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안에 머물며, 자비를 기다리는 시간

유다서 1:17-25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유다서 1:17-25 그 사랑 안에 머물며, 자비를 기다리는 시간

신앙은 나의 강함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비틀거리는 나를 끝내 붙드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리며 서로의 연약함을 품어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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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삶의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하여 서성이는 벗님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유다서의 마지막 당부는 마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선장의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 같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조롱하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있습니다. 본능을 따라 살며 편을 가르고, 냉소와 비난으로 영혼을 갉아먹는 이 시대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자주 무력감을 느낍니다. "과연 내가 이 거친 세류를 거슬러 온전히 설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밤안개처럼 스며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우리에게 거창한 전투를 명령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21절)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성을 쌓고 문을 걸어 잠그는 폐쇄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인 릴케가 말했듯, "나의 내면에 사원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내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닻처럼 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결심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를요.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매순간 흔들리며 걷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유다는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기다림입니다.


이 기다림의 자세를 배운 사람은 타인을 향해서도 다른 눈을 갖게 됩니다. 유다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22절)고 말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혹은 그가 흔들리고 있다고 해서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 불 속에서 그를 끌어내십시오. 혐오와 배제로 얼룩진 세상에서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으로 감당하는 긍휼’뿐입니다. 누군가의 더러워진 옷을 보며 내 옷깃을 여미는 위선이 아니라, 그조차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는 연민의 마음이 우리를 진정한 성도로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유다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그 장엄한 송영이 우리의 최종적인 보증수표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24절).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을 걷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넓은 손바닥 위를 걷고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을 덮습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이라는 시간을 견디십시오. 비틀거리는 걸음도 그분의 손에 잡히면 춤이 됩니다. 그 넉넉한 은혜의 품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며,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듯 사랑을 나누는 복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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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1:17-25 흔들리는 발걸음, 그 너머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견고한 사랑

우리의 연약함과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짐에서 지켜 주시는 ‘압도적인 은총’의 주체이시며, 그 사랑에 머무는 삶은 회의하는 이들을 품어 안는 ‘자비의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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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주 자신의 한없이 작은 모습과 마주합니다. 세상을 가득 채운 소음과 분주함은 우리로 하여금 본래적 실존을 망각하게 만들고, 때로는 "이게 아닌데" 하는 탄식 속에서 길을 잃게 합니다. 유다서의 기자가 경고한 ‘조롱하는 자들’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며 성령을 부정하고, 거룩한 가치들을 비웃는 우리 시대의 음습한 풍조이기도 합니다(18-19절). 이러한 ‘액체 근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마치 거센 파도 앞에 선 종이배처럼 위태롭기만 합니다._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내리고, 모든 가치가 상 대화되고, 모호성과 불안이 증대된 오늘의 현실을 가리켜 '액체 근대 Liquid Modernity'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뭔가 손에 딱 잡히는 게 없 는 유동하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시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인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곧 ‘헤세드(Hesed)’를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20절). 신앙이란 우리가 무엇을 성취해 내는 투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분의 숨결에 우리 삶을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비틀거릴 때, 주님은 우리를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처럼 당신의 사랑으로 띠 띠우시고 든든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압도하는 가없는 은총의 본질입니다(시 142:5).


주님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침투하여 영혼의 빛이 들어오는 ‘균열’이 됩니다. 시인 함석헌 선생님이 노래했듯, 우리가 더러워진 마음을 닦으려 허둥거릴 때 주님은 이미 다가오셔서 “내가 손수 닦아 주마” 말씀하시며 우리 곁에 앉으십니다. 이 ‘괴어 받쳐 주시는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칠 때,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하는 강박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넘어짐에서 지켜 주시고,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실” 분입니다(24절). 이 압도적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이제 시선을 돌려 의심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불 속에서 사람을 건져내듯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랑의 순례길’을 걷게 됩니다(22-23절). 우리의 작고 비루한 발걸음이 주님의 손에 붙들릴 때, 그 길은 더 이상 적막강산이 아니라 하늘의 빛으로 물든 생명의 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센 풍랑 속에서 난파되지 않도록 우리 배 밑바닥을 든든히 괴어 주시는 무한한 바다와 같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분의 부력(浮力)을 신뢰하며 사랑의 노를 젓는 것뿐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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