은 '그 말씀(율례와 규례)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셨다'는 특별 계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율법은 단순한 윤리나 자연 법칙을 넘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구원의 은총을 드러내는 소중한 보물이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될 최고의 이유가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성경)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길을 깨닫고, 이를 특별한 은혜로 여기어 기꺼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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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가정의 평안, 경제적 풍요)이 말씀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도, 세상적인 안전(견고한 문빗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것을 가장 소중한 복(특별 계시)으로 삼아, 가정의 평안이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서 비롯됨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혼돈과 거짓(궤계)을 다스리는 권능의 근원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독점한 특권에 자만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정의와 자비가 실현된 공동체의 모델을 보임으로써, 말씀의 권능이 온 세상에 미치도록 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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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할렐루야, 광대하시고 은혜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합니다.
무수한 별들의 수효를 아시는 초월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상한 심령을 고치시고 흩어진 당신의 백성을 모으시며,
만유를 선대하시고 모든 생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세밀한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강한 자의 힘이나 헛된 세상의 소망에 의존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경외하며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시니,
우리의 마음을 오직 주님께 고정합니다.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우리의 삶과 가정,
그리고 이 나라의 안전과 평안을 견고히 하여 주옵소서.
아무 나라에게도 행치 아니하신 특별한 은혜로,
우리에게 율례와 규례의 거룩한 말씀을 허락하셨사오니,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행실과 입술이
당신의 영원한 왕권과 거룩하신 이름을 송축하는 데 쓰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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